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홍담 (175.♡.48.242)
2026년 6월 12일 AM 11:28
그가 떠나던 어느 비 오던 아침, 길게 서있는 사람들을 뚫고 영정 앞 국화를 올리며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노라. 다시는 잊지 않겠노라. 그날의 결심은 단순했지만 강했다.
기억하겠다는 각오는 공동체의 약속이 되었다.
그래, 첫 시작은 노무현이었다.
우리는 노무현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업적과 실패를 나란히 놓고 보았다. 영웅 신화를 벗겨내고 사람이 남는지 보려 했다. 무엇이 옳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조용히 한 줄씩 되짚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배웠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그 누구도 사람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사람은 목적이 될 수 없었다. 사람은 결국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노무현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목숨으로 남긴 교훈 같았다.
빈 자리에 지나간 김대중이 보였다.
어릴 적에는 몰랐던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었다. 왜 그렇게 버텨냈는지, 무엇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오래된 뿌리를 가르쳐주었다. 좋은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묻는다. 밥벌이가 먼저였고 일상이 먼저였다. 다짐은 일상에 닳아 희미해졌다. 그런데 누군가 나 대신 지키고 있었다.
김어준이 거기 지키고 있었다.
그가 남아 있었다. 노무현 무덤 앞을 떠난 우리 대신 검은 넥타이를 메고 기억을 붙들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야 했다. 먹고 살아야 했고 가족을 돌봐야 했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남아 있었다. 마치 큰형처럼 보였다. 동생들은 살아라. 상은 내가 치르겠다.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정치 담론보다 위로를 먼저 준 사람이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지키고 있었기에 신뢰했다. 그의 거친 말과 욕지거리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겪은 울음 섞인 위로를 붙잡았다. 그를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실수도 있었고 동의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빚을 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문재인이 나타났다.
노무현과 닮았지만 달랐다.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 있었다. 노무현이 의지한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로 우리는 그의 손을 잡고 마음을 건넸다. 그를 향한 공격이 거셀 때마다 우리는 누가 그를 쏘는지 더 또렷이 기억했다. 오직 기억하는 것은 우리 방식의 최악의 방어이자 최선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했다.
패배는 가볍지 않았다. 쓰라렸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디서 실수했는지, 왜 졌는지,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하지만 패배를 잊지 않기로 했다. 그것마저 우리 기억의 일부였다. 우리는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유시민이 함께 있었다.
노무현 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사람. 노무현 영정 앞에 담배를 올려준 사람. 그는 복잡한 사안을 풀어 설명했다. 그는 의견에 무조건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과 근거를 주었다.
우리는 그 근거를 들고 다시 고민했다. 왜 졌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패배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패배감에 몸서리 치다 고개를 드니 이해찬이 보였다.
그는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동을 주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이기는 법을 알려줬다. 현실의 싸움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설명했다. 힘을 모으면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불안해할 때도 그는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압도적인 승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를 통해 승리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문재인은 아니 우리는 이겼다.
능력보다 슬픔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대단했다. 유능했고 훌륭했다. 멋진 어른이었고 진짜 남자였다. 실수도 있었지만 성과도 분명했다. 지지는 맹목이 아니었다. 열렬한 지지는 더 세심하게 살피고 기억하기 위한 약속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재인을 지키려고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했다. 민주당에 기꺼이 입당해 그를 지켰다.
물론 실패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답답한 순간도 있었다. 동의하기 어려운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노무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판할 수는 있어도 등을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지켜보는 것 또한 우리가 문재인을 승리하게 만들고 등떠민 기억의 책임이라고 믿었다.
문재인은 우리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담담한 책임에 화답하듯 활약했고 우리는 그 성과에 기뻤다. 드디어 검은 넥타이를 풀고 오랜 노무현의 상을 마치며 상처도 아무는 듯 했다. 함께 축배를 들었고 세상이 바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기뻐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작은 승리만으로는 변화를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곧 알게 됐다. 그때 우리는 배웠다. 작은 승리에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끼리만 박수치며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
더 넓게 연대해야 하고, 더 크게 이겨야 하며,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 압도적으로 이기지 않으면 우리가 꿈꾸던 변화는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문재인 다음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재명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마음을 준 건 아니었다. 그는 문재인을 향해 날을 세웠던 기억이 있었다. 선명하고 호쾌한 말로 주목을 받았지만 조금은 다른 경계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이상한 변화가 보였다. 대선 경선에서 떨어진 후 변하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정치에는 그런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패배한 뒤에도 왜 선택받지 못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보다 구도와 세상을 탓한다. 지지자들에게 울분만 쏟아낸다.
