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가르침이 주는 위안
Enlight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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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6일 PM 12:07 · 수정됨(06. 1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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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르치는 수업 중에서 나름 인기가 있는 것이 "동아시아인처럼 생각하기"라는 수업입니다. 이 수업은 미국 학생들이 동아시아인의 마음을 깊이 있게 공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습득하는 인문학 수업인데 여기서는 주로 동아시아인들의 사유 방식과 구조에 깊은 영향을 주는 여러 사유/사상 전통들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동아시아인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기본적 조건으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 수업을 통해 저는 학생들이 미국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동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들을 반성해보고 동아시아인들의 입장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때 자기 자신과 세상이 기존 미국 문화의 전통에서 바라보던 것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문화적 갈등과 해소의 실제 사례들을 가지고 와서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수업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새 아무리 DEI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도 실제로 어떤 집단의 마음을 심층적으로 이해해볼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같은 학교의 종교학과와 근동학과(Near Eastern Studies)의 이슬람 수업에도 제 수업을 소개하여 미국 학생들이 무슬림들의 마음과 사유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동아시아 사람들의 사유의 저변에서 한 가지 근본 조건으로 소개하는 것 중 하나가 불교적 진리와 실체관입니다.

어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찰 한 곳을 다녀오면서 문득 불교를 주제로 다모앙 게시판을 글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틀 전 저는 한국인들이 불행을 스스로 자초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 제 학생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우리 자신과 세상의 진실에 대한 불교적 가르침은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위안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이 글에 풀어보고 싶습니다. 

후대에 나온 모든 복잡하고 정교한 개념과 이론들을 다 빼고 초기에 고타마 싯달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샤키아무니(샤키아 족의 성자: 석가모니)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었던 역사적 붓다의 가르침을 초기 경전에 기초하여 과감하게 재구성한다면 크게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두 가지 깨달음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의 근본적 불완전성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세상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감각 기간을 통해 감각하고 그 감각 자료들을 조율하는 지각을 거쳐 인식하고 이해하며 그런 정보들을 처리하며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구성하여 살아갑니다. 그런 앎의 정보들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왜 하고 살고 있는지 우리에게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의 삶을 이해 가능한 것들로 만들어주고 자기 자신에게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세상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소통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붓다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의존하는 감각 기관과 지각은 본래 매우 잠정적이고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며 제한적이어서 그것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는 진정한 실재와 현실이 아니며 이것들을 통해서는 참된 실재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깨달음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버리고 그것들에 대한 의존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역설적으로 진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 실재에 참으로 도달할 때 우리 마음 속의 온갖 괴로움과 아픔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앎이란 궁극적으로 제한적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지각이 재구성한 세계임을 뜻합니다. 감각과 지각의 처리를 통해 의식에 반영하는 작업이 인간의 마음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계는 궁극적으로 너와 나의 마음이 만든 세계이지 객관적 진리로서의 세계 그 자체가 아닙니다. 마치 우리들의 세계에 대한 경험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이야기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부처의 두 번째 깨달음은 실재로서의 세계의 진상에 대한 것입니다. 부처의 깨달음에 따르면, 진정한 실재는 어느 것도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가 실체로 인식하고 이름을 부여하는 대상은 실은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인들이 잠시 모여 그런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지 곧 흩어지고 다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잠정적이고 조건적이며 제한적인 존재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바닷가 해변 모래 사장에서 금빛 모래로 잘 생긴 미남을 하나 만들어 그 미남 모형에게 차은우라는 이름을 붙여 한참을 즐겁게 가지고 놀았다고 합시다. 곧 썰물이 와서 그 모래 모형을 휩쓸고 지나가면 그 때 우리가 차은우라고 부르고 좋아했던 미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모래와 염분, 물과 일정한 온도 등이 잠깐 우연히 결합해서 잠시 차은우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모래 인형은 우리가 차은우라고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차은우였을 뿐이지 원래부터 차은우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야 할 목적이나 필연이 있었던 사물은 아니었습니다.  

