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양이 (223.♡.75.187)
2026년 5월 16일 PM 11:39
4.3학교가 작년부터 봄가을로 열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작년 가을에는 다른 일정이랑 겹쳐서 못 갔던 것 같고, 오늘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지난 달에 있었던 4.3영화제 때는 2030세대의 참여가 많았다는데, 답사는 역시나 검은 머리는 별로 없고;; 흰 머리 히끗히끗 하신 분들 위주로 참여하셨습니다. 최연소 참가자는 5학년이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분들이 가장 많았고(저도 민문연 회원인데 답사 소식을 보내주셨어요.) 제주4.3범국민위원회 회원분들도 많이 참여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버스에서 이동 중에 자기 소개 시간이 있었어요.
이번 답사는 4.3범국민위원회와 4.9통일평화재단 후원으로 진행된 것으로 본 것 같은데 단체사진을 받아봐야 현수막에 적힌 것을 보고 정확히 파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답사 코스는 현충원(동작동 국립묘지)의 4.3길을 거쳐 점심 식사 후 문상길, 손선호 사형터에 들러 옛 남영동 대공분실 관람까지 이어졌습니다.
현충원에서 10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답사는 꼭 10분씩 지연되기 마련이죠. 그래서 12시 40분에서야 끝이 났고 2시간 30분간 들은 내용만 A4지 5페이지를 빡빡하게 적어와서 6.10만세운동 사적지 답사 후기보다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우선 작년 가을에도 민문연 회원분들과 현충원에 다녀온 적이 있고 후기도 올렸었는데요.
https://damoang.net/tutorial/16045
이 때 가졌던 의문이 오늘 풀린 게 있었습니다.
그건 나중에 적도록 하고 우선 4.3사건에 대한 소개부터 해야하는데, 제가 간략히 줄여서 적을 재주가 없는 관계로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에 적힌 내용을 먼저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jeju43peace.or.kr/kor/sub01_01_01.do
그리고 관련자 중에 이 곳 동작동 국립묘지(현충원)에 묻힌 인물들과 주요인물에 대해 간략히 소개 드리고(제미나이가 정리), 묘소에서 들은 내용은 사진과 함께 적겠습니다.
제주 4·3사건 초기, 진압 방향을 둘러싸고 '평화적 해결(김익열)'을 주장한 인물과 '강경 진압(박진경)'을 주도한 인물, 그리고 이에 저항한 군인들(문상길·손선호) 사이에 극적인 비극이 있었습니다.
① 김익열 제9연대장 (평화 협상 노력)
역할: 4·3사건 발발 직후,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 '4·28 평화협상'을 체결하며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교체: 하지만 미군정과 경찰 등의 방해(오라리 마을 방화사건 등)로 협상이 깨졌고, 평화 기조를 고수하던 김익열 연대장은 해임되었습니다.
② 박진경 대령 (강경 진압 주도 및 최근 이슈)
역할: 김익열의 후임으로 부임한 인물로, "제주도민 30만 명을 다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식의 강경 진압 기조를 내세웠습니다. 부임 한 달 만에 수천 명의 주민을 무차별 체포·연행하며 사태를 극도로 악화시켰습니다. 부임 40여 일 만인 1948년 6월 18일, 부하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최근 이슈 (국가유공자 지정 논란): 2025년 10월, 국가보훈부가 과거 그가 받은 무공훈장을 근거로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면서 제주 사회와 유족회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4·3 학살 책임자를 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2025년 12월)하였고 정부는 서훈 취소 및 재검토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③ 문상길 중위 & 손선호 하사 (박진경 암살)
역할: 조선국방경비대 제9연대 소속 군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박진경 연대장의 무자비한 동포 학살 명령에 강한 불만과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거사: "동포를 학살하는 군대의 부품이 될 수 없다"며 1948년 6월 18일 새벽, 문상길 중위의 지휘 아래 손선호 하사가 취침 중이던 박진경 연대장을 사살했습니다.
결말: 이들은 도망치지 않고 체포되었으며,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48년 9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호 사형 집행'으로 총살형에 처해졌습니다. 문상길 중위는 법정에서 "인간의 법정은 불공평해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여러분은 조선의 군대다"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늘 답사는 김학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님이자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이사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김학규 선생님은 '현충원 역사 산책'이란 책도 쓰셨는데요. 언제 날 잡고 읽어봐야겠습니다.

처음 간 곳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 묘역에 있는 채명신 장군의 묘였습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묘역은 고개 너머에도 있는데 이 곳은 70년대에 돌아가신 분들의 묘역입니다.
국립묘지가 1956년 6.25 사망자들을 모시는 군인 묘지로 시작하여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독립운동가, 경찰, 소방대원, 의사상자까지 폭넓게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군인들 묘역은 장군, 장교, 사병 묘역이 따로 있었는데 장군 묘역이 공화국의 정신과 안 맞는다고 하여 2005년에 법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대전현충원이 2020년까지 장군 묘역이 7배나 더 크게 조성되었었다고 하는데요.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까지 다 찬 2020년 이후에 사망하는 장성들은 계급과 상관없이 일반 병사·장교들과 똑같은 1평(3.3㎡) 크기의 공간에 화장된 형태로 안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에 채명신 장군(베트남전 초대 사령관)이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을 거부하고, 사병 묘역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인 문정인 여사가 참전용사 2번 묘역 앞에 잔디 공간이 많은데 왜 서울에 공간이 없다고 하냐고 정부에 공문을 발송하여 결국 이 곳에 채명신 장군이 묻힐 수 있었는데, 묘가 맨 앞에 위치하고 있기에 죽어서도 사령관인 명당 자리라며 묫자리도 상당히 정치적이라고 평하셨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육사 5기로 1948년 4.3봉기 일주일 후에 제주에 부임했고 회고록도 많이 남겼는데 4.3 관련해서 박진경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김익열을 계속 의심했었다고 합니다.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반성적 진술을 많이 했지만 끝까지 박진경과 서북청년단을 비호했다고 하구요.
