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nbetterlife (220.♡.37.28)
2024년 5월 15일 PM 12:21 · 수정됨(13:29)
"People help the people /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
And if you’re homesick, give me your hand and I’ll hold it /그리고 당신이 향수병에 걸렸다면, 손을 내밀어요 내가 잡아줄게요.
People help the people /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
And nothing will drag you down / 그리고 아무것도 당신을 끌어내리지 않을 거예요.
Oh and if I had a brain / 나한테 머리가 있었다면
Oh and if I had a brain/ 나한테 머리가 있었다면
I’d be cold as a stone and rich as the fool/ 나는 돌처럼 차가워지고 바보같이 부자였겠죠
That turned, all those good hearts away / 그리고, 좋은 마음씨들은 다 사라졌겠죠"
이 소식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양 자로 갈립니다.
'학교에 기부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평생 고용을 보장해 드릴 법적,도의적인 의무는 없습니다.'라는 의견과
'그가 기부한 것은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에 대한 보답을 실현하고자 하는 선의였습니다. 선의를 저버리는 일이 쌓일수록 소속감은 무의미해지고, 서로를 돕지 않는 삭막한 사회가 됩니다.'
라는 의견이 나뉘더군요.
이 사연의 전후맥락과 후일담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번을 택하신 분들도, 사건의 세부 사항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1. 후회없는 성실한 삶
기사들을 종합하면, 김방락 선생님은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보내시고,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버셨음. 20세에 군에 입대. 8년간 공수특전단 부사관(중사 전역)으로 군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서울 거리 퍼레이드 당시 강하도 하고 군생활 마지막 1년은 월남전 참전도 해봤다`고 회고하시더군요.
전역 후 국방부 군무원으로 재취직. 건축담당관으로 26년간 일하시고.05년에 정년 퇴직하셨답니다. 아파트도 있으시고, 연금도 나오셨습니다. 10년간 한성대 에듀센터 경비원으로 일하셨다고 하니. 퇴직후 바로 재취업하셨나봅니다. ( 정년 퇴직 후 연금이 있지만 뭐라도 하는 경우는 많음.) 보통 경비가 격일제로 근무(1일 근무, 1일 휴식)으로 하는데. 사실 제대로 쉬는게 아니죠...
그럼에도 경비원으로 일하시면서 12년에 늦게라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셨다고 하더라고. 14년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1억 기부자 인터뷰 기사때. 김방락 선생님 평생 꿈이. `1억을 한 번 기부해보고 싶다` 고 하셨고. 이를 위해 10년을 돈을 모으셨다고 하십니다.
당시 소감도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작은 돈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정말 큰돈이다. 왜 갈등이 없었겠나. 오히려 돈이 많은 사람이 결단을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 고민이 하기 싫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결단을 내렸다"
라고 존경할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후 부자들만 기부하는거란 인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라 많이 기부하는 훈훈한 현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2. 한성대의 거짓말들
자. 그리고 드디어 2014년 11월, 67세의 김방락 선생님에게 한성대가 기존 용역 고용업체를 통해 `연말까지만 일하라`고 해고를 통보했다는 타임라인에 다다랐습니다.
한성대는 그 과정에서 해고 배경을 설명하거나, 위로같은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를 알게된 한성대 학생들이 언론에 제보했고. 기자들이 찾아가 한성대 측에 물어보니 한성대는 외부 경비업체와 계약을 새로 하면서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고 인력절감 차원에서 50% 인력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겁니다.
무인시스템 도입에… '기부왕' 경비원도 쫓겨날 판입력 : 2015-12-23https://www.segye.com/newsView/20151223004097
세계 일보 기자의 질문에 김방락 선생님은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죠.
"“(대학에서)감사 인사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를 헌신짝 버리듯 내버리려 하니 배신감이 듭니다.” “(나의) 기부 사실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학교 측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저도 오랜 직장이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토사구팽’을 당한 것 같다”
위 짤방인 채널A보도도 그 즈음에 나온거죠.
한성대는 배은망덕한 놈들이란 비판을 들었던지라. 총무처를 통해 대응을 하긴했습니다
`아. 그거 사실아님. 우리가 경비원과 청소부를 외주로 고용하고 있었는데 인건비 부담이 좀 되더라고, 거기에 시민단체에서 미화원 직고용하라고 해서,미화원은 희망자를 직고용하고. 경비원은 캡스의 통합경비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자르기로 한거지. 근데 우리도 할만큼 했어. 캡스측에서 지금 경비원 16명을 고용하라고 했다니까? 근데 김방락 선생님이 이력서를 안내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함? 우리 책임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이력서 내시면 재취업 해드릴께. 보도 나간거 잘못된거라고 정정보도 신청했고, 그쪽에서도 정정보도 한다고 했어`

... 말이 좀 안되는 것 같죠?
한성대측의 말대로라면, ` 김방락 선생님이 한성대의 제안을 거절하고, 언론측에 학교가 본인을 해고 했다고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했다`란 거죠.
16년 1월 세계일보 기사에서는 역시 한성대 측이 거짓말을 한걸로 판명 납니다.
'기부왕 경비원' 결국 해고…"할일 없는 아침 괴로워" 2016-01-24
https://www.segye.com/newsView/20160123001259
김방락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보도(작년 12월)가 나간 뒤에도 연락 한 통 안 하더라고요. 내가 한성대 총무처에 두 번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담당자랑 통화도 못했고 다시 전화를 걸어 오지도 않았어요. 내가 속이 너무 좁은 건가요?”"“매일 새벽 5시면 눈이 저절로 떠져요. 잠깐이지만 그때 이불 속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요. ‘이제 제가 필요한 곳도, 어디 갈 데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꽉 채우거든요.”
