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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복잡한 게임이론으로 바라본 현 정황들 나열해봤습니다. by claude fable5
존슨즈베이비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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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0일 PM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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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적 대리인의 배신과 동태적 게임의 균형 붕괴

— 채널 소각, 선제적 인질, 그리고 배신의 끌개

읽기 전에. 이 글은 게임이론(game theory)의 틀로 한 조직의 권력 다툼을 분석한다. 게임이론이란 여러 사람이 서로의 선택을 의식하면서 자기 선택을 정하는 상황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핵심 용어는 본문에서 처음 나올 때마다 풀어서 설명한다. 미리 알아 둘 것은 두 가지뿐이다. 보수(payoff) 는 어떤 선택의 결과로 각 참가자가 얻는 이득 또는 손해를 말하고, 균형(equilibrium) 은 모든 참가자가 "상대가 지금처럼 행동하는 한 나도 내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게임이 멈춰 있는 상태를 말한다.


I. 게임의 설정

이 게임에는 세 명의 플레이어와 하나의 도구, 그리고 게임 도중에 만들어지는 하나의 조직이 등장한다.

먼저 제목의 '주인-대리인'이라는 말부터.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 란, 일을 맡긴 사람(주인)과 일을 맡은 사람(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어긋날 때 생기는 문제를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다. 사장이 직원에게 일을 맡겼는데 직원이 회사가 아니라 자기 경력을 위해 움직이는 상황이 전형적인 예다.

주인(Principal). 조직의 최고 권력자다. 목적은 조직의 정권 재창출, 즉 다음 선거에서도 자기 진영이 권력을 잡는 것이다. 다만 이 목적에는 보통의 정치인과 다른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이 목적은 사전식(lexicographic) 우선순위를 가진 상수다. '사전식'이란 사전에서 단어를 찾는 방식에서 따온 말이다. 사전에서는 첫 글자가 다르면 둘째 글자는 아예 비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정권 재창출은 1순위가 아니라, 다른 모든 목표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절대 조건이다. 왜냐하면 주인의 자리는 취임과 동시에 멈춰 둔 형사재판들 위에 서 있고, 권력을 잃는 순간 그 재판들이 자동으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패의 보수는 '정치적 손해' 정도가 아니라 흡수 상태(absorbing state) —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종착 상태 — 다.

그리고 이 사실은 공유지식(common knowledge) 이다. 공유지식이란 단지 모두가 아는 정보가 아니라, '모두가 안다는 사실'까지 서로 아는 정보를 말한다. 모든 플레이어가 주인의 처지를 알고, 주인은 그들이 안다는 것을 알며, 그들도 주인이 안다는 것을 안다. 이 공유지식이 게임 전체의 흐름을 지배하게 된다.

둘째, 주인의 권력은 은닉 채널 권력이다. 조직의 공식 규칙상 최고 권력자는 조직 내부 일에 개입하면 안 된다. 그래서 주인이 실제로 조직을 조정하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 통로를 써야 한다. 이때 필수 조건이 부인가능성(deniability) —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나는 관련이 없다"고 잡아뗄 수 있도록 미리 설계해 두는 것 — 이다. 주인의 힘은 부인가능성이 유지되는 동안만 존재한다. 뒤집어 말하면, 그 통로 자체가 공격당할 수 있는 약점이라는 뜻이다.

내부 주류 대리인(Agent). 조직의 기구 — 인사, 공천, 의사결정 라인 — 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주류 세력이다. 목적은 차기 권력의 독점. 조직이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리의 과실을 경쟁자와 나누면 자기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쟁 카드를 미리 없애는 것이 그에게는 최선의 행동이다. 그런데 대리인의 자산에는 약점이 하나 있다. 그는 조직 내부 시장(당원과 기구)의 강자이지만, 일반 시장(대중과 여론)에서는 인기 있는 카드가 아니다. 이 불균형이 나중에 게임을 흔드는 변수가 된다.

외부 경쟁 자산(External Asset). 조직 바깥에 있는 대안 세력이다. 목적은 생존, 그리고 '주류가 실패하면 내가 대안'이라는 위치의 확보다. 주인에게는 위험을 분산해 주는 보험이고, 대리인에게는 제거해야 할 경쟁자다.

