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sryche (124.♡.34.90)
2026년 5월 21일 AM 12:00
1) 20세기 말쯤 운이 좋아 대기업 해가 저물어가는 계열사에 다니던 어느날 모기업이 우리부서를 분사시킨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노동조합 간부로부터 '갑'이 펼칠 일들과 노사협상에서 우리가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단계별 계획을 듣고 곧바로 거진 다 조합원이 됐고 업무 후 뉴스에서 보던 -단결- -투쟁- 붉은 머리띠도 두르고 최루탄향기 빠진 <임을 위한 행진곡>부터 개사한 빠른가요들 까지 며칠 예습하고 도착한 여의도 본사는 방석모와 방패로 기선제압하려는 '갑'이 배치한 경찰과 각지에서 올라온 덩치좋은 조합동지들이 옥신각신하다 구호를 외치며 해산하고 -> 노사협상 -> 결렬 -> 다시 본사 로비, 강당, 나중엔 사장실 복도까지 점거(?)하고 밤샘도 합니다.
수차례 농성 시위와 재협상을 반복하다 만들어진 몇개의 합의안을 조합원 투표에 부치고 파업대신 합의문을 받아들입니다.
사직서와 사원증을 내주고 한달쯤 뒤 왕고참은 전세를 옮길만큼 사수는 차를 바꾼다는 계획을 짬밥수가 미미한 막내는 연봉가까운 보상을 받고 첫 직장과 헤어집니다.
87 항쟁을 지나 올림픽까지 치룬 뒤 였지만 이름뿐인 대기업 딱지가 붙은 버스를 타고온 노동자들을 보는 시선은 그때도 차가웠습니다.
지금은 그때를 폭력과 야만의 시대라 부르지만 처음 본 본사의 사무직 심지어 조합원도 아니라고 말한 많은 이들이 건넨 뜨거운 마음.
투쟁 끝에 전직원 고용승계를 받아내곤 다들 부둥켜 안고 환호했습니다. 이 때의 기억이 아직도 바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믿음으로 남아있습니다.
2) 여기서 부턴 제 얘기가 절대 아니고 친구 얘기라 조금 비틀어 옮깁니다.
21세기 초 노동조합 지부를 만들려 한 적 있습니다.
순둥순둥 성실한 후임이 연차와 병가까지 끌어다 써서 그 선례때문에 현장운영에 애를 먹는다며
따뜻한 퇴사권유와 실별 휴가계획을 월말 제출하라는 공문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조합을 통한 단체협상이 아닌 기준없는 고과성적표를 휘두르는 개별 연봉체결에서 '을'인 개인은 움츠리고 수동적으로 길들여집니다.
- 중이 떠나야지 직장이 여기만 있나.
- '갑'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같이 힘을 모아야지. 둘로 갈립니다.
행동에 공감하는 몇몇의 요청에 냉정하게 생각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라고 얻고 잃을 수 있는 몇개를 말해줍니다.
엮이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는 고참이 이름을 팔아도 좋다고 하니 그들의 얼굴이 밝아집니다.
...
IMF를 격으며 극도로 파편화 된 그시절 모두의 손엔 전화기가 있고 정보를 많이 가진 '갑'에게 '을'은 무력합니다.
연대의 손인줄 알고 '갑'에게 간 결혼을 앞둔 젊은이는 해외여행과 이후의 편한 미래를 다정하게 약속받고 리스트를 넘기고
본사 no. 3께서 통화하고 싶으시다고 친구는 내게 번호를 전합니다, 누구는 집앞에서 만난 처음보는 동료가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
쿠데타는 없었던 것처럼 탄압도 불이익도 없이 지냅니다 보이지않는 울타리 사이로.
이후 발령, 파견 면담엔 노조에 가입않는다는 구두 약속을 받고 다른 업체보다 좀 더 많은 연봉에 싸인한다고 본사 프락시 임원이 한참 뒤에 알려줍니다.
며칠 전 회의실 나오며 전자회사 노조를 빗대 누군가 말합니다.
- 왜 조합비 내고 그욕을 들어 타결되면 비조합원도 혜택 동일하게 적용받는데.
그는 가난한 노동자이며 전자회사에 배팅하고 마음마저 가난해진 주주이기도합니다.
제 주위 노동자의 인식은 시간을 빠르게 거슬러 달려갑니다.
기업은 기부도 하지만 자선단체는 아니죠.
노동자도 현재의 안정된 삶과 보장된 미래만큼만 일하구요.