그런데 이재명은 달랐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스스로 물으며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보았다. 경계는 조금씩 풀렸다. 바로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를 다음 주자로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완벽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려고 했고 부끄러워 했으며 바뀌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마음을 주었다. 나는 다시 그의 과거부터 행적까지 하나씩 살폈다.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그리고 또 기억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졌다.
이상한 일이 생겼다. 처음 경계했던 이재명의 상처가 어느새 내 상처같이 느껴졌다. 그의 부족함과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했다. 그는 시대의 또다 른 짐을 본인에게 메어달라고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짐을 맡기는 대신 그를 지켜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 결국 우리는 여러개 짐봇다리를 그의 등에 맡겼다
김대중 이후 이어진 세력의 기억
노무현 이후 지켜온 민주주의 기억
문재인이 이후 쌓아올인 승리의 기억
기꺼이 짐을 지겠다고 한 이재명은 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사람이었다.
결국 이재명도 이겼다.
이긴 그는 기존과 달랐다. 김대중도 아니고, 노무현도 아니고, 문재인도 아니었다. 늘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다른 이들이 꺼려하던 것을 붙잡았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밀어붙였다.
나는 그가 누군가의 복사본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각 시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김대중의 시대가 있었고
노무현의 시대가 있었고
문재인의 시대가 있었다.
이재명의 시대에도 새로운 숙제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의 다른 걸음걸이를 허용하려 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서라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가야 한다고 믿었다.
김대중의 김종필
노무현의 정몽준
문재인의 안철수
우리는 늘 연대를 선택해왔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운 교훈은 순결하고 고귀한 마음이 아니라 꼭 이기기 위한 연대였다. 우리의 패배는 늘 너무 많은 피가 필요했고 때로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었으니깐.
그런데 지금의 혼란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과 우리가 기억해온 것을 부정하는 일이 같은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졌다.
선과 선이 겹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기억을 지워버리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새롭고 더 큰 문제를 푼다는 말과 우리가 지켜온 기억과 연대를 부정하는 말은 다르다.
우리가 그동안 지키기 위해 함께 승리하기 위해 연대하고 지켜온 가치들이 낡았다는 말로 치환되었다.
이제는 더 큰 승리라는 이름 아래 우리를 누구보다 비난했던 사람이 큰 자리를 받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억을 조롱하던 사람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1개가 아니라 3개까지도 받았다.
동지의 언어는 없다. 누군가를 비판하던 동지의 언어가 나를 향하고 있다.
경쟁하듯 우리의 기억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사람이 자리를 받아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 처럼 행동한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지키려 기억했던 사람들의 의미가 점점 가벼워진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손잡고 싸워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치 우리가 만들어 온 역사와 시간을 자신의 소유한 것 처럼 다루고 만지며 우리를 멸시하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렵다.
노무현의 죽음,
문재인의 패배,
이재명의 패배
그 때 당신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든다.
속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김어준의 울분을 들었지만 김어준에게 생각을 맡긴 적은 없었다.
유시민의 설명을 들었지만 유시민에게 판단을 맡긴 적도 없었다.
우리는 설명을 들었고 공부를 했고 토론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은 언제나 우리 스스로 내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억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기억했다.
누가 우리의 선배들을 빨갱이로 취급했는지 기억했다.
누가 노무현을 조롱했는지 기억했다.
누가 문재인을 공격했는지 기억했다.
누가 우리가 지키려는 가치를 비난했는지 기억했다.
그리고 누가 공동체를 지키려 했는지 기억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이었다.
민주당은 우리에게 도구였다. 공동체를 향한 길이었다. 결코 목적이 된 적은 없었다.