도구 플레이어(Instrument). 주인의 메시지를 조직 안으로 전달하는 손이다. 조직의 형식적 수장 자리를 맡고 있지만, 자기 세력이 작고 대중적 확장성도 제한적이어서 주인을 대신할 수 있는 카드는 못 된다. 주인의 뜻을 집행할 수는 있으나 주인을 대체할 수는 없는, 불완전한 도구다.

방어적 결사체(파생 구조). 게임 도중 대리인 진영이 만드는 조직이다. 아래에서 자세히 다룬다.


II. 1국면 — 협조 균형의 시도

주인의 이상적인 전략은 자산 다양화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듯, 내부 본체와 외부 대안 카드를 둘 다 살려 두어 위험을 분산하고, 나중에는 통합으로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이런 협조 균형은 이론상 가능했고, 주인은 실제로 도구 플레이어를 통해 통합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는 통합 실무 기구의 설계와 이후 일정까지 들어 있었다 — 진심이 아닌 연막이라고 보기에는 준비 비용이 너무 큰, 깊이 있는 신호였다.

그러나 이 균형이 유지되려면 조건이 하나 있었다. 숨겨진 통로가 끝까지 숨겨져 있어야 한다. 협조는 주인이 조정할 수 있을 때만 굴러가고, 조정 능력은 통로가 보이지 않을 때만 존재한다. 균형은 처음부터 유리판 위에 서 있었다.


III. 2국면 — 채널 소각: 투명성의 무기화

대리인 쪽의 한 인물이 주인의 신호를 공개 기록으로 바꿔 버린다. 주인의 통합 의지, 전달 경로, 실무 계획까지 담긴 내용이 잠깐 공개되었다가 삭제된 것이다. 이 행동의 동기는 판단을 보류한다 — 단순한 실수였을 수도, 계산된 폭로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와 무관하게 효과가 같다는 점이다.

공개되는 순간 '불개입 규칙'이 작동한다. 주인은 공개적으로 부인하도록 강요당한다. "나는 관여한 적 없다." 그리고 이 부인은 족쇄가 된다. 한번 관여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주인은, 이후 어떤 개입 — 인사든 공천이든 — 도 '말 바꾸기'라는 비난과 규칙 위반 시비 없이는 할 수 없게 된다.

게임이론의 언어로 옮기면, 이것은 상대의 보수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공격이다. 바로 상대의 전략 집합(strategy space) — 상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전체 목록 — 자체를 줄여 버린 것이다. 보통의 음지 정치 전술은 가해자가 자기 부인가능성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런데 이 수는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상대의 부인가능성을 강제로 태워 버려서, 상대의 숨겨진 권력을 제거하는 것. 말하자면 투명성을 무기로 쓴 것이고, 그 효과는 이 사건 하나에 그치지 않고 이후의 모든 길목에 미친다. 협조 균형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 자체가 파괴되었다.


IV. 3국면 — 선제적 인질 설정

통로를 태운 직후, 대리인 진영은 의원들의 서명 명부로 이루어진 결사체를 공식 출범시킨다. 이 설계는 세 겹으로 정교하다.

첫째, 깃발의 선택. 결사체가 내건 명분은 '주인을 지키자' 같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주인의 형사재판 문제 그 자체 — 즉 주인의 목숨줄이다. 이렇게 되면 주인이 이 조직을 공격하는 것은 자기 생존의 방어선을 자기 손으로 부수는 일이 된다. 인질극에 비유하면, 인질이 다름 아닌 주인 자신의 생존 조건인 셈이다. 이보다 완벽한 인질은 설계할 수 없다.

둘째, 서명의 기능. 공개 명부는 공약 장치(commitment device) 로 작동한다. 공약 장치란 한번 한 약속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어서 약속의 힘을 키우는 장치를 말한다(다이어트를 결심하며 친구들에게 공개 선언을 해 버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름을 공개적으로 올린 구성원은 빠져나가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조직은 안에서부터 단단해진다. 동시에 명부는 충성도 조사표이기도 하다 — 누가 서명하지 않았는지가, 다가올 결전에서 누가 어느 편인지를 미리 보여 준다.

