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60.♡.37.88)
2024년 6월 10일 PM 12:22 · 수정됨(13:29)

불경의 형성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석가모니가 입멸하자 모든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수밧다라는 비구가 눈치도 없이 "잔소리하던 석가모니가 죽었으니 이제 우리는 자유다" 라는 무개념 발언을 내뱉는 짓을 합니다.
이를 들은 석가모니의 십대제자이자 목건련과 사리자 이후 가장 교단에서 높이 대접받던 마하가섭은 불교의 정신이 흐트러질 것을 우려하여 하안거 기간에 1차 결집을 열었습니다.
이때 석가모니 말년에 시자로서 석가모니를 항상 옆에서 보필하며 많은 법문을 들은 아난다가 큰 역활을 하였습니다.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생전 언행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그가 1차 결집에서 모인 500명의 대중 앞에서 석가모니의 언행을 하나하나 언급합니다.
이를 현장에 모인 500명의 기억과 대조하여 단 한명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은 빼고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들만을 정리해 모두가 암기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불경 전승의 시작입니다.

즉, 극초기의 불경은 인도의 전통대로 암송으로만 전해졌는데 암송은 외운 사람에 따라 내용이 왜곡되거나 잡설이 들어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암송으로 전해지던 불경은 문서화되기 시작합니다. 이 때의 불경은 패엽경이라 하여, 야자나무 잎을 다듬어서 말린 뒤 잉크로 글을 쓴 후 이를 동아시아의 죽간처럼 묶어서 사용합니다.
한 때 초기 불경에 사용되는 언어로 초기불교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남방불교권의 영향을 받아 팔리어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좌부 불교의 중심적 국가인 스리랑카의 현존 팔리어 대장경은 근세에 동남아를 식민 지배하던 서양인들에 의해 소실된 것을 타이, 미얀마 등에 남은 판본들을 통해 새로 필사한 것이라는 게 밝혀집니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까지 연도가 거슬러 올라가는 카로슈티 문자 불경들이 발굴되면서 더 이상 팔리어 문헌이 근본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다만, 상당수의 대승불교 경전들은 팔리어 경전들에 비해 성립연대가 늦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현재 학자들과 승려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상좌부 불교 대승불교 할것 없이 양측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으며 석가모니의 친설에 가장 가까운 경전은 바로 아함경과 법구경이라고 합니다.
이 두 경전이 가장 먼저 기록으로 나타나고, 서로 대조가 가능하여 어느 한쪽이 만든 게 아님이 명백하거든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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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IUㅡ
24.06.10 · 172.♡.95.47
유익한 정보였습니다. 잘보았습니다. -
딴딴길
24.06.10 · 222.♡.54.111
암송으로 전해졌다는 것이 신비롭습니다. {emo:onion-012.gif:50} -
빅빅머니
→ 딴길
24.06.10 · 61.♡.186.175
경전을 암송하는 종교는 여럿 있습니다. 당장 힌두교 역시 리그베다를 암송으로 구전했고, 브라만 계급이라면 응당 해야만 하는 의무였습니다.
이슬람 교도들도 꾸란을 암송을 적극 권장하고, 암송하는 사람은 대우가 다릅니다.
힌두교나 이슬람교 모두 암송할 때 잘못 외우는 일이 없게끔, 그냥 외우는 정도가 아니라 거꾸로 외우기도 합니다. -
봄봄내음
24.06.10 · 121.♡.48.204
{emo:onion-070.gif:50} -
런런던쫄면
24.06.10 · 124.♡.1.247
이런 류의 제대로 된 글들이 많아졌으면~ -
디디로
24.06.10 · 121.♡.226.152
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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