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he (218.♡.103.95)
2026년 5월 14일 PM 11:11
엔리코 페르미의 생애를 다룬 평전 성격의 책인, '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셨고, 물리학을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분의 업적을 몰라도 모를 수가 없는 이름입니다. 보통 화학시간에 배우는 하나의 오비탈에는 2개의 전자만 들어갈 수 있고, 이때 전자의 스핀은 위,아래로 서로 반대여야 한다는 (최소한의) 배타원리를 충족하는 입자를 페르미입자(페르미온)이라고 하고 그 페르미가 이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거죠.
이 사람은 현대과학자 중 가장 유명한 천재물리학자인 파인만이 공식적으로 '나보다 훨씬 똑똑했다'라고 인정했던 양반입니다.
이 분은 방사선을 연구했던 이들이 대개 오래 못살았듯이 54세인가에 이른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방사선 영향인지는 확실치 않고 그렇게 추측할 따름입니다). 그의 과학적 통찰에 대한 에피소드, 죽음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 평소 이 분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인들의 전언입니다.
파인먼, 슈빙거, (신이치) 토모나가의 연구를 조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젊은 이론가 프리먼 다이슨에게도 페르미의 파이온-양성자 산란 연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다이슨은 코넬 대학교의 조교수였고, 작은 그룹의 대학원생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파이온-양성자 상호작용의 이론적 계산을 양자전기역학의 분석에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기법으로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파이온-양성자 상호작용에 관련된 힘은 양자전기역학의 힘보다 훨씬 강하지만, 다이슨과 그의 학생들은 이 점을 중시하지 않고 계산해서 페르미가 시카고 사이클로트론으로 얻은 것과 꽤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그들은 몇 년에 걸친 연구로 이런 결과를 얻었고, 이것을 완성한 1953년 봄에 다이슨은 코넬에서 시카고까지 버스를 타고 페르미에게 결과를 보여주러 갔다.
다이슨은 페르미에게 열정적으로 자기 연구를 보여주려고 했다. 한동안 사담을 나누다가, 페르미가 다이슨의 결과를 보자고 했다. 다이슨은 50여 년이 지난 2004년에 페르미의 판단에 대해 회고했다. 페르미는 이렇게 말했다. "이론물리학 계산을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계산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 대한 명료한 물리학적 그림(모델)이 있어야 해. 또 다른 방법은, 상세하고 자기충족적인 수학적 형식론이 있어야 하지. 자네의 연구에는 둘 다 없군."
다이슨은 깜짝 놀라서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다. 페르미는 다이슨이 사용한 수학적 기법이 풀려고 하는 문제에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가 자신의 결과가 페르미의 1951~1952년 실험에서 측정한 값에 매우 가깝다고 반박하자, 페르미는 다이슨의 계산에는 임의적인 매개 변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페르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친구 노이만은 매개 변수가 넷이면 코끼리도 키워 맞출 수 있고, 다섯이면 코끼리가 코를 흔들게 할 수도 있다고 했지." 이 말을 듣고 다이슨은 코넬로 돌아가서 몇 년에 걸친 연구 결과가 페르미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슬픈 소식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다이슨은 이 일을 회상하면서 쓰라려하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인 줄 모르고 계속 달려가는 시간 낭비를 막아준 페르미에게 감사해했다.
"50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우리는 분명히 페르미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한 힘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발견은 쿼크였다. 중간자와 양성자는 쿼크를 담는 작은 자루이다. 머레이 겔만이 쿼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강한 힘에 대한 어떤 이론도 적합하지 못했다. 페르미는 쿼크에 대해 전혀 몰랐고, 쿼크가 발견되기 전에 죽었다. 그러나 그는 1950년대의 중간자 이론에 뭔가 핵심적인 것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리고 이론과 실험의 불일치가 아니라 페르미의 직관이, 나와 학생들이 막다른 골목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울람은 메트로폴리스와 함께 갔던 마지막 방문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플라톤이 했던 말을 메트로폴리스에게 했다. "이제 가장 현명한 사람이 죽는다."
그의 두 친구 찬드라세카르와 울람은 페르미의 죽음과 페르미의 위대한 친구 존 폰 노이만이 2년이 조금 지난 뒤에 똑같이 53세에 맞이한 죽음을 비교하는 긴 글을 썼다. 노이만은 자기의 뛰어난 수학적 정신이 죽음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이만은 유대교를 따르지 않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어하는 약혼녀를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노이만은 카톨릭 신앙을 편안함과 위안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지만, 카톨릭은 그에게 게 둘 다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비해 페르미는 드문 평정심으로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개는 현실적으로 얼마간 비판적이었던 평소의 인생관 속에서 받아들였다. 페르미에게는 과학이 종교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했다. 그는 살았던 것과 똑같이 죽었으며,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색을 할 필요가 없었다. 페르미로서는 자기의 삶은 그의 비범한 정신이 꺼지는 순간에 끝나지만, 그의 업적은 계속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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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땃해
05.14 · 175.♡.111.111
- 코
코르사코프
05.15 · 121.♡.58.139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 앉아요.
페르미 디락 파울리 등등 많지만 그래도 인만이 아저씨는 파인만 강의때문에 지금도 친구같아요.아직도 가끔 보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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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열대키맨
05.15 · 58.♡.226.33
페르미, 폰 노이만, 파인만 등이
동시대에 존재 했기에 미국이
달에 우주인을 보낼 수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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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드리셋
05.15 · 223.♡.112.203
저기 나오는 다이슨이 그 청소기 다이슨인가요?? ㅎㅎㅎ
- 바
바람에날려
→ 하드리셋
05.15 · 220.♡.111.130
진지빨고 답하자면, 아닙니다. 청소기 다이슨은 다른 사람이고, 본문의 다이슨은 물리학지빨고 답하자면, 아닙니다. 청소기 만드는 다이슨은 디자인 전공의 다른 사람이고, 본문의 다이슨은 물리학에서 큰 업적은 남긴 학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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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드리셋
→ 바람에날려
05.15 · 223.♡.112.203
오~ 다른 사람이군요... 청소기 다이슨도 공학?이라 들었는데 디자인 전공이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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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변수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