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행인이 (61.♡.201.240)
2026년 4월 26일 PM 08:25
AI를 만지면서 요즘 계속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걸로 또 누군가의 등에 빨대를 꽂는 서비스를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는 오픈소스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깃헙도 그냥 개인 저장소였구요
그런데 최근 2~3개월 동안 직접 이것저것 만들고, 공개하고, 남들이 만든 것도 까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열어보면 허술합니다.
README는 거창한데 코드는 엉성하고,
“production-ready”라고 써놨는데 사실은 “it works on my machine” 수준이고,
“agentic workflow”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프롬프트 몇 개와 shell wrapper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대로 나누고 공개하고 기록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혼자 쓰면 그냥 내 도구입니다.
하지만 공개하면 누군가는 그 구조를 보고, 누군가는 문제를 지적하고, 누군가는 자기 방식으로 가져갑니다.
이게 오픈소스의 힘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생각하는 방향은 단순합니다. 요즘 저한테 플랫폼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의뢰가 꽤 많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빨대를 꽂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수도관을 까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전 단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죠. 뭘 잘하던 함께하는 동지를 밟고 저혼자 서는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의 시장은 자본주의라기보다, 어느 순간부터 길목을 잡은 쪽이 과도하게 가져가는 구조에 가까워졌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실제 가치를 만들고 교환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몫은 노출, 정산, 데이터, 신뢰, 결제를 잡은 중간 인프라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인프라는 필요합니다.
문제는 인프라가 거래를 돕는 수준을 넘어, 거래 자체를 인질로 잡을 때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반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정상화에 가깝습니다.
가치를 만든 사람이 보상받고,
판매하는 사람이 정당한 마진을 가져가고,
소비자는 불필요한 중간 비용을 덜 내는 구조.
그러려면 플랫폼이 거래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거래가 잘 일어나도록 신뢰, 정산, 운영, 검증을 표준화하는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AI는 여기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AI를 더 많은 광고 최적화, 더 많은 수수료, 더 강한 락인에 쓰면 기존 문제는 더 심해질 겁니다.
하지만 AI를 거래 비용을 낮추고,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운영을 자동화하고, 작은 제조사와 작은 판매자도 큰 플랫폼 없이 거래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쓴다면 의미가 있습니다.
큰 조직과 큰 플랫폼만 가지던 운영 능력을 작은 주체들에게 돌려주는 것.
저는 그게 AI 시대에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지식 검색 시스템이든,
멀티 에이전트 작업 도구든,
소형 LLM 작업 운영체제든,
겉으로는 전부 다른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제 안에서는 같은 방향입니다.
플랫폼이 독점하던 능력을 작게 쪼개서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
빨대를 더 정교하게 꽂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이 같이 쓸 수 있는 수도관을 까는 것.
요즘 제가 만들고 싶은 건 그런 쪽입니다.
그냥 오늘 잠들기전 넋두리였습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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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리딸이뻐요
04.26 · 1.♡.21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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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나가던행인이
→ 우리딸이뻐요 작성자
04.26 · 118.♡.85.80
그쵸 안타깝습니다
- 제
제피르
04.26 · 125.♡.143.152
근데 이게 또 다른 양극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지금이야 AI Agent 개발사들이 최대한 알려야 하니 저렴한 가격에 풀어버리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갈까요?
AI 산업군이 초기 투자 비용이 어마어마한 상황에서 곧 가격을 올려야 하는 한계점에 다다를거라 봅니다.
(이미 클로드가 시도했다가 반발에 크게 부딪쳐 한발 물러섰지만 다시 시도하리라 봅니다.)
그럼 돈 있는 사람(혹은 기업)은 AI를 적극 활용할테고 그게 아닌 사람은 밀려나게 되겠죠.
지금이야 AI Agent의 시장 진입 초기라서 누구나 AI를 활용한 도구를 만드는 핑크빛 미래가 보이겠지만 곧 AI Agent의 Token 비용이 올라가고 오픈 API가 유료화로 돌아서는 시점이 오면 지금처럼 AI가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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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나가던행인이
→ 제피르 작성자
04.26 · 61.♡.201.240
동의합니다. 그래서 알각에선 local llm에 대한 투자도 늘고 실험도 많이하고 있긴하지만 거대 자본 앞에선 어떻게 될지 모르는것도 사실입니다.
- R
rustacean
04.26 · 59.♡.65.234
“production-ready”라고 써놨는데 사실은 “it works on my machine” 수준이고
이런 레포는 99% AI가 작성한 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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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나가던행인이
→ rustacean 작성자
04.26 · 61.♡.201.240
맞는 말씀이지만 오픈소스 생태계가 갖는 아이디어 나눔의 확장 관점에선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시작한 사람들 중에 1%라도 생태계를 이해하고 동참하면 좋은 방향이 될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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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짓이든 해도 된다, 그걸 비난하면 빨갱이다'라고 이해하는 멍청이들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