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V4030 (210.♡.27.130)
2026년 6월 19일 PM 06:23
https://x.com/iwonho319905/status/2067566989829431673?s=20

통일신라 시대, 오늘날 광주 지역에 위치하였고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던 무진도독성은 전라남도 일대 14~15개 군을 관할했다고 합니다. 무진도독성은 둘레가 3만 2천척(약 10km 이상)이었다는데, 당시 통일신라 시대 부산의 중심지인 동래고읍성이 둘레가 4430척이니, 그 시대 기준으로도 매우 큰 동네라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댓글 (8)
- 흰
흰돌
06.19 · 211.♡.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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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xx
→ 흰돌
06.19 · 49.♡.56.89
괜히 전라도가 된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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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V4030
→ 흰돌 작성자
06.19 · 106.♡.66.242
제미나이가 통일신라 시대 광주, 나주를 정리해주더군요.
통일신라 시대 무진주(광주)와 나주(발라주)는 전남 지역의 패권을 두고 경쟁한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초기에는 나주가 중심지였으나, 신라 중앙 정부의 행정 개편에 따라 최종적으로 무진주가 호남 전체를 총괄하는 수반이 되었습니다.두 지역의 핵심 차이점과 역사적 관계를 명확히 비교해 드립니다.
1. 행정 구역의 격상과 강등나주의 선공 (667년): 신라는 삼국 통일 직후 나주 지역을 발라주(發羅州)로 격상하고 전남 지역의 중심 치소로 삼았습니다.무진주의 최종 승리 (686년): 발라주는 불과 9년 만에 군(郡)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신라 신문왕은 686년 무진주(武珍州)를 지방 행정 단위인 9주 중 하나로 지정하며 전남 지역의 최종 수반으로 삼았습니다.
2. 지리적 특성과 역할의 차이무진주 (광주): 내륙 중심지에 위치하여 전남 전역을 행정적·군사적으로 통제하기에 유리했습니다. 신라 정부는 이곳에 군사 당(幢)을 배치해 지방관을 감시하고 내륙 치안을 유지했습니다.나주 (발라군): 영산강을 끼고 서해로 연결되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행정 중심지 자리는 무진주에 내주었지만, 독자적인 해상 무역 세력과 토착 호족들이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3. 통일신라 말기(후삼국 시대)의 대립견훤의 무진주 점령: 통일신라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견훤은 892년 무진주를 먼저 점령하며 후백제 건국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4. 나주의 반발과 왕건과의 결탁: 무진주 중심의 세력에 반감을 품고 있던 나주의 해상 호족(오다련 등)들은 견훤에게 복속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궁예 체하의 왕건 세력을 끌어들여 후백제의 배후를 치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 기
기회를찾아서
06.19 · 211.♡.41.236
청해진이 워낙 잘 나갔으니 내륙 쪽에 큰 도시 하나 있을 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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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V4030
→ 기회를찾아서 작성자
06.19 · 106.♡.66.242
무진주가 견훤의 첫 번째 본거지였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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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anomA
06.19 · 117.♡.5.236
그래도 요즘 나라가 발전한 뒤에 고고학적 유물들이 쭉 발굴되고 쌓여서 고대사 퍼즐맞추기가 되는 게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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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V4030
→ RanomA 작성자
06.19 · 106.♡.66.242
네 덕분에 고대사가 재밌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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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이데이
06.20 · 14.♡.71.119
밑에 사진은 제 고향 동네네요.ㅎㅎ
저 동래패총에 붙어 있는 국민주택에서 몇 년 살다가
걸어서 5분거리 수안동으로 이사했었죠. ㅋ
옛날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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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때부터 고려 시대까지 나주가 호남의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무역을 통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지역 맹주가 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