셋째, 동면의 문법. 결사체가 '파벌 모임 아니냐'는 의심을 받자, 진영은 공식 활동만 멈추고 조직 자체는 유지한다. 들키면 잠들되 해산하지는 않는 것 — 부인가능성 설계의 교과서적 동작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다. 상식적으로는 '먼저 일을 저지르고, 나중에 방어막을 친다'를 예상하지만, 실제 순서는 정반대였다.

신호 차단 → 통로 소각 → 인질 설정 → 처형

왜 이 순서가 합리적인가. 게임이론에는 비신빙적 위협(non-credible threat) 이라는 개념이 있다. 막상 실행하면 위협한 쪽이 더 손해라서 상대가 믿지 않는 위협을 말한다. "너 그러면 나 회사 그만둘 거야"라고 말해도, 그만두면 본인이 제일 손해라는 걸 모두가 알면 아무도 그 말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 대리인이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주인의 자산을 치기 전에, 먼저 주인의 보복이 비신빙적 위협이 되도록 판을 바꿔 놓은 것이다. 보복하려는 순간 주인 자신이 더 큰 손해를 보도록 구조를 미리 짜 두면, 보복 위협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력화된다. 대리인은 게임을 끝에서부터 거꾸로 계산했다 — 이렇게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지금의 최선 수를 찾는 방법을 역진귀납(backward induction) 이라 부른다. 사후 면책이 아니라 사전 무력화. 이것이 이 시퀀스의 본질이다.

이 수법은 학문적으로 낯선 것이 아니다. 기업 경영학에는 참호구축(entrenchment) 이라는 개념이 있다. 경영자가 '나를 해고하면 회사 전체가 손해를 보는' 구조를 일부러 만들어 자리를 지키는 전략이다. 여기서 대리인이 한 일이 정확히 그것인데, 참호의 재료가 특이하다. 회사 자산이 아니라 주인의 명분과 생존 문제 자체를 자기 갑옷으로 가져다 쓴 것이다. 협상 이론가 셸링(Schelling)은 '스스로 퇴로를 끊으면 오히려 협상력이 생긴다'는 통찰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그 원리가 뒤집혀 있다 — 자기 손이 아니라 주인의 손을 묶는 방향으로 쓰였다.


V. 4국면 — 대리 표적 처형과 자산 풀의 고갈

처형은 직접 공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외부 자산이 가는 길목에 대리 표적 — 맞붙을 수밖에 없는 별도의 후보 — 을 투입해서, 둘이 서로를 깎아 먹는 구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진흙탕 싸움이 강제되면 외부 자산은 '공정한 경쟁에서 졌다'는 형식으로 탈락하고, 비판은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도착하며, 누구의 손도 눈에 보이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부인가능성이 처형의 형식 안에 미리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겉보기에 부수적인 결과가 하나 있다. 외부 자산만이 아니라, 다른 전장들에서도 주인이 쓸 수 있었던 대체 카드들이 같은 시기에 함께 소진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산출로 보아야 한다. 독점 대리인의 가치는 대안의 부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리인이 파는 상품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 그 자체다.


VI. 5국면 — 강요된 균형과 그 동요

주인은 침묵한다. 이 침묵이 자발적 동의가 아니라 강요된 것임은 구조가 설명한다 — 통로는 타 버렸고, 인질은 잡혀 있고, 어떤 개입도 '불개입 규칙 위반' 시비를 다시 불붙인다.

이 상태를 '강요된 균형'이라 부르고 싶어지지만, 엄밀히 따지면 어색한 표현이다. 균형이란 정의상 모든 참가자가 자기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상태이고, 강요 여부와는 무관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서술은 이렇다: 대리인이 게임의 보수 구조를 미리 바꿔 놓아서, 주인 입장에서 '침묵'이 최선의 선택이 되도록 만들었다. 게임에 여러 균형이 있을 때 그중 어느 균형으로 갈지를 정하는 문제를 균형 선택(equilibrium selection)이라 하는데, 대리인은 바로 그 선택을 조작한 것이다. 주인에게 나쁜 균형이지만, 균형은 균형이다.