영락교회의 전도사였기도 하고 서북청년단과 유대감이 있어서, 이들을 용맹했다고 비호를 했다고 하고, 4.3에 대한 반성없이 베트남전의 초대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빈 깡통, 총알 탄피도 다 한국으로 보내서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하지만, 베트콩이 한국군으로 변장한 거 아니냐고 발언하는 등,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반성이 없었다고 합니다.
100 베트콩 놓쳐도 1명의 민간인을 살려야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고, 현실을 이해를 못 한 건지, 알면서도 외면했는지 모르겠지만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CIA가 아닌 또 다른 정보기관 DIA(우리나라의 보안사 같은 국방정보부)에서 한국인에게 보여주지 말 것을 전제로 했던 자료가 2017~2018년쯤 공개되었는데, '왜 전두환, 정호용, 노태우는 동족인 광주시민을 학살했을까,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 경험이 있어서 광주시민 학살이 가능했다, 이것은 이전과는 다른 경험이다.' 라고 평했는데 4.19때 동원 됐던 군인들이나 6.3때(박정희 정권 당시 한일회담 반디 시위) 의 군인과 달리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평했다고 하는데요. 사실 그 선배들도 4.3때나 한국전쟁때 민간인 학살을 했던 경험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 그 때 단죄하지 못하면 반드시 역사속에서 보복을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다음 장소는 유종철 일병의 묘였습니다.
1972년 베트남전 안케패스 전투에서 우리 군 73명이 사망했고 이 때 유종철 일병이 실종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베트콩은 오랑캐라 한국군이 포로가 됐을 리 없다며 그냥 전사 처리해버렸고 묘 자리도 만들어뒀는데 유종철 일병이 1년 후 태극기를 휘날리며 김포공항에 나타납니다.
미군 포로와 같이 석방되었기에 운 좋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전사 처리가 되어있었기에 호적 정리가 문제였는데, 예수 이후 최초로 부활하신 분이 이 분이라고 합니다. ㅋㅋㅋ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는데요. 실제로 방송에서 보여진 적이 있어서 그 링크를 가져옵니다.
베트남에서 1973년 철수할 때 이세호 사령관이 포로는 한 명도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답변했었고 공식적으로 지금도 8명의 실종자만 인정하고 있지만, 살아남은 상당수가 북한으로 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간첩 증언으로 알 수 있는 분들도 계셨다고 해요. 북한에서도 제한적으로 참전했어서요.)
미군에서는 포로 송환, 유해 발굴을 하다보니 누가 살아있고, 누가 탈출하다 사망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애국이란 이름으로 동원한 장병들의 생사도 왜곡하고 은폐했던 것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이 유종철 일병이고, 꼬꼬무에도 그 사연이 소개됐었습니다. 위의 짧은 영상 말고 긴 영상을 한 번 보고 싶군요.
아직 1/5도 다 못 적었는데 내용이 너무 길어지면 적는 저도 힘들고 읽으시는 분들도 힘드실테니 4.3학교 서울 답사 후기 1편은 여기서 마치고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몇 편에 끝날지 알 수가 없네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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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굴개굴이
05.16 · 112.♡.1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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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개굴개굴이 작성자
05.16 · 223.♡.75.187
답사도 힘든데 후기 작성은 더 힘들어요. ㅋㅋㅋ
그치만 다모앙에 후기 올리려고 답사 갑니다. ㅋㅋㅋ 이렇게 적고 보니 좀 변태 같네요. ㅋㅋ
- C
concept
05.17 · 223.♡.75.152
국가폭력의 현장을 답사하셨군요. 우리 모두 이렇게 과거를 통찰함으로써 현재도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폭력을 폭로하고 막아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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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concept 작성자
05.17 · 223.♡.75.144
네, 마지막으로 간 곳이 남영동 대공분실이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리모델링 하면서 내부가 많이 바뀌어서 더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돼있더라구요. 고통스럽지만 피하지 않고 과거를 직시해야겠고 그 과거를 통해 얻은 교훈으로 현재와 미래를 잘 가꿔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답사가 길었어서 후기는 꽤 여러편이 될 것 같아요. 얼마 못 잤지만 또 더 작성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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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름숲
05.17 · 223.♡.87.201
저도 작년에 대공분실을 다녀왔는데
영상으로 보던 것과 실제 그 건물에 그 방에 들어가보는건 다르더군요.
민주시민들이 느꼈을 공포가 어느정도였을지 상상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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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여름숲 작성자
05.17 · 223.♡.75.207
아 작년에 다녀오셨으면 리모델링 후라 칠성판이랑 있는 그 방에서 영상이랑 보셨겠네요.
2012년에 처음 갔을 때는 그런 게 없었고 영화 ‘남영동1985’ 보고도 울고 나왔는데 어제 그 곳은 너무 오싹하더라구요. 서대문형무소 보안과청사 지하 고문실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ㄷㄷ
그 후기는 현충원 후기 마치고 뒤에 올리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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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