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그냥 올리는 시(詩)
7
7번교각 (106.♡.122.157)
2026년 6월 2일 PM 04:18
조회 1,600 공감 0
다시 배우는 걸음마
어려서는 발끝만 보고 걸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세상이라길래.
그러나 정수리도 이마도 성할 날 없어
사람들과 부딪기라도 하면 나는 주눅이 들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사람이라길래
고개를 떨구고 행여나 발밑을 조심했는데
사람들에게 나는, 서툴게 위태로운 사람
그래 철들고 나서는
고개 들어 저 멀리 지평선만 보고 걸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십 년은 내다보고 살아야 한다길래.
그러나 정강이도 무릎도 성할 날 없어
어디라도 패인 길에서는 어김없이 발목을 삐고
부딪히고 걸리고 혼자서 나자빠지고
사람들에게 나는, 어딘가 모자란 사람
나는 잘 걷는 법을 모르는 사람
알맞은 걸음걸이를 모르는 사람
일보 전진과 일보 후퇴의 반복 속에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디디처럼 하루 종일 나무를 맴도는 사람
이 모든 사단은 잘못 배운 걸음마 때문일 것이니
내일부턴 꼬맹이들의 뒤뚱거리는 엉덩이를 쫓아다녀야겠다
어린이집 가는 길 엄마 아빠 손 놓고
이제 막 제걸음 걷기 시작한 그놈들의 꽁무니라도 쫓아다녀야겠다
알맞은 걸음으로
가야 할 곳에 가며
보아야 할 것을 보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위해서
댓글 (0)
-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