뇌전 (175.♡.147.253)
2026년 4월 24일 PM 04:11
전에 글에 이어...
한국이 미식 강국이 된 게 한식 자체의 유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장이 만든 겁니다.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OECD 최상위권입니다. 이 숫자가 뜻하는 건 간단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식당을 열고, 그만큼 많은 식당이 망한다는 겁니다. 살아남은 집들은 운이 아닙니다. 한국 소비자를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검증이죠.
근데 그 소비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무서워졌냐. 선진국화가 되면서 해외여행 경험이 쌓였습니다. 일본 가서 라멘 먹어봤고, 이탈리아 가서 파스타 먹어봤고, 대만 가서 우육면 먹어봤습니다. 비교 기준이 생긴 소비자는 무섭습니다. "그냥 맛있다"가 아니라 "현지보다 낫냐 못하냐"로 평가하기 시작한 거죠. 공급자는 살아남기 위해 수준을 올려야 하고, 소비자는 경험치가 쌓이면서 눈높이가 올라갑니다. 이 두 개가 동시에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 결과가 뭐냐. 일식보다 잘하는 일식집, 중식보다 잘하는 중식집, 현지보다 나은 커피. 원산지를 역전하는 한국식 재해석이 반복됩니다. 흡수하고 경쟁하고 역전하는 구조가 시장 안에 내장된 거죠.
여기서 반박이 나옵니다.
"잘하는 집은 잘하지만 평균은 현지만 못하지 않냐." 맞는 말입니다. 현지화 과정에서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근데 핵심은 평균 자체가 올라가고 있다는 겁니다. 10년 전 한국 라멘집이랑 지금 한국 라멘집은 다릅니다. 베이스가 올라가는 중이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중식이랑 일식이 잘 안착한 데는 지리적 이점도 있습니다. 동북아 3국이라 식재료가 겹치고 입맛 베이스가 비슷하게 출발하거든요. 이탈리아 파스타나 인도 커리는 재료부터 달라서 현지화 장벽이 높은데, 중일 음식은 그 장벽이 낮은 편입니다. 근데 장벽이 낮다고 수준이 저절로 올라가진 않습니다. 그 안에서 경쟁으로 끌어올린 건 결국 시장의 힘입니다.
"커피는 매니아 문화 아닌가. 스페셜티 잘한다고 해도 일부 얘기 아닌가." 반은 맞습니다. 근데 지금은 다릅니다. 예전엔 스페셜티 카페는 매니아들만 찾았습니다. 지금은 일반 소비자도 자연스럽게 원두 종류 고르고 추출 방식 고릅니다. 취향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 자체가 시장이 발전한 결과물입니다. 매니아 문화가 대중화된 거죠.
결국 무서운 시장이 평균을 끌어올리고 강국을 만들었습니다. 근데 그 시장에 지금 뛰어드는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같은 말이 공포입니다. 강국을 만든 시스템이 개인한테는 생존 게임인 거죠. 무서운 시장이 강국을 만들고, 그 강국의 시장이 또 누군가를 무섭게 만드는 겁니다.
댓글 (8)
- G
gracy1999
04.24 · 211.♡.14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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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gracy1999 작성자
04.24 · 175.♡.147.253
맞습니다. 해외에서 먹어본맛 국내에서 먹고 싶다가 발전의 원동력이죠. 애초에 한국이 선진국이 된게 원인일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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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inja7
04.24 · 211.♡.163.13
어느 세상에나 각자의 생존 경쟁은 존재하지만 이를 일상의 공포로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회는 이세상에 없고 현상이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그 경쟁에 뛰어들고자 하지 않는 경우는 있겠죠. 잘하려는 사람과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공존하며 각자를 존중하고 '느리게 사는 삶'이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긍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치열한 경쟁의 공포가 아닌, 그간 소외되었던 부분에 대한 관심과 인정입니다. 전 지구적인 극우 풍조나 국내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근성과 회복 탄력성을 증명해 왔습니다. 따라서 속도와 질에 매몰되어 공포를 느끼기보다, 1극으로 집중된 에너지를 부의 재분배와 지역 균형 발전을 통해 다극으로 넓게 퍼뜨리는 방향에 힘을쓰고 나아가면 떠밀리듯 쫓기는 공포는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요. 이러한 구조적 변화야말로 사회 저변의 불안을 사그라트리고 우리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공존할 수 있는 바른 길 아닐까 싶네요. 어떻게 이렇게 되었다 보다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에 큰 에너지를 쏟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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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ninja7 작성자
04.24 · 175.♡.147.253
저도 지금은 직장인이지만 나가면 뭐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미식의 나라 시리즈 정리하다가 ㅎㅎ 좋은데ㅐ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 아
아사
04.24 · 118.♡.110.74
평균이 올라가고 있긴 한데요. 요즘은 그 평균이 밀키드 미만으로 수렴하고 있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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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아사 작성자
04.24 · 175.♡.147.253
이건 맞긴해요 ㅋㅋㅋ 동네 만두집.. 대기업 만두 잘나오고나서 없어진집들이 많으니까요
- 아
아오이토리
04.25 · 116.♡.19.167
구조적으로는 한국의 자영업자 증가 => 프랜차이즈의 증가 => 차별화, 시스템화, 복잡도 증가 => 전반적인 퀄리티 증가의 순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걸 좋아하고 잘 받아들이며, 차별화에 대한 순응이 높고 팬덤 성향이 강한 소비자 성향도 한몫을 합니다. 우리 나라 소비자들은 덤을 주던지, 이왕이면 다홍치마 같은 문화에 익숙하고 요구합니다. 일본은 똑같은 100년전의 맛에 익숙하고 변함 없음을 최고로 치는 문화더군요. 이게 정성만 변함없으면 좋은데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느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겐 최고라 치는 백년 넘는 가게를 가서 실망한 경우 많았습니다.
일본에 자주 놀러가본 정도의 입장에서 일본 음식에 대해 기대를 접은지 오래되었습니다. 일식에 대한 제 인식은 원물이 좋아서 맛있다, 비싼 음식이 맛있다 정도로 귀결됩니다. 한국 요리가 일본 요리를 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슐랭 별 몇개로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으로 한국의 미슐랭 식당 수도 엄청나게 늘어날껍니다. 미슐랭 별 주는 사람들에게 현재 가장 피곤한 음식이 한식이고 한국이라는 나라이지 않을까 한번씩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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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아오이토리 작성자
04.25 · 175.♡.147.253
오리지널리티 에 대한 것에 집착이라고 보는데요. 오리지널은 변화가 많다. 오리지날이 아닌것은 변화가 있을수가 없다. 조금은 일본이 집착하는게 이런 전통성의 부족이지 않나 싶네요.
이글의 1편 에서 이어지는 내용이긴하네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미식은 소수의 문화가 되면 발달하기 힘듭니다. 뭐든지 수요가 많아져야 공급이 생기죠.
해외 경험이 늘어나면서 해외 음식에 대한 수요 증가 > 해외 및 고급 식자재에 대한 공급 > 음식의 질적 향상
이 루트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