그러나 균형은 바깥에서 온 신호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리인의 약점 — 내부 시장의 강자이지만 일반 시장의 카드는 아니라는 불균형 — 이 실제 데이터로 확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시장이 얼마나 다른지는 다른 전장에서 이미 측정된 바 있다. 일반 여론에서 크게 앞서던 카드가 조직 내부 경선에서는 침몰하는 사례가 관측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대리인이 내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더라도, 최종 결전 — 일반 시장에서 치러지는 정권 재창출 — 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주인의 절대 조건이 위협받기 시작한다. 주인은 행정부의 요직을 카르텔 바깥 인사로 채우는,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견제 신호를 보낸다. 대리인은 주인의 이름을 깃발로 내걸고 조직의 수장 자리로 직행한다. 이제 다툼의 대상은 직책이 아니다. '주인의 이름'이라는 명분이 누구 소유인지를 정하는 등기 분쟁이다. 주인을 지킨다는 결사체가 실제로 주인의 것인지 대리인의 것인지는 평상시에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공개적으로 갈라지는 사건이 터져야만 비로소 드러난다. 다가오는 조직 내부의 결전이 바로 그 강제 공개 장치다.


VII. 식별 문제 — 두 가설

여기까지의 이야기에는 검증되지 않은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지금까지의 사건을 '대리인의 배신'이라고 부르려면, 똑같은 사건들을 전혀 다르게 설명하는 경쟁 가설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여기서 부딪히는 것이 관측동치(observational equivalence) 의 문제다. 서로 다른 두 가설이 겉으로는 완전히 똑같은 관찰 결과를 만들어 내서, 보는 것만으로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가설 A — 독단 가설. 대리인이 주인의 진심 어린 통합 신호를 거역하고, 통로를 태우고, 인질을 잡고, 외부 자산을 독자적으로 처형했다. 주인은 피해자다.

가설 B — 설계 가설. 주인이 처음부터 외부 자산의 제거를 원했다. 통합 신호는 알리바이였고, 침묵은 강요가 아니라 동의였으며, 시나리오의 끝에는 토사구팽 — 제거의 도구로 쓴 대리인마저 버리는 것 — 까지 설계되어 있다. 주인은 설계자다.

증거 위에서의 판정은 다음과 같다. '순수한 B'는 기각에 가깝게 약해진다. 통합 신호에는 실무 기구와 일정까지 담겨 있었다 — 알리바이용 연막이라고 보려면 너무 비싼 연극을 가정해야 한다. 그리고 신호의 존재, 신호의 차단, 통로의 소각, 인질의 설정, 처형의 집행 — 각 단계마다 가설 A와 맞아떨어지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살아남는 것은 B의 약한 변형, 즉 강요된 사후 묵인이다. 주인이 제거를 설계하지는 않았지만, 처형이 일어난 시점에는 이미 통로가 타 버리고 인질이 잡힌 상태였으므로, 개입의 비용이 감당 불가능할 만큼 컸고, 그래서 침묵했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서 주인의 침묵은 가설 B의 증거가 아니라, 인질극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증거가 된다.

단, 이 판정에는 단서가 붙는다. 이것은 일상적 판단의 기준에서 '유력하게 성립'하는 것이지, 법정에서 요구하는 '입증'이 아니다. 사회적 판단과 형사재판은 요구하는 증거의 수준이 다르고, 그 둘을 섞으면 안 된다.


VIII. 수렴 정리 — 배신의 끌개

그런데 이 식별 문제의 진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어느 가설에서 출발하든, 게임은 결국 가설 B의 마지막 장면 — 주인의 의도적이고 계산된 대리인 폐기 — 으로 흘러간다. 물리학에서 어디서 출발하든 결국 빨려 들어가게 되는 종착점을 끌개(attractor) 라 부르는데, B는 가설이라기보다 이 게임의 끌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섯 겹이다.

