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중국에게 선빵을 친 후 보낸 한시
코
코미 (160.♡.37.88)
2024년 6월 7일 PM 04:16 · 수정됨(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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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國山河>
<남국산하>
南國山河南帝居
남쪽 나라의 산과 강에는 남쪽 황제가 계신다고
截然定分在天書
하늘의 질서에 분명히 정해져 있거늘
如何逆虜來侵犯
어찌하여 너희 역적 오랑캐들이 침범하는가
汝等行看取敗虛
너희는 참담한 패배를 보고 말 것이니라
중국 북송의 왕안석은 중국 남부에 붙어 있던 베트남을 정복해
그 물자와 재원을 국가 개혁에 동원하고 남부의 정세를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이에 당시 베트남 이씨 왕조(리왕조)의 장군 이상걸(리뜨엉끼엣)은 이를 감지하고 먼저 선제공격을 하고 이 시를 보냈죠.
이후 북송은 전쟁을 시작했으나 이상걸의 전략전술에 번번히 패배하다가 결국 협상하게 됩니다.
그 때 송나라는 베트남 국왕에게 안남국왕이란 창호를 내리는데, 이것이 우리가 아는 배트남의 다른 이름, 안남의 시작이죠.
저거와 비견될 민한 중국의 굴욕이라면 수나라와 고구려와 전쟁이 있습니다.
거기서 보낸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가 돌려까며 비웃는 시라면 베트남은 공격하면 가만 안 둔다고 협박한 한 차이겠죠.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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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막여우
24.06.07 · 223.♡.218.212
당나라와 토번전쟁도 견줄만하죠. -
마마이스토리
24.06.07 · 183.♡.253.117
토목의 변도 중국인들이 엄청 굴욕적으로 기억하지 않나요? -
가가사라
24.06.07 · 112.♡.211.243
토목의 변 비슷한 사건이 있긴 했었죠.
당 태종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쫓기다가 한 우물안에 숨었는데, 우물에 쳐진 거미줄을 본 연개소문이 사람이 숨었을리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돌아가서 이세민이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나중에 그 우물에 몽롱보탑이라는 탑을 세워 목숨을 구한 것을 기념했고요.
중국측 공식 기록에는 고구려 연개소문 얘기는 빠져있지만, 지역 주민들은 다 아는 얘기이고 여러 경극에도 연개소문을 잔인하고 사납고 무서운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연개소문이 거미줄 무시하고 화살만 몇 개 쐈어도 역사가 상당히 바뀔뻔 했습니다. -
FFV4030
24.06.07 · 210.♡.27.130
그리고 명나라가 또 베트남에 쳐들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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