부처에게 사람이나 개, 컵, TV 등은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 만나는 그 어떤 사물 혹은 존재자도 결국은 불완전한 감각 자료와 지각을 통해 인식하고 그것에 하나의 이름을 붙여 우리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이런 신기루, 환영은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감각과 지각은 근본적으로 조건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실재의 면모를 일시적 혹은 잠정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인데도 우리는 그런 감각으로부터 얻어진 부분적이고 조건적인 자료와 지각만 가지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이름을 붙여 개념화하여 하나의 확실한 실체로 받아들이고 그런 자신의 세계에 대한 확신을 진리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이 다 실제로 하나의 독립된 본질적 개체로서 확고부동하게 영구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억겁의 시간 속에서 그것들의 실상은 겨우 티끌보다 못한 잠정적이고 찰나적으로 여러 요인들이 화합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보이게끔 드러났을 뿐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실제로 그것이라면 분명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조건이 바뀌어도 분명 그것 그대로 존재해야 할 것이지만 부처가 깨달은 세계에서 모든 것은 아무 것도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것이 없더라는 말입니다.  

사물 뿐만 아니라 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못 보면 죽을 것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도, 변치 말자는 우정도, 꼴 보기 싫은 미움도 한번 마음을 스쳐가는 파도 같은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리고 다른 모습의 감정으로 변하여 있습니다.   

그런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그것을 그것으로 존재케 하는 성분이나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그 어떤 것도 다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처리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잘 만들어진 교묘한 환상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감각과 지각을 통해 얻어진 불완전한 이해만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 내 감각과 지각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세상 모든 것들을 하나의 변함없는 실체라고 오해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차지하고 소유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열렬히 투쟁하면서 꺼지지 않는 욕망, 고통과 번민, 어리석음의 화염 속에서 자신을 태우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환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깨어나서 실재를 바로 마주할 때 우리는 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독이 퍼져 끝없는 오판과 오해의 결과를 삶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이 축적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비로소 구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해탈이라고 말하는 부처가 말하는 최종의 경지는 쉬운 말로 하면 온전한 자유입니다. 마음이 더 이상 어떠한 두려움도 괴로움도 아픔도 갈망도 만들어내지 않고, 그저 어디에도 걸릴 것이 없이 몸과 마음이 가뿐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그런 궁극적인 상태입니다.

세상의 참된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 그것에 맞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며 그 뜻을 일상 생활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지만 끈질기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만 10분만이라도 편안히 앉아 침묵하여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혼란스럽게 올라오는 느낌, 생각, 감정 등에 휘둘리지 말고 호흡에 집중하여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연습부터 시작하면서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도 저의 삶이 다른 분들의 삶보다 더 대단하지도 의미있지도 않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중생이다보니 끊임없이 추구하는 수많은 욕망들로 제 삶을 늘 고달프고 괴롭게 만듭니다. 그러다 너무 지칠 때 저는 부처의 근본 통찰을 되새기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 가르침을 상기하고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 불교도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우리가 추구하는 그 어떤 것이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거기다 그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잠깐만이라도 반성하는 것만으로도 잠시 숨을 돌리고 돌아온 길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길 수 있으리라 말하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3)

  • 소유와존재 Lv.1

    24.05.16 · 106.♡.214.174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그것을 그것으로 존재케 하는 성분이나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그 어떤 것도 다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처리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잘 만들어진 교묘한 환상입니다"
    이 문구 제가 평소 관심 많았던 내용입니다. 전 이 내용만 보면 웬지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런글 가끔 올려주시면 도움이 많이 될거 같습니다
  • 살살타

    살살타 Lv.1

    24.05.16 · 61.♡.92.124

    고맙습니다.
  • 에크리방

    에크리방 Lv.1

    24.06.17 · 211.♡.139.7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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