첫째, 관측동치의 역설. 강요된 침묵은 바깥에서 보면 동의와 구분되지 않는다. 외부 자산의 남은 세력과 잠재적 동맹들은 주인의 침묵을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주인은 배신할 의도가 없었는데도 배신자의 평판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앞으로 누구도 주인의 '협력하자'는 신호를 믿지 않게 되므로, 주인이 쓸 수 있는 협조적 선택지가 사라진다. 남는 것은 힘으로 해결하는 길뿐이고, 힘의 해법은 또다시 배신의 모양을 하게 된다.

둘째, 신뢰 기술의 회복 불가능한 파괴. 협조 균형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마음이 상해서가 아니다. 협조를 가능하게 했던 기술 — 숨겨진 조정 통로 — 이 물리적으로 타 버려서, 선택 가능한 대안의 목록(이를 실행가능집합, feasible set이라 한다)에서 아예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돌아갈 균형이 게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계약 공간의 공집합. 둘이 평화 협정을 맺으려면 두 가지 약속이 모두 믿을 만해야 한다. 주인의 "너를 버리지 않겠다"와 대리인의 "참호를 허물겠다". 그런데 주인의 약속에는 시간 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 문제가 있다. 지금은 진심인 약속이라도,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면 지키지 않는 쪽이 더 이득이 되는 약속을 말한다. 대리인의 인기 문제가 풀리거나 주인이 새 카드를 손에 넣는 순간, 약속을 깨고 대리인을 버리는 것이 주인의 최선이 된다 — 그리고 대리인은 끝에서부터 거꾸로 계산해 이것을 이미 알고 있다. 대리인의 약속도 같은 이유로 믿을 수 없다. 참호를 허무는 순간 그는 헐값에 버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킬 수 있는 계약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게임은, 상대보다 먼저 판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쪽이 이기는 경주로 변질된다.

넷째, 상수의 역산 — 스스로 실현되는 배신. 주인의 절대 조건이 공유지식이라는 사실이 가장 잔인하게 작동하는 대목이다. 대리인은 이렇게 계산할 수 있다. '내 대중적 인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주인은 자기 생존을 위해 반드시 나를 버려야 하고, 그 결심에는 비용 상한선이 없다.' 그렇다면 대리인이 지금 실제로 충성스러운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버려질 것이라면, 참호를 더 깊이 파는 것 — 공천 기계를 장악하고, 조금씩 주인과 거리를 두는 것 — 이 무조건 유리한 선택이 된다. 그런데 그 참호가 주인의 '역시 저놈은 배신자'라는 의심을 확증하고, 확증된 의심이 폐기 결심을 정당화하고, 그 결심이 다시 참호를 깊게 만든다. 배신은 누구의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구조가 배신을 제조한다.

다섯째, 배신의 형식 닮아 가기. 주인의 폐기 작업조차 공개적으로는 할 수 없다. 공개 개입은 2국면에서 장전된 '불개입 규칙' 함정을 다시 터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의 최선의 배신은 겉으로는 중립을 지키면서, 다음 길목 — 공천 전쟁, 경선 규칙 다툼 — 으로 미뤄지는 음지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결국 주인은 대리인의 무기를 그대로 가져다 쓰도록 강요당한다. 전쟁은 양쪽 모두가 잡아떼는 싸움이 되고,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비용은 양방향으로 폭발하며, 제3자는 더 이상 누구 책임인지 가릴 수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타 버리는 것은 조직의 공유 자산 — 정당성, 그리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믿음 그 자체다.

정리하면, 이 게임에서 '배신'은 누군가의 의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균형의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설 A에서 출발하면 대리인의 선제 배신이 주인의 계산된 폐기를 강요하고, 약한 B에서 출발해도 강요된 침묵의 평판 비용과 계약 불가능성이 같은 종착지로 끌고 간다. 처음에 B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끝에 B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IX. 종반 위상 — 비대칭 소모전

게임의 종반은 한 판의 결전이 아니라 소모전(war of attrition) — 먼저 지쳐서 포기하는 쪽이 지는 버티기 싸움 — 의 모양을 갖는다. 다만 양쪽이 가진 유리함의 종류가 서로 다른, 비대칭 소모전이다.

