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로다이버 (175.♡.217.28)
2024년 6월 3일 PM 05:04 · 수정됨(06. 04. 05:09)
1.중국/일본에서 짧게나마 살았던 것.
중국 3년, 일본 1년 2개월 살았습니다. 언어는 문화의 총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대로 언어의 지평이 넓어지자 세상도 함께 넓어지더군요. 일본 대신 미국이나 영어권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어쨌든 타국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는 너무나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경험이 기초 자산이 되어 이후 세계를 돌면서도 항상 의연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찾는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거든요.
2.인생의 취미를 만난 것.
하이킹과 스쿠버다이빙은 제 인생의 불꽃이자 빛입니다. 원래는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인도어 파였습니다만, 어쩌다보니 글을 짓는 것이 업이 되어버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 덕에 얻게 된 자유는 세계 각국의 명산과 뛰어난 바다들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죽는다면 그건 산 중턱 어딘가거나 바닷속일 거라 생각합니다.
죽음은 비극이지만, 그래도 희극적인 죽음이 아닐까 싶어요.
3.대학교를 포기한 것.
1번과 이어지는데, 제가 어렸을 때 집이 많이 가난했어요. 물론 부모님이 졸라매고 저도 열심히 이케이케 해서 대학 다닐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정말 진지하게 내게 대학 교육이 필요한가? 목적은 무엇인가, 단순히 취업인가? 고민을 한 끝에 4년+@ 라는 시간과 수천만원 이상의 기회비용을 내걸 가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렇게 친구들이 전부 대학 가 있는 동안, 저는 열심히 일을 했고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중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이 제 인생의 시작입니다.
왜 중국이었냐면, 가장 쌌어요 ㅎㅎ… 그리고 아버지가 등려군을 참 좋아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중국어가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도 있습니다.
4.작가로서의 도전을 받아들인 것.
1, 3번과 이어집니다. 중국행은 1년을 계획했어요. 하지만 비자 문제도 있고, 중국이 경제 발전하면서 생활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더군요. 모아놓은 돈은 거의 바닥이 났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그때 저는 완전히 독서광이었는데, 그 취미가 직업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때만 해도 작가들은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는 평이었어요 (사실 지금도 많은 작가들은 마찬가지에요)
작가일은 정말이지 가성비가 극도로 맞지 않는 일이었죠. 그 시간에 차라리 편의점 알바 하는 게 훨씬 수익이 높고, 마음도 덜 힘드니까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글을 좋아하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노예 계약 수준이지만, 어쨌든 그게 제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고 성장도 없죠.
물론 그 결과, 글이라는 취미는 영영 제 인생에서 사라지고 글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작가인 제 자신을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유를 가족과 함께 누린 것.
어느덧 주위에서 부고를 많이 듣기 시작하게 됐네요.
심지어 친구들의 부고도 심심찮게 오네요.
저도 분명 듣게 될 말이겠지요.
가장 큰 불효지만 제가 먼저 갈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가득찬 사진첩과 기억이 마치 기둥처럼 언제나 제 안에 있는 것을 느낍니다.
남들보다 부유하진 못해도 참 행복한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노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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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핑크연합
24.06.03 · 180.♡.10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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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balls
24.06.03 · 118.♡.15.90
오...저는 낚시가 취미인데 스쿠버다이빙도 입문해보고 싶습니다. -
후후로다이버
→ 4balls 작성자
24.06.03 · 175.♡.217.28
갠적으론 정말 좋은 취미라고 보는데 한국에서 입문하기가 참 쉽지 않은 레저라는 게 문제네요... -
XXXXX
24.06.03 · 61.♡.79.244
정말 멋진 인생이십니다. 부럽네요. -
착착한고양이
24.06.03 · 104.♡.76.149
항상 인생에서 이불킥할 만한 일들이 뜸금없이 생각나서 괴로울 때가 있는데, 이제부턴 저도 잘한 것들을 생각해 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안안즈
24.06.03 · 223.♡.23.181
오 그저 부럽습니다. 글로 먹고 살기가 목표인데 힘들 것 같아요 ㅋㅋㅋ -
후후로다이버
→ 안즈 작성자
24.06.03 · 175.♡.217.28
이젠 너무너무 레드오션이긴 하네요 ㅎㅎ... 근데 취미로라도 꾸준히 글쓰다 보면 기회는 또 옵니다.
여성향 쪽이라면 문이 좀 더 좁기는 한데... 그래도 꼭 직업이 아니라도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좋은 취미기도 하고요. 화이팅입니다. -
착착한아저씨
24.06.03 · 114.♡.29.85
매일 일만하다보니 뭔가 자유롭게 사시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글에서 보는 것과 직접 삶은 다르겠지만 항상 행복한 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
펀펀다이브
24.06.03 · 175.♡.45.7
마지막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함께 행복을 누릴 사람이 있다는게 감사한 일이죠. 응원합니다~!! 더불어 같은 다이빙 취미를 가지신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
로로시
24.06.03 · 223.♡.248.201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네요. 마음이 너무 바쁘게만 살아온 거 같아 조금씩 정리하면서 저를 돌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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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