.... 언론을 통해 한성대가 쌍욕을 처먹으니까, 학교측에서 수습한다고 일단 언플 해놓고, 잠잠해지니까 모른척한거죠.
언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김방락 선생님의 근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속 경비원으로 자신을 소개하시더군요. 17년도에는 한성대가 아니라 숭의여자대 경비원으로... 22년도에는 동대문 시장 경비원으로 말이죠.
[2017 희망 두르림] 김방락씨 "칠순 재취업만으로 기뻐···기부 울림 계속 이어갈 것"
"최근 손자를 잠깐 봐주기 위해 들른다는 서울 이촌동 아들네 집 근처에서 만난 그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지난해 11월 남산자락에 위치한 숭의여자대 경비원으로 재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실직 후 새벽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밀려왔지요. 손자 봐주기만 하던 10개월 동안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재차 깨달았습니다.”
"매주 6일 밤 근무를 서는 숭의여대 경비 일이 쉽지 않지만 일하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김씨는 만족한다. 공동모금회에 기부한 1억원도 한성대 근무 시절 월평균임금 120만원에서 일부를 떼 적금한 목돈이었다. 기부액 중 일부는 기부자의 의사대로 기탁할 수 있는데 가족같이 정든 학생들을 떠올려 1억원 중 1,000만원은 5명의 재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그래서인지 학교를 떠날 때 서운한 감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학교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실직 중에도 작은 기부는 이어갔다. 지난해 공동모금회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초청했을 때도 빈손으로 가기가 아쉬워 돼지저금통을 깨 5만원 정도 기부했다. 김씨는 “기부는 자기 욕심과의 싸움이기도 하다”며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이 생기기 어렵기에 작은 것부터 나누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8년이 지난, 지난 12일 김씨를 다시 만났다. 지금도 동대문 문구·완구 시장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3.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
"한성대학교" 의 구성원 전부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개별 학생이 언론에 이를 제보했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본 한성대의 학생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공론화에 조력했죠.
과거처럼 학생회가 활성화되었고, 학생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교직원이 결정했습니다. 교직원들은 책임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이를 지울 방법도 없을 것입니다. 해당 공지를 게시한 사람은 여전히 교직원으로 재직 중이었겠죠. 지금 쯤이면 연차가 더 쌓여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겠지요.
우리 사회에 김방락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좋은 사회가 될 것이고, 한성대학교의 교직원과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더 '낮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사건 발생후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각자도생에 자력구제만이 남았더군요.
저는 `한성대 교직원`같은 사람들이 책임있는 결정을 하는 곳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요즘은 선의를 응원하고, 불의와 배신에 개탄하는 것 뿐만아니라. 선의를 구조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까 고민중입니다.. 책임을 진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어보이니, 상식을 가진 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해봐야죠..
..
Birdy (버디) "People Help The People" 가사중
"신은 이 보잘 것 없는 세상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아십니다.
눈물 뒤에, 거짓 속에
천천히 죽어가는 수천 개의 일몰
신은 저 약하고 취한 마음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아십니다.
외로움이 찾아온 것 같아요.
누구도 혼자이거나 가라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 선의를 구조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지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댓글 (7)
- 푸
푸른미르
24.05.15 · 121.♡.229.250
-
Ddiynbetterlife
→ 푸른미르 작성자
24.05.15 · 220.♡.37.28
개인의 자발적인 선의조차도
구조적 선의가 사회에 정착하면 더욱 확산될 것 같습니다.
안해야 할 일을 하는 쪽은 갑.
안해도 될 일을 하신 분은 을.
선의를 받는쪽도 주는쪽도.. 사회의 역할이 줄어들수록 버거울테니까요.
구조적으로 소외될 수 밖에 없게 만들어놓은 측면이 분명히 있는데도,
개인에게 고통을 모조리 감당하라는 건 야만이죠.. - 푸
푸른미르
→ diynbetterlife
24.05.15 · 121.♡.229.250
다른 곳도 아니고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하는 대학이란 곳에서
돈만 밝히는 짓을 했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죠
저 대학이라면 돈이 그렇게 부족한 대학도 아닐텐데요 -
Ddiynbetterlife
→ 푸른미르 작성자
24.05.15 · 220.♡.37.28
결국 외주가 아닌 직접고용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였고요.
한성대 이후 칠순의 나이로도 취업했다고 하시니까요.
[https://s3.damoang.net/data/editor/2405/comment_3696764188_yxavS06Z_aa5f6878061f7f0044c5341750dca8199728e861.jpg] - 불
불러올수있는애들다데려와
24.05.15 · 223.♡.78.249
타 사이트에서 본 댓글인데요, 당시 이미 정년이 지난 연령이셔서 좀 애매했던거 같네요.
- 2015년 말에 있었던 일
- 당시 경비미화 업무에 대해 외주 업체에서 관리 중 2년 계약 만료 시점
- 용역업체 직원 중 정년(61세) 이하인 분들은 모두 대학에서 직접 계약 형식으로 고용하기로 함
- 김방락씨는 68세로 고령이어서 직접 고용이 안됨
- 학교와 계약 만료된 용역 업체에서 아저씨에게 해고 통보
- 직접 고용 대상이 아닌 분들은 학교 용역 업체(ADT)에 재취업 알선을 하고자 하였으나 김방락씨는 이력서 미제출 -
Ddiynbetterlife
→ 불러올수있는애들다데려와 작성자
24.05.15 · 220.♡.37.28
그 부분을 2번 항목에 설명한 것 같습니다. 결국 외주가 아닌 직접고용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였고요. 한성대 이후 칠순의 나이로도 취업했다고 하시니까요. -
→ 불러올수있는애들다데려와
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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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야 할 일을 한 놈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