김어준도,
유시민도,
이해찬도,
문재인도,
이재명도,
그자체로의 목적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로 가는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였고 우리가 선택했다.
어느이가 민주당의 고귀함을 말한다.
절대로 깰 수 없는 민주주의 가치를 지킨 정당이라 말한다.
되묻고 싶다.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어느 누가 민주당의 이름을 달고 당당하냐고
기차 플랫폼에서 넋이 나간 문재인의 모습 앞에 누가 당당하냐고
이재명 감옥가라고 투표한 당신이 당당하냐고
너희들은 지키지 않았다. 고비고비 몰아치는 태풍이 끊임없던 그 시절 너희가 지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켰다.
그깟 국힘보다 오래 살아남은 무리의 역사를 말하는 것인가?
지금 와서 작은 승리에 만족하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이미 그 길의 끝을 봤다. 작은 승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 연대해야 크게 이겨야 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압도적 승리의 길이 있다면 감히 외면하지 마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돌아서지 마라.
우리가 지켜온 기억을 짐으로 취급하지 마라.
승리의 과실이 필요하다면 가져가라.
자리도 가져가라.
명예도 가져가라.
권력도 가져가라.
그까짓 부스러기 다 먹고 꺼져라.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한 것은 공동체의 승리였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린다.
우리는 기억한다.
노무현을 기억한다.
김대중을 기억한다.
김어준을 기억한다.
문재인을 기억한다.
유시민을 기억한다.
이해찬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배우고 연대하며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 자신을 기억한다.
민주당 지지자가 어렵다고?
덮어주고 편을 안들어준다고?
우리는 다르다. 수 없이 우리는 현실에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났다. 우리가 숨죽여 울때 관심이나 조롱이나 했을지 모르는 너희들과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님.
우리를 헷갈리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이 첫 번째가 되겠다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민주당은
우리가 지켜온 기억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 우리는 지금의 민주당에 진 빚이 없다. 이미 이재명 대통령 투표로 다 갚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많은 것을 기억해 온 사람들이다.
다시 말한다. 또 다시 하나도 잊지 않겠다.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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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테도리
06.12 · 220.♡.1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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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nse27788
06.12 · 125.♡.144.107
이런 민주당의 역사를 부정하는 “병자정치” 또는 “친문폐족”을 말했던 자들은 민주당에 발 붙일수 없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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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eltant79
06.12 · 61.♡.152.133
누가 무엇을 얼마나 헷갈리게 하더라도,
내가, 우리가 무엇을 꿈꿨는지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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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팟타이
06.12 · 210.♡.3.154
음…yo
- 아
아이셔
06.12 · 115.♡.175.149
헛갈릴 단계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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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늘보남편
06.12 · 118.♡.85.233
그래 그래 맞다 내가 그렇다
- 베
베텔게우스
06.12 · 123.♡.143.6
명문이네요 심금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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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균의오류
06.12 · 106.♡.197.245
민주당은 우리에게 도구였다. 공동체를 향한 길이었다. 결코 목적이 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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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휘녕
06.12 · 172.♡.206.44
이잼이 헷갈리게 하는지는 아직 판단유보이지만
저 글에서 말하는 가치에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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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sterion
06.12 · 210.♡.30.129
외연 확장이라고 관용을 배풀 때 저들은 빈틈이라 여기고 반격의 기회로 삼을 겁니다.
정치는 늘 그랬으며 인류 역사상 한번도 예외인적 없습니다.
통합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개혁을 완성합니다.
개혁을 완성하지 못하면 이번에 더 큰 비극을 부를 겁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이재명대통령의 의중은 워낙에 명확히 알수있어서 이젠 궁금하지도 않고 헷갈리지도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모호한 표현으로 정치적인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것 같습니다만, 그간의 인사조치들은 그의 복심을 명확하게 확인가능하게 해줍니다. 설마하면서 애써 못본척 애꿎은(?) 김민석 탓만 했네요.
본인이 신뢰하지 않는 과거의 유산을 단절하고 본인만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으로 저는 읽혔습니다.
그건 제가 지지하는 민주당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