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공앙 (118.♡.6.56)
2026년 6월 14일 PM 10:18
어머니가 40년? 전 쯤에 부천 공장단지에서 조그만 무허가 식당을 하셨습니다.
아마 저희집이 가장 가난한 시절이었을 겁니다...
그시절 두 번 정도인가 밤에 도둑을 맞았습니다.
동네에 어머니 식당같은 곳이 몇 개 있었는데 사실 그 분들도 대부분 같은 경험을 하셨고,
일반화할 생각은 없지만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 짓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하셨지만, 어머니는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니 하시면서 넘어가셨습니다...
공장 무허가 주택에서 살던 그때,
제 방 뒤쪽 벽 뒤쪽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판자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거기에서 불이 났는데
제 방 옆에 있는 조그만 공장 한 칸이
불에 탔습니다.
저도 죽을 뻔 했습니다 ㅎㅎ
외국인 노동자는 어디론가 도망갔고
아버지가 무허가-_- 공장 관리자이었기에
제대로 처리도 못하고
결국 어느 정도의 피해보상을 감내 하셨습니다.
어렵던 시절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서
그냥 이해해 보려고 하신,
혹은 그 조그만 것을 잃으면
대책이 없던 부모님 밑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엉켜서
그렇게 컸습니다...
우리는 저도 그렇지만 가진게 많아진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팍팍한 삶이라 말하지만,
제가 와이프에게 농담으로 가난을 겪어봐서
지금 망해도 버틸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하지만
야만과 가난의 시대를 발버둥치며 산
그시절의 경험으로 돌아가라면
좀 좌절할 것 같기는 합니다 ㅎㅎ
그래도 외국인 노동자 같은 약자들을
때론 욕하면서도 -_-
(제 부모님이라고 화 안나셨을까요 ㅎㅎ)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던
부모님의 그 맘은 잊고 싶지 않습니다.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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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현
06.14 · 211.♡.16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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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뇌공앙
→ 수현 작성자
06.14 · 118.♡.6.56
그런데 제 아버지는 박정희 빠였죠 ㅎㅎ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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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현
→ 뇌공앙
06.14 · 211.♡.164.238
으앙ㅜ 내 감동 물어내요오오ㅜ 그 시절엔 많은 분들이 그랬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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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06.14 · 223.♡.111.250
이런 글을 볼 수 있어서 다모앙을 좋아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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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이바흐
06.14 · 218.♡.180.151
- 외국인 노동자라는 기계를 들여오는게 아닌 사람이 오는 것이다. 사람은그가 속해있던 사회의 문화를 함께 가져오며 그 문화는 서로가 공존해가야 할 고가치의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인데 여운이 남아서 계속 곱씹게 되네요. 나도 타국으로 가면 외국인이 되니 여행지에서도 여행자로서의 겸손을 배우게 되더라고요.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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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뇌공앙
→ 마이바흐 작성자
06.14 · 118.♡.6.56
Kopfverstich 님의 돌아가신 부인인 고 강서진 님이 번역하신
죽음정치 라는 책을 읽고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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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화와번영의길로
06.14 · 221.♡.99.227
좋은 분들이네요.
유대인들의 유입을 인도주의적으로 수용했던 팔레스타인들의 현실을 보면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캐나다는 인도계와 중국계의 비율이 10%를 넘어가면서 주택 부족과 집값 폭등, 의료시스템 마비 등의 문제로 이민 정책을 재고하고 있습니다. -
뇌뇌공앙
→ 평화와번영의길로 작성자
06.14 · 118.♡.6.56
저도 동의합니다. 또한 난민들을 수용했던 유럽의 예를 보더라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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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굴넓적
06.15 · 49.♡.212.143
40년 전이면 1986년인데 그 때도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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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뇌공앙
→ 뚱굴넓적 작성자
06.15 · 118.♡.6.56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 붙였는데 찾아보니
1980년대 후반부터 불법노동자들이 있었다고 하네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이 덕을 많이 쌓으셨네요. 명리학 공부했던 제 친구는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더군요.
무탈하게 지내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다 라고 하는데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둥글게 둥글게 살면 좋을 것 같아요. 소싯적에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세상 원망 많이 했습니다.
따뜻한 글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