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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이 정조대왕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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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2024.06.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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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왕' 호칭이 붙은 왕이 몇 명 있습니다. 세종대왕, 정조대왕이 대표적이죠. 조선 전기에는 세종, 조선 후기에는 정조가 대표적인 왕이였다고 볼 수 있겠네요.

세종대왕의 업적은 분명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글 창제' 하나만 놓고 봐도 조선왕조의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는 편이거든요. 부정부패도 많았고 시대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해서 백성들만 힘들게 하다 식민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하나를 건졌으니까요.

그런데 정조대왕 하면 딱히 떠오르는 업적이 없습니다. 수원 화성 만든 것이야 그냥 신도시 하나 건설한 것이니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없죠. 당시 정권을 차지하고 있던 노론을 억제하기 위해 채제공, 정약용 등 남인을 중용한 것도 특이할만 하지만 대세(노론 주도 정권)에는 지장 없었고, 정조 사후에 그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정약용 등이 크게 핍박을 받았죠.

규장각을 통해 각종 서책을 편찬하는 등 문화사업을 했다고 하지만 이것도 민중에게 실질적으로 와 닿는 것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왜 정조를 정조대왕이라고 했으냐 하면, 그건 바로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리면서 국가 자체를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 열성을 다한 점이라고 하겠네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같은 것을 천천히 읽다 보면 그야말로 정조라는 인물이 얼마나 일을 많이 했고 백성들 민원 해결에 노력했는지 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신하가 어떤 말을 하면 임금이 의례적으로 한두 마디 하는 것이 보통인데, 정조 임금은 주절주절 쏟아내고 이런 것도 알아봐라 저런 것도 해봐라 미친듯이 명령합니다. 그리고 기억력이 남달라서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도 나중에 떠올리며, 어떤 신하 보고 '네 조부가 선대왕 시절에 이런 일을 했는데 손자가 되어서 같은 일을 맡았네, 우연이지만 신기하구나. 너를 특진시키마. 조부의 은덕으로 알거라!' 이럴 정도였죠.

그리고 지금 의전비서관, 연설비서관이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임금의 이름으로 내리는 글은 대부분 신하들이 짓습니다. 홍문관, 예문관 이런 곳에 있던 신하들이 글을 짓고 그걸 임금의 이름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죠. 근데 정조는 상당수 글을 직접 짓습니다. 원래 세자(세손) 시절부터 자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그것이 '규장각 일성록'으로 굳어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3대 국정 기록물이 되어 구한말까지 이어집니다.

학식에도 자신이 넘쳐서 신하들과 유교(성리학) 내용으로 말싸움을 해도 밟아버릴 정도였기에 나중에 되면 스스로 규장각 신하들을 가르칩니다. 역사 시간에 배운 적이 있는 '초계문신제도'입니다. 문신(=문과 과거시험 급제 출신) 가운데 직접 발탁한 인원을 규장각에서 재교육하는 것인데 그걸 정조가 직접 주관했죠.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고등고시 합격자의 스승이 되어 직접 지도하는 것과 비슷하죠.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도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일로 호불호가 있기는 하지만 나름 정치를 잘 했습니다. 영조가 어렸을 때 궐을 밖 민간에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백성의 삶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이죠. 그런데 정조는 그런 영조를 저리가라 할 정도 백성들의 민원을 잘 챙겼습니다. 수시로 한양 길거리에서 민원을 받았고,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혀 있는 수원으로 행차할 때마다 길에서 격쟁이라는 형식으로 민원을 받아 처리했죠.

조선왕조 330여 개 행정구역에서 수없이 올라오는 각종 문서를 직접 처리하고 암행어사를 수시로 파견하면서 지방관들이 잘 통치하고 있나 세밀하게 챙겼음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삶이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시절이었습니다. 관리가 백성을 수탈하거나 해서 민란 같은 것이 일어날 여지가 없었죠.

청나라에서 강희제, 옹정제가 격무에 시달리며 일한 것으로 유명하다면 조선왕조에서는 단연 정조가 있었다고 해야할까요.

하여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신하들과 항상 토론하고 논의하고 지시하고 채근하고 살아서 그랬는지 비교적 젋은 나이인 47세에 갑자기 사망합니다. 10년 정도만 더 살았으면 조선시대 역사가 꽤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만.

이처럼 정조가 남긴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학문을 좋아하는 군주'라는 인상이 워낙 강해서인지 정조 이후 왕(순조, 익종, 고종)들은 모두 정조 임금처럼 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정조께서 이러한 말을 하셨다' 하면서 지시를 했을 정도였죠. 그래서 '대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정종대왕'이었죠. 정종이라는 묘호가 정조가 된 것은 대한제국 출범 이후인 1899년이거든요.


