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완괴노인 (222.♡.205.6)
2024년 6월 1일 AM 01:42 · 수정됨(11:11)
솔직히 29일이었는지 28일이었는지 정확히 기억 나진 않습니다. 당시 전 고등학교 2학년. 볼에, 이마에 여드름이 가시지 않은 어린 학생이었으니까요.
토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으니 아마 28일이었을 겁니다.
당시에 지금의 서울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교대역 인근에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덕에 멋도 모르고, 지금 돌이켜 보면 호강하며 살았습니다.
토요일 오후, 학원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교대역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습니다.
무섭게.
휭. 휘잉.
눈 앞에서 길을 막는 바리케이드 하나가 바람에 밀려 사거리를 지나 가고 있었습니다. 전에 보지 못한 미친 바람이었어요.
당시에 바리케이드는 지금과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쇠파이프들을 용접해서 모양을 만들고 노랑색, 검은 색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소리치는 모양을 낸 그야 말로 쇳덩어리였습니다.
어지간한 바람에는 쓰러질 지언정 그렇게 드드드드득 아스팔트 길을 긁으며 밀려 나갈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쇳덩어리가 교대역 사거리에서 서초역 방향으로 길을 긁으며 밀려가던 괴상한 풍경이 보이던 날이었습니다.
그보다 1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사또밥 한 봉지를 열어 맛있게 먹고 있던 제게,
바로 집 앞에 있던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가 야자를 막 시작할 시간인데도 전화를 했습니다. 학교의 공중전화로요. 전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 누나의 울먹이는 목소리는 엄마를 찾고 있었습니다. 장 보고 온다는 메모를 남기고 나가신 엄마를요.
"엄마 어디갔어?"
"몰라? 장 보고 온대. 왜? 뭐?"
"엄마 찾아!! 야! 엄마 어디 갔어? 엄마 찾아!"
" 아 왜? 엄마 왜?"
" 백화점 무너졌대. 엄마 거기 안 갔어?"
그리고는..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날따라 창 밖에 유난히 뿌옇게 안개가 끼었었거든요. 저녁 6시 무렵이었는데도. 학교 다녀와서 부엌 창 밖에 보이는 이례적인 안개에 안개 한번 심하다고 감탄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게 안개가 아니었던 거였겠죠. 콘크리트가 산산히 부서진 먼지였습니다. 창 밖에 안개처럼 뿌옇던게 전부 다. 그 백화점의 일부였던 겁니다.
티비를 켜 보니 언제나 보던 분홍빛 그 건물 사진이 보이며 그 건물이 붕괴됐다고 말하는 속보 자막과 아나운서의 숨 넘어가지만 차분한, 이질적인 목소리가 나오던 게 기억 납니다.
그 후로는 다행히 인근 시장에 가셨다가 놀란 얼굴로 돌아 오신 엄마, 친척들의 생존 여부를 묻는 쏟아지는 전화. 밤새 대피하라는 뉴스가 나올까봐 뜬 눈으로 뉴스를 켜놓고 온 가족이 거실에서 밤을 새운 기억,다음 날 결석한 사람이나 가족이 행방불명 된 인원이 없나 체크하던 선생님과 참사 후 주변 구조 요원들에게 나눠 줄 아이스 박스를 모으던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 같은 동 바로 옆 통로에 사시던 분이 며칠 만에 구출되어 돌아오셨던 기억 같은 단편적인 기억 뿐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앞 에서 새벽에 땀흘리며 정신없이 뛰어가다 사라지는 남성의 모습을 봤다느니 하는 괴담이 여럿 돌았습니다.
일년 후 그 장소에서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교대역 사거리에 광풍이 분 그 날입니다.
지금 무너진 건물 자리에 고급 아파트가 서고, 그 곳에 우리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거주를 했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른 집 안에 분홍색 건믈 모형을 두고 액막이를 했다는데 설마 그랬을까 싶습니다. 무고한 시민 수백이 죽은 자리에서 설마 그랬을까요.
그저께, 5월30일에는 스무 살 무렵 세상을 떠난 한 군인의 영결식이 제가 군생활을 했던 곳에서 있었습니다.
그 청년의 죽음 뒤에는 사건을 덮으려는 어떤 분의 노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너무나 다분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럭 화를 내며 수색 명령을 내린 당사자를 덮으려던 사람은 공교롭게도 몇 안 되는 강성 지지자들이 모인 자리에 부득부득 찾아 가 술잔을 높이 들며 환하게 웃었다네요.
사람ㅅㄲ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살면서 액막이를 하고, 젊은 생명의 죽음 앞에 왜 책임자를 숨기지 않냐고 격노한 사람이 진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을 떠올려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영결식 날 술을 마셔요?
술잔을 들고 환하게 웃어요?
그게 어떻게 됩니까?
사람ㅇㅇ.. 면 그게 어떻게 됩니까? 예?
그 패거리를 순진하게 맞서려는 몇 선출직 당신들.
당신들 지금 사람하고 싸우는 것 아닙니다.
정신 차리고 치열하게 싸우세요.
제가 직접 싸울 수 없어 제 주먹 대신 한 표를 행사해 뽑은 당신들입니다.
주제 넘게 당신들 생각대로 하지 말고 말 들으십시오.
경고입니다. 이건.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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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km
24.06.01 · 58.♡.20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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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국수나냉면
24.06.01 · 112.♡.22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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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콤한딸기쨈
24.06.01 · 115.♡.195.188
한편의 영화같은 스토리군요… ㅜㅜ -
오오비완괴노인
작성자
24.06.01 · 222.♡.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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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술 취해 들어와서는 핸드폰으로 이렇게 긴 글을 싸질러놨네요;;; 강성지지자들 워크숍에서 굥이 웃는 사진 보고 열받았던가 봅니다. 추천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오오비완괴노인
작성자
24.06.01 · 222.♡.205.6
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2000493_30711.html
찾아보니 29일 일요일이었나 봅니다.
일요일에도 제가 학원을 갔었네요.
뉴스에서도 그날 바람이 많이 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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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 가까운 곳을 훑고 지나가는 게, 정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