오늘도 컵이 하나 늘어납니다
여름셔츠 찿느라 4년만에 뜯은 박스 이사오며 완충재 옷안에 감싼 컵과 접시가 나옵니다






내가 쓰는 컵 : 하얀색 자기, 사각 머그, 투명유리 + 파란색까지만

알록 달록 컵들은 손님들겁니다. 손님도 종이컵 못씁니다.
이사오기 전 기억나는 친지 이웃은 찿아가 즐겨쓰시던 것들 드리고 미연고로 남은 것들이네요
오래 전 멈춘 탐욕의 흔적에 몸서리칩니다.
20년 넘게 입에 대지않는 컵도 있죠
종이컵.
한번 쓰고 버려진 컵이 자신을 보는듯해 일회용 컵을 쓰지 못한다는
해고된 KTX 승무원 인터뷰 기사를 본 뒤 부텁니다
(전태일 세글자와 함께 게시글을 누르고 싶지 않은 아직도 아픈 이름 그분을 단한번 미워한 때였습니다.)
(그 DNA를 물려받은 잼프도 작년 이맘때까지 아픈 이름이었습니다)
2)를 격은 뒤라 저 말이 가슴에 깊히 박혔습니다.
이때 부터 어디가면 신경치료 중이거나 배가아픈 사람, 밤에 잠못자는 사람이고
식당에선 물을 안마시는 사람입니다. 국에 밥을 말고 공기에 물을 따르지만요
- jr하지 말고 대충 살어 sk야!
오랜 친구 몇 말고는 사이비 환경주의자로 오해하게합니다.
이런 유난을 떨곤 타지도 썩지도 않는 컵들을 사들이고 있었던거죠.
머그에 옮겨 마신적은 있어도 지난 20여년 받아 쥔 종이컵은 열개도 안될겁니다.
작년엔 아스팔트 위에서 두번이나 종이컵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두통과 추위를 이기게 했고 한번은 돼지고기 가득품은 빈대떡 힘들었지만 감사히 먹었습니다.
이상 접시에 발등찍힌 고통에 낮에 사무실에서 논란이 된 못된 컵이 생각나 끄적인 뻘글이었습니다.
P.S. : 지난주.
묵은지 목살조림의 여운을 씻어주려 투명컵에 담겨 구내식당 출구에 줄지어 선 냉매실을 보기만하고 지나자
- 주스도 식비에 포함됐어요. 영양사님이 다른 주스병을 건네고 이마저 웃으며 손사래치니
배식대 여사님은 " *장님 단거 안드셔"
꼰대가 직장을 너무 오래 다녀 여러사람 번거롭게 하네요
눈치챙겨 받을걸 그랬습니다.
댓글 (14)
-
LLV426
05.21 · 39.♡.223.199
-
Qqueensryche
→ LV426 작성자
05.21 · 211.♡.154.174
나이. 불의 앞에서 그리고 물질 앞에 그 많고 적음이 다르지 않네요. 관성대로 구르는 아니 뒷걸음 하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
냉냉동실발굴단
05.21 · 61.♡.57.28
컵 예쁜 거 많이 갖고 계시네요!! +_+ 저희집은 공간 부족으로 컵이 몇 개 없어요. ㅠㅠ
-
Qqueensryche
→ 냉동실발굴단 작성자
05.21 · 124.♡.34.90
작년 단장님이 제손에 일회용 컵 하나를 쥐어주셨습니다!!
-
냉냉동실발굴단
→ queensryche
05.21 · 61.♡.57.28
제가 악당이군요 ㅋㅋㅋㅋㅋㅋㅋ
-
까까꿍
05.21 · 182.♡.244.137
아... 글 읽고 나니 먹먹합니다.
-
Qqueensryche
→ 까꿍 작성자
05.21 · 124.♡.34.90
괜한 옛 기억을 끄적였나 후회합니다.
-
이이적
05.21 · 122.♡.247.124
세상살이가 보이지 않는 빡빡한 거미줄이지요.
내가 숨쉬고 누리는 것들은 이름모를 선배들이 동지들이 목놓아 외치고 때로는 맞고 돈 뺏겨 가며 이루어진 건데 막상 눈에 보이질 않으니 금방 잊혀져요. 참 슬프게도요.
-
Qqueensryche
→ 이적 작성자
05.21 · 211.♡.154.174
타인이나 바깥을 향해 커다란걸 바라거나 외친적 없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
대신 동지들과 있으면 두렵지 않았고 쪼잔한 내가 아닌 큰 힘을가진 다른 나여서 좋았습니다.
-
JJava
05.21 · 116.♡.70.94
참 씁쓸한 요즘입니다.
시기와 질투와 증오를 가득 담은 말들로,
연대할줄 모른다고 욕을 합니다.연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삼성노조가 연대못해서 망했답니다.
구조화되어 사회적으로 조장되는 갑질이, 대기업노조/삼성노조 책임이랍니다.
제가 왠만하면 고개돌리지 않는데요.
요새 고개가 절로 돌아갑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건강 챙기시고, 은퇴 생활하면서 여유가 있는 만큼 또 도우면 되지 않을까요?
지난 겨울에 나이 먹은 인간들의 절망을 깨는 키세스 단이 있었잖아요. 우리가 아니어도, 다음에 다른 세대가 또 더 낳은 세상을 꿈꾸며 싸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