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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차 남편은 낭만보다 안전한 방법을 택합니다.
큐리스

Lv.1 큐리스 (115.♡.31.45)

2026년 6월 16일 PM 12:17

조회 1,579 공감 0

어제 와이프가 회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익숙합니다.
끝날 시간쯤 차를 끌고 나가 평소 기다리던 자리에 세워두고 연락을 합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도착했다고 했더니 와이프는 이미 걸어오는 중이라며, 다른 데서 볼 수 없냐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계산이 됐습니다.

차는 이미 세워놨고,
주차도 애매하고,
괜히 움직였다가 서로 위치 설명하느라 더 헷갈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술 마신 상태에서 “나 거의 다 왔어”는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어설프게 중간지점을 찾겠다고 움직였다가 엇갈리면
그때부터는 픽업이 아니라 상황실이 됩니다.

“어디야?”
“나 여기.”
“거기가 어디야?”
“아까 그쪽.”
몇 번만 반복돼도 없던 짜증이 생기죠.

그래서 저는 그냥 말했습니다.

“난 여기 있을게.”

제 판단으로는 그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확실한 장소에서 만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와이프는 살짝 삐진 것 같았습니다.

순간 저도 조금 억울했습니다.
괜히 움직였다가 더 꼬이면 결국 더 욕먹고 더 짜증내는 것도 제 몫일 텐데,
왜 벌써부터 내가 야박한 사람이 되어 있나 싶었습니다.

물론 이해는 됩니다.
회식 끝나고 술도 좀 마신 상태에선
논리보다 “조금만 더 내 쪽으로 와주면 안 되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내가 잘못한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술 취한 사람한테 그 순간 설명을 해봐야
들어가는 건 반쯤이고 남는 건 서운함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괜히 이쪽저쪽 움직였다가 더 헷갈리고 더 헤매는 상황을 막는 게 먼저죠.

작은 서운함 하나쯤은 내가 먹더라도
큰 혼란 하나를 막는 쪽을 택하는 것.

어쩌면 그게 17년차 남편의 스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무사히 만나서, 무사히 차에 태우고,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
그 평범한 결말 하나를 위해
때로는 낭만보다 무사히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요.

결국 어제도 저는
조금 기다리고,
조금 욕먹고,
그래도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소를 버리고 대를 취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둘 다 길에서 짜증내는 일은 막았으니
제 선택이 아주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맞았냐보다,
우리 집 귀여운 멍멍이 와이프가 더 취하기 전에
무사히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점에서는 저도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15)

  • 맛있는이웃

    맛있는이웃 Lv.1

    06.16 · 140.♡.29.2

    이렇게 서운함은 17년이 쌓여가고..

  • 큐리스

    큐리스 Lv.1 → 맛있는이웃 작성자

    06.16 · 115.♡.31.45

    저기요??? ㅋㅋㅋㅋ

  • 다크라이터

    다크라이터 Lv.1

    06.16 · 211.♡.121.179

    매~~~우 현명하신 처신입니다.

    그쪽으로 갔다가 서로 엇갈리고 헤메다가 겨우 만나도 좋은 소리 못듣더라고요.

  • Silvercreek

    Silvercreek Lv.1

    06.16 · 211.♡.226.53

    가장 합리적이죠. 잘 하신 것 같습니다.

  • 공노B

    공노B Lv.1

    06.16 · 211.♡.31.23

    저라면 화내지 않고 일부러라도 몇 번 헤매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1씩 적립하도록 하겠읍니다.

  • 볼통통오동통통

    볼통통오동통통 Lv.1 → 공노B

    06.16 · 223.♡.149.92

    크으 고수님이 등장하셨습니다 ㅋㅋ

  • AtSue

    AtSue Lv.1

    06.16 · 211.♡.215.38

    주차하고 와이프 분쪽으로 걸어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적어도 차 밖에 나와 있으면 등짝은 보호됩니다...

  • 큐리스

    큐리스 Lv.1 → AtSue 작성자

    06.16 · 115.♡.31.45

    제가 마중을 나갔는데도 이미 화난채로 감히 나를 걸어오게 만들다니 이러면서 ㅋㅋㅋㅋ

  • 하루

    하루 Lv.1

    06.16 · 121.♡.218.248

    어디야? 거기 아닌데?

    그 과정을 즐기고 추억으로 삼는 것도...

    '미안해 내가 헷갈렸어' 말을 듣는 것도...

    잘 못하셨어요.

    (18년차 남편이 조언해 봅니다. ㅋ)

  • 꼰대생각

    꼰대생각 Lv.1

    06.16 · 121.♡.97.251

    아니 와이프가 있는데 왜 직접 운전을 하시죠?

    회식술자리 끝날즈음이면 바로 연락와서 수거해가던데..

    물론 택시비라며 삥을 엄청 뜯긴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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