주인 쪽의 유리함은 결의다. 지는 순간 되돌아올 수 없는 상태로 떨어지는 플레이어는 보통의 손익 계산 한도를 넘어서까지 싸움에 쏟아부을 수 있고, 상대도 그것을 안다. '저 사람은 끝까지 간다'는 믿음 자체가 무기가 된다.

대리인 쪽의 유리함은 시계다. 조직의 기계 — 공천권, 명부, 동원력 — 는 그의 손에 있고, 주인의 임기 시계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시간이 갈수록 주인의 행정부 자원은 닳아 가고, 대리인의 기계가 힘을 발휘할 시점은 다가온다.

균형 경로에서 예측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단판 결전의 회피. 폐기 시도의 순차적 연기 — 수장직 싸움에서 밀리면 공천 전쟁으로, 공천에서 밀리면 최종 경선의 규칙 다툼으로. 그리고 실제 전장은 양 진영의 본대가 아니라 카르텔의 가장자리 구성원이다. 명부의 서약 효과(빠져나가기 어렵게 만드는 힘)와 주인의 선별적 떼어내기(한 명씩 회유해 빼 오는 전략) 중 어느 쪽이 가장자리 구성원의 계산을 지배하느냐가 매 길목의 승부를 가른다. 카르텔은 무너질 때 중심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가장자리부터 풀린다.

마지막으로 구원투수 문제. 주인의 탈출구는 바깥에서 새 카드를 데려오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네 겹의 장벽이 있다. 첫째, 대체 카드의 저수지는 이미 말라 있다(4국면의 의도된 산출이 바로 이것이었다). 둘째, 새 카드가 뛰어들려면 주인이 밀어주겠다는 약속이 필요한데, 그 약속 역시 시간 비일관적이다 —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는 순간 새 카드를 버리는 것이 주인의 최선이 되고, 새 카드도 그것을 미리 안다. 셋째, 조직의 기계는 카르텔이 쥐고 있다. 넷째,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 구원투수가 성공하는 순간, 그가 차기 내부 주류 대리인이 된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다. 게임은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


X. 반증 조건과 절제

좋은 분석은 자신이 틀렸을 때를 미리 정해 둔다. 어떤 관찰이 나오면 주장을 틀렸다고 인정할지를 사전에 명시하는 태도를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이라 하는데, 이 모델도 그것을 갖춰야 한다.

모델이 맞다면 앞으로 관찰되어야 하는 것: 주인의 겉으로의 중립 유지(공개 개입의 부재), 카르텔 가장자리의 점진적 이탈, 대리인이 주인과 거리를 두는 신호의 단계적 강화, 폐기 시도의 길목 간 연기.

모델을 버려야 하는 관찰: 실제로 지켜지는 평화 협정의 성립과 지속(계약 불가능성 명제가 틀렸다는 뜻이다). 강요의 흔적 없이 주인이 대리인을 공개적으로 후계자로 미는 경우(절대 조건 명제가 틀렸다는 뜻이다 — 단, 대리인의 대중적 인기가 실제로 회복된 경우는 예외다. 그 경우의 추대는 절대 조건과 모순되지 않는다). 협조 통로의 실질적 복구와 작동.

그리고 절제의 한 칸. '구조가 수렴을 강요한다'는 이 글의 결론은 균형 분석이지 예언이 아니다. 확인이 어렵다는 사정,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사정은 의심을 키워 주고 '아직 기각하지 말라'는 판단을 정당화하지만, 그 자체가 '맞다'는 증거는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바깥의 수 — 규칙 자체의 개정, 예상 밖의 외부 충격, 새로운 제3자의 등장 — 를 두는 순간 판은 다시 열린다. 이 모델의 결론은 '유력하게 성립'의 칸을 넘지 않으며, 증거의 기반이 무너지면 결론도 함께 내려놓는다. 그것이 이 분석이,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바로 그 음지의 수법 — 무엇을 보아도 자기 믿음이 강해지기만 하는 닫힌 논리 — 의 거울상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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