제목은 농담글처럼 적었는데 본문이 꽤 진지하고 길었네요. ㅎㅎ

댓글 36 / 1 페이지

세이투미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세이투미 (223.♡.122.130)
작성일 06.20 11:28
원래 임금이 승하후에 이름을 짓죠
1등급은 -조, 2등급은 -종, 3등급은 -군 이구요
세종도 당시의 평가로는 1등급을 받은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Gesseri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06.20 11:34
@세이투미님에게 답글 조, 종 등의 묘호는 업적을 따져 부여하기도 하지만 그냥 종법(왕위 계통 승계)에 따라 짓기도 합니다. 역성혁명(태조), 반정(세조, 인조) 등이 있었으면 조를 붙이고 또 외세 침략이나 왕실 정통성 수립 차원에서 조(임진왜란 선조, 왕위계승 순조)를 붙이는 식이였죠. 조선 후기는 자연스럽게 왕위 계승이 이어지고 이렇다 할 전쟁도 없었기에 영조, 정조도 원래는 영종, 정종이었고요.

Hallo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llo (203.♡.149.209)
작성일 06.20 11:35
@세이투미님에게 답글 오... 그렇군요....
덕분에 배워갑니다.

Fey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Feye (59.♡.28.6)
작성일 06.20 12:15
@세이투미님에게 답글 아닙니다.

조는 창건한 사람한테 붙입니다. 태조가 그거죠. 세조? 단종 죽이고 지가 해처먹은지라 당연히 "당시" 평가로 조 안달아주면 꽤나 비방당했을 겁니다. 그러니 아들 예종이 조 붙인 겁니다. 안그러면 자기 사촌 죽인 죄과 끝까지 따라붙을테니까. (그리고 "세"자는 정복군주한테 주는 건데, 세조가 정복한 건 자기 조카죠. 호칭 인플레인 이유 하나 더 입니다.) 그 이후 조 붙인 거 보면 가관입니다. 런조와 런도못한 조는 어떻습니까? 광해군과 효종이 본인 정통성 만드느라 조 붙여줬지요. 영종과 정종 (...여기서 공정왕의 안습함이 드러납니다.), 순종은 나중에 고x이 띄워준답시고 조로 바꾼 케이스고요. 

간단히, 조선의 "조"는 태조 빼고 다 아부로 인한 묘호 인플레로 보시면 됩니다. 명나라도 태조하고 성조(이사람도 태종이었다가 후대에 아부 좀 먹은 케이스입니다) 빼고 다 종이지요. 세조와 선조는 최대한 양보해서 정치적 상황상 뭐 그럴 수도 있다 치는데 인조가 1등급 받았다고 정말로 생각하십니까? 허리만 유연하고 하체단련 안해서 런도 제대로 못 뛴 왕이?

세이투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세이투미 (223.♡.122.130)
작성일 06.20 12:23
@Feye님에게 답글 인조 사후에 묘호를 붙일때 평가는,
두번의 호란에도 나라를 잃지 않은 왕 이라는 평가였죠

지금의 평가로 당시의 시대를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박정희 죽었을때, 그 시대는 어떤 묘호를 붙였을 것 같습니까 ?

Fey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Feye (59.♡.28.6)
작성일 06.20 12:27
@세이투미님에게 답글 아 네 그러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박정희 뒈졌을 때 그 시대의 평가는 여대생 따먹다 부하에게 총맞고 뒈진 놈입니다. 제가 그 시대 인물이라 잘 알죠.

세이투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세이투미 (223.♡.122.130)
작성일 06.20 12:30
@Feye님에게 답글 그건 지금의 시각이죠
요즘 MZ 세대들이, 님의 세대를
고도성장기에 편안하게 꿀 빤 세대라고 욕하는 것 만큼 말입니다

Fey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Feye (59.♡.28.6)
작성일 06.20 12:32
@세이투미님에게 답글 일단 님이 "그 시대"에 안 살았단 건 잘 알겠습니다.

무지개발자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무지개발자 (125.♡.213.35)
작성일 06.20 16:08
@세이투미님에게 답글 지금의 시각이 아니라 피해자는 당시대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Gesseri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06.20 12:44
@Feye님에게 답글 조를 창건한 사람에게 붙이는 것은 중국에서 처음 묘호 제도를 만들 때 그러했을지 몰라도 이후에 제도가 변형되면서 유명무실하게 되었죠. 명나라가 유독 특이하게 고전대로 했을 뿐입니다.

인조에게 조가 붙은 것은 호란을 겪은 때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반정으로 집권해서 새로 왕실 정통성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즉, 선조의 후손 가운데 광해군이 아니라 광해군의 동생 중 하나인 원종의 아들로 새로운 왕실 계통을 수립했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열조'로 정했는데 곧 '인조'로 수정합니다. 시호도 그렇지만 묘호도 어느 정도 인플레가 있었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참, 고종이 황제에 오른 후에 원래 황제가 되면 위 선대를 추존하는 예법에 따라 점차적으로 장조(사도세자), 정조(정종), 문조(익종) 등이 조로 개칭되죠.

