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에 있던 기묘한 담보대출 문화
코미

Lv.1 코미 (175.♡.54.214)

2024년 5월 19일 PM 04:35 · 수정됨(18:10)

조회 2,368 공감 0

바로 농민들에게 흔히 이루어진 토지 담보 대출인데, 토지를 담보로 금이나 쌀 등을 빌립니다.

그런데 뭐가 특이하냐 하면, 그 돈을 못 갚으면 토지가 몰수되야 하는데, 채무자인 농민들은 토지가 채권자에게 몰수당해도 훗날 돈을 모은 후 채권자에게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요구를 받으면 채권자는 땅을 돌려줘야 했는데, 그래서 심하면 할아버지 대 몰수된 땅을 손자가 내놓으라는 일도 있었죠.

채권자가 하소연해도 담당관인 촌장이나 다이칸은 돌려주라고 할 따름이었죠.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

일본은 에도 막부 시기 사무라이는 대개 금이나 쌀을 봉급으로 받았고, 토지를 받은 사무라이도 거기서 나는 수조권 등을 가졌지 직접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토지는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데, 농민들이 5~10인이 1조를 이루고(隣組), 그 조가 여럿 뭉쳐 마을(村)을 이룹니다. 

그래서 각 마을에 세금이 쌀 1천 석을 내라고 하면, 그걸 각 조에 분배하고, 각 조에 속한 농민이 그걸 나눠서 자기 토지에서 쌀을 생산해서 냅니다. 

그리서 토지가 몰수되면 그 구성원이 내야 하는 세금이 연대책임으로 다른 구성원에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촌장과 다이칸 입장에서는 채무자인 농민이 토지를 되돌려 받아서 세금을 정상적으로 내게 하는 게 이득이 되었죠.

그래서 지금 관점에선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더구나 일본의 세율이 꽤나 높아 이런 관행은 농민들에게 최후의 생존수단이거든요.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지조 개혁과 근대적인 소유권 확립이 일어나면서 이런 관행이 사라지게 됩니다. 

당연히 농민들은 땅을 졸지에 잃어버리고 되찾지 못하기 되고, 그런 이유로 메이지 정부 초기 곳곳에서 잇키나 소요가 빈발하게 됩니다. 

그렇게 몰락한 농민을 구제하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우고 몰락한 농민들을 이주시키는 등 식민수탈을 일으켰죠. 

댓글 (4)

  • 윰어

    윰어 Lv.1

    24.05.19 · 218.♡.235.163

    일본 농민이 국가 상대로 소송하니까 한 일화가 떠오르네요..

    “후쿠시마 방사성 물질, 흙과 동화” 판결에 일본 경악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855328
    “후쿠시마 원전에서 날아 흩어진(飛散) 방사성 물질은 이미 흙과 동화됐으니 도쿄전력의 통제권을 벗어났다. 그러므로 방사성 물질 제거 청구를 기각한다.”
    일본 후쿠시마의 농민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농지에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법원이 다소 황당한 이유를 들며 이를 기각해 파문이 일고 있다.
  • 윤사모

    윤사모 Lv.1

    24.05.19 · 124.♡.160.8

    사실 우리나라 전세금 대출도 비상식적인 담보구조입니다. 대출채무자는 임차인이고 형식적으로는 신용대출인데... 실질적으로는 채무자가 아닌 제3자(임대인)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는 담보대출이죠. 결국 담보가 없는... 즉 신용이 낮은 임차인에게 낮은 이자로 신용대출을 해주려고 고안된 묘한 방식입니다.
  • PINECASTLE

    PINECASTLE Lv.1

    24.05.19 · 39.♡.79.180

    토지와 관련해서는 그 이전부터 토지의 소유가 개인이 아닌 어떤 씨족이나 가문의 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때문에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했습니다. 일본도 토지를 저당잡혀서 어떻게 처분되더라도 이런 관념 때문에 소송이 들어와서 문제가 생기거나(다시 반환되거나, 소유권을 두고 계쟁이 이어지는...), 성곽이나 저택처럼 이전 소유자의 가문의 소유물이라서 그 지역을 버리고 다른 곳에 건축하거나 하는 등의 사건들이 부지기수였죠.

    일본 중세사에서 아마 제일 골치아픈 부분 중에 여전히 이 부분이 들어갑니다.
  • 코미

    코미 Lv.1 → PINECASTLE 작성자

    24.05.19 · 118.♡.2.98

    저 뿌리깊은 토지관념과 근대적 토지제도가 공존하던 메이지 시대 초 농민들은 그야말로 혼란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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