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 (175.♡.147.253)
2026년 5월 9일 AM 08:19
삼국지 보다가 순욱이 좀 묘하게 느껴지더군요.
보통 순욱 하면 조조의 책사, 왕좌의 참모 정도로 기억하는데
가만히 뜯어보면 이 사람 서사가 꽤 씁쓸합니다.
순욱은 사실 조조의 공동 설계자에 가까웠죠.
곽가, 순유, 정욱 같은 핵심 인재들도 대부분 순욱 라인이고, 조조 세력의 뼈대를 만든 사람이라고 봐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근데 결국 조조와 갈라집니다.
이걸 단순히 충신 vs 역적 구도로 보면 좀 심심한데,
전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같은 버스를 탔는데 내릴 종착역이 달랐던 거 아닐까 싶습니다.
순욱은 끝까지 한나라를 바로 세우는 조조를 봤고,
조조는 어느 순간부터 한나라 이후의 조조를 보기 시작한 거죠.
20년 가까이 같은 방향을 보고 달렸는데
어느 날 보니 목적지가 달라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조조가 보낸 빈 찬합이 더 묘합니다.
그건 협박이라기보다,
이제 여기까지라는 걸 당신은 읽겠지
하는 마지막 예우 같아요.
그리고 순욱은 읽었죠.
오히려 둔한 사람이었으면
어? 왜 비었지? 하고 넘겼을지도 모르는데
순욱은 너무 똑똑해서 읽어버린 겁니다.
생각해보면 천재의 비극이란 게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이 읽을 수 있어서,
끝내 읽지 않아도 될 것까지 읽게 되는 것.
삼국지에서 순욱이 유독 씁쓸한 이유가
배신당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조조를 이해했을 거라는 점 때문인 것 같네요.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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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로라
05.09 · 124.♡.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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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오로라 작성자
05.09 · 175.♡.147.253
조조가 단순히 악당으로 보면.. 너무 평면적인거구요. 나름 합리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빈찬합이라는 의미를 보낸걸테구요,
아쉬운건. 그 선택으로 인해. 사마의라는 잠재적 위험을 키운거죠 ㅎㅎ
- 레
레오브라웡카
05.09 · 110.♡.85.139
순욱이 그걸 파악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칼춤 추는 사람을 보냈겠죠.
결국 서로가 서로를 잘 파악하는 능력자들이었던 거라 생각했었어요. -
FF3YNM4N
→ 레오브라웡카 작성자
05.09 · 118.♡.85.101
그렇져 바둑고수처럼 수를 읽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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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홍천브람스
05.09 · 58.♡.42.92
소싯적에는 이런 떡밥(?) 하나 뜨면, 삼국지 정주행 여러번 한 놈들끼리 모여 앉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정말 재밌게 떠들어 댔었는데 말이죠. 나중에는 암기싸움으로 갔다가 무력랭킹 갔다가.. 정사가 좋니 연의가 좋니.. 이문열이 최고다 정비석이 최고다..그 와중에 어둠의 요코야마 미츠테루 유입들도 끼어들고..참 그리운 어린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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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홍천브람스 작성자
05.09 · 118.♡.85.101
다들 늙얶 ㅠㅠ 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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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Unninni
05.09 · 61.♡.35.160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해석은
순자의 후손 순씨가문의 유학자로써의 명분을 안고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해석입니다.
순욱은 끝까지 한의 충신으로 남음으로써 순자의 후손으로써의 종가의 명분을 지키고
위왕에 찬성한 순유는 후손이 없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영천 순씨가 앞으로 정계 진출을 하는 큰 그림을 보면 순욱 한 사람의 목숨값으로 조조 이후 시대에 많은 것들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ps. 조조(操) 맹덕(德)의 조와 덕은 순자의 권학의 덕조(德操, 덕행과 지조)에서 따온 것인데.. 그 후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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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Unninni 작성자
05.09 · 118.♡.85.101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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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대길
05.09 · 106.♡.78.162
20대 시절 연의와 관련 서적들까지 읽었던것을 회상해보면 순욱과 곽가의 차이가 느껴졌죠
순욱은 보다 올바른 군주 나라를 바로세우길 원해 자신의 주군에게 쓴소리도 했지만 곽가는 자신의 군주가 최정점에 올라서길 바라 순욱 보다는 권모술수(?)에 더 능하고 그런쪽으로 계책을 많이냈죠
둘다 죽은 이후 조조가 비통해했다고는 했죠
순욱이 살아있었다면 조조가 나라를 건설하는데 동의하지 않았을거고 곽가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겠죠
20대 초중반까지 연의도 정사도 많이 봤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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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이대길 작성자
05.09 · 118.♡.84.59
나이들어서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달라보이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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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삼국지 읽으면서 그걸 보고 . 순욱이 너무 확대 해석하네.. 라고 갸우뚱 했는데,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순욱이 조조 아래서 잘 나가고 있다면, 조조가 빈 밥그릇을 보내도, 뭔가 담당자가 실수를 했겠군.. 라고 웃고 말았을겁니다. 하지만 이미 순욱은 이미 조조 휘하 아래서 이미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있었고, 조조도 순욱을 차갑게 보고 있다는 것을 순욱도 알았을겁니다.
그러니 빈 밥그릇의 의미를 모르고 넘어갔다고 해도, 남은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초가 닥쳐왔을 것이고, 의미를 알았다면, 빨리 생을 마감하는것이 더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남겨진 자식들이 있으니 끝까지 버티다 숙청을 당하면 자식들에게 화가 돌아갈것이고, 지금 자기가 목숨을 끊는다면, 조조는 반드시 남겨진 자식들에게 불이익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중용을 할거라는 기대나 예상을 했을겁니다. 사실 조조는 살아 생전 아무리 미워한 상대라도 그 자식과 가족들에게는 상당히 관대했던 인물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