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YNM4N (175.♡.147.253)
2026년 6월 22일 PM 03:26
요즘 보면 꼭 나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서 문제다.
영상만 봐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역시 독서가 최고다.
근데 저는 이 논쟁 자체가 조금 옛날 질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인간은 책을 읽도록 진화한 동물이 아닙니다.
인류가 문자를 쓴 건 길게 잡아야 수천 년이고, 대중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인쇄술 이후입니다. 인간 역사 전체로 보면 사실 얼마 안 된 일이죠.
그런데도 독서가 오랫동안 학습의 왕이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책은 내가 이해 못 하면 멈출 수 있습니다.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독서는 뇌를 상당히 강하게 쓰게 만드는 학습 방식이었습니다.
반대로 독서가 못 하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엔진의 4행정 과정.
흡입 → 압축 → 폭발 → 배기
이걸 글로 설명하면 몇 페이지를 읽어도 감이 안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근데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면 5초 만에 이해합니다.
블랙홀 주변 시공간 왜곡, 단백질 폴딩, 유체 흐름 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영상이 훨씬 유리한 분야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와 영상이 경쟁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잘하는 영역이 다릅니다.
독서는 논리와 개념에 강하고,
영상은 공간과 움직임에 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영상은 이미 독서가 못 하던 영역을 뚫고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뜨개질, 미싱, 목공, 요리.
실을 어느 정도 힘으로 당기는지,
칼을 어느 각도로 넣는지,
손목을 어떻게 쓰는지.
이런 건 책으로 배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학원을 다니거나 옆에서 보고 따라 하거나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죠.
근데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누구나 집에서 보고 따라 하면서 배울 수 있게 됐습니다.
영상은 독서를 대체한 게 아니라, 독서가 닿지 못하던 곳까지 학습 영역을 넓힌 셈입니다.
그리고 이제 AI가 등장했습니다.
독서의 강점이었던 것들도 기술로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내가 이해를 못 하면 설명을 바꿔주고,
어디서 막혔는지 찾아주고,
난이도를 조절해주고,
질문도 던져줍니다.
물론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좋게 만들 수도 있고,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 자체는 보입니다.
영상이 가진 강점 위에 독서의 강점을 얹으려는 시도 말입니다.
재밌는 건 역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문자 사용을 굉장히 비판했습니다.
사람들이 글에 의존하면 기억력이 나빠질 거라고 봤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예전 사람들보다 암기할 필요가 훨씬 줄었습니다.
근데 대신 더 복잡한 지식과 사고를 쌓게 됐죠.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면 사람은 늘 이전 시대의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영상이 뇌를 망친다"
도 비슷한 과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숏폼은 저도 별로입니다.
15초짜리 릴스, 30초짜리 쇼츠 말고요.
제가 말하는 영상은 과학 다큐, IT 분석, 경제 해설, 장편 인터뷰 같은 것들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책이냐 영상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주제를 따라가며 인과관계를 이해하느냐 아닐까요?
독서냐 영상이냐는 이미 끝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짜 질문은
AI가 붙은 새로운 학습 도구는 인간의 공부 방식을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
이쪽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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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ilvercreek
06.22 · 211.♡.22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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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Silvercreek 작성자
06.22 · 175.♡.147.253
저도 책을 읽으면 영상처럼 보입니다.ㅎㅎ 사실 우리가 비디오세대라서 그런거 아닐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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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ilvercreek
→ F3YNM4N
06.22 · 121.♡.214.196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들놈 케이스가 신기해서 다른 사람들 샘플링을 좀 해 보았는데 되는 사람, 안되는 사람들이 나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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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Silvercreek 작성자
06.22 · 175.♡.147.253
아 그래요. 비디오세대...라 그런거 같았는데 아닌사람도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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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A671
06.22 · 211.♡.143.11
>애초에 인간은 책을 읽도록 진화한 동물이 아닙니다.
이런 측면 때문에라도, 독서가 뇌를 더 많이 자극하고 발달을 촉진한다는 관점에서 독서를 강조하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단순히 정보와 기능을 습득시키는 것만 따진다면 당연히 영상이 좋겠지만요.
교육도 성년을 훈련시키는 거냐 혹은 미성년을 가르치는 거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흔히 어릴 때 수학공부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니가 커서 미적분을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고력의 훈련이 되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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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PLA671 작성자
06.22 · 175.♡.147.253
ㅎㅎㅎ 그렇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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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다른 이야기인데 저는 책을 읽으면 머리 속에 큰 스크린이 하나 생겨서 읽는 도중에 동영상을 돌립니다. 소설 같은 경우는 아주 쉽구요. 저는 이게 잘 안 되면 독해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수학하고 음악만 좋아하는 아들 놈에게 물어 봤더니 자기는 숫자, 공식들 적힌 칠판만 떠오르고 동영상은 안 된다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