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60.♡.37.88)
2024년 6월 18일 PM 01:12

흔히 불교에는 수많은 경전들이 있고 이 경전들을 모두 인정한다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 이는 반만 맞는 말입니다.
불교에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경전들 중에서 무엇이 참으로 부처의 말씀인지를 가려내는 일종의 연구 방법론입니다.
이 교상판석에 따라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순서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사상 연구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교상판석의 시작은 초기 형태는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화된 것은 수많은 경전들이 순서대로가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전래된 중국과 동북아시아 입니다.
이 교상판석을 통해 경전들이 정리되면서 동북아시아의 불교 종파불교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교상판석은 경전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한편으로는 특정 교파나 경전을 미화하고 사상적 근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측면도 있었죠.
대표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교상판석을 살펴보면 천태 지의가 내놓은 천태종의 5시 8교와 당의 현수 법장이 내놓은 화엄종의 5교 10종이 있습니다.
둘 다 수당 시대부터의 교상판석이 갖는 특정 종파의 사상과 소의경전을 최고로 치는 사상 선전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알음알음 영향을 남겨서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불교계에서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함경을 비롯한 초기 경전은 석가모니가 전법 초기에 수준이 낮은 중생들을 위해 방편론적으로 설한 가르침이고 법화경이나 화엄경은 수준이 높아진 중생들을 위한 석가모니의 진실한 가르침이라는 관념이 매우 흔했죠.
또한 이 교상판석은 지금보다 서지학이 충분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만들어진 이론이다보니, 현대 서지학적 관점으로 보면 아함경이 시간적으로 초기에 위치하는 것을 제외하면 학술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때문에 현대 불교학에선 불교사나 불교 사상을 연구할 때는 교상판석을 연구할지언정, 실제 불교경전의 성립사 등을 연구할 때는 교상판석에서 제시하는 순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P.S 신라의 원효는 이러한 관행을 비판하면서 법공 측면에서 삼승별교와 삼승통교, 보법 측면에서 일승분교와 일승만교로 경전을 구별하였는데, 교파적인 특성이나 경전 순서를 따지는 특성을 띄지 않고 철저하게 사상적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파를 높이는 세태에 대해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격이라고 비판한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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