집나간성질머리님의 댓글

작성자 집나간성질머리 (211.♡.22.89)
작성일 06.20 11:28
게다가 한 여자만 사랑한 사랑꾼이었죠.

야생곰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야생곰 (221.♡.207.212)
작성일 06.20 11:31
@집나간성질머리님에게 답글 아...그래서 "정조"대왕.....

혀니쭈니님의 댓글

작성자 혀니쭈니 (111.♡.37.109)
작성일 06.20 11:30
이런글 좋아용 더 부탁합니다아

범이어슬렁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범이어슬렁 (220.♡.76.242)
작성일 06.20 11:31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 그분이 떠오르네요

dustku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dustku (223.♡.33.230)
작성일 06.20 16:31
@범이어슬렁님에게 답글 노통

아사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아사 (118.♡.110.74)
작성일 06.20 11:34
근데 사실상 조선 후기 세도 정치의 근간을 만들어 놓으신 분이라서 너무 좋은 평가가 아닌가 싶긴 합니다.

Gesseri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06.20 11:35
@아사님에게 답글 너무 일찍 돌아가서 정권이 안동김씨 세도 정치로 돌아간 측면이 강하죠. 10년 정도 더 살아서 아들 순조가 제대로 왕위를 계승할 기반을 마련했으면 또 달랐지 않았을까 하네요. 손자 익종도 꽤 현명했으니까요.

메카니컬데미지님의 댓글

작성자 메카니컬데미지 (211.♡.138.253)
작성일 06.20 11:34
좀 다른 얘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왕조를 얘기할 때 부정부패해서 망했다라는 사실이 왕조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이전의 대부분의 왕조들이 망한 이유는 그 이유때문일거라서요.  조선를 내려치기할 때 단골 소재인 부정부패와 무능은 망할 때의 신라도 그랬고 고려도 그랬던거라...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역시 부정부패와 무능, 그에 따른 국민들의 고충은 필연으로 올거고요.

Gesseri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06.20 11:39
@메카니컬데미지님에게 답글 정조 사후 세도 정치가 본격화되면서 견제 장치가 거의 망가졌기 때문에 기득권층의 백성 수탈이 심해져서 각종 민란이 많이 일어났죠. 붕당 정치가 단점만 있던 게 아니라 최소한 2개 이상 집단이 경쟁하게 되면 서로 감시하고 탄핵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에 극심한 부정부패, 수탈이 제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말기에 그런 상호견제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막장으로 치달았고, 그런 것이 수십 년 고착화되다 보니 매관매직이 성횡하고 국가 체제가 바로서지 못했죠. 이들 모두가 전근대적인 국가의 한계라고 하겠네요.

myrandy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myrandy (121.♡.73.204)
작성일 06.20 11:37
오래도록 살아 계셨다면 또 울 나라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지...
소현세자도 그렇고, 효종도 그렇고...

RanomA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RanomA (59.♡.254.139)
작성일 06.20 11:47
@myrandy님에게 답글 전 그런 면에서 문종이 제일 아쉽습니다.

네로울프님의 댓글

작성자 네로울프 (175.♡.227.114)
작성일 06.20 11:38
진짜 에너제틱한 사람이었죠.

Typhoon7님의 댓글

작성자 Typhoon7 (118.♡.2.139)
작성일 06.20 11:44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일중독+악덕 사장이었던건가요.

RanomA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RanomA (59.♡.254.139)
작성일 06.20 11:48
@Typhoon7님에게 답글 술을, 그것도 아주 독한 걸로 강권했다고 하더군요. ㅋㅋㅋ...

moomin8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moomin8 (118.♡.80.53)
작성일 06.20 12:02
실학자 이덕무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책 <책만 보는 바보> 를 보면 정조가 능력있는 서얼들을 얼마나 세심하게 챙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무예쪽으로도 관심이 많았고 다방면으로 나라를 발전시킨 임금이었더라구요

Gesseri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06.20 12:48
@moomin8님에게 답글 서얼 등용, 노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죠. 나중에 정조가 죽은 후에 수렴첨정을 하던 정순왕후가 '선대왕(정조)의 고심이었다'면서 공노비(관청에 소속된 노비)를 혁파합니다. 물론 순수하는 의도는 아니었고 장용영이라는 정조가 만든 군대를 해체하면서 거기에서 남는 재원을 공노비 제도 혁파로 인한 비용(노비 대신 채용한 일꾼 품삯)으로 쓰도록 하기 위해서였지만요.

정조 시대 당시 나라가 발전했느냐 하는 부분에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백성을 위해 정치하고 국가의 내실을 잘 다지며 부정부패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두루미235님의 댓글

작성자 두루미235 (222.♡.127.189)
작성일 06.20 14:18
과학과 정치가 발전했고,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대왕이라는 호칭이 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울라리숑숑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울라리숑숑 (140.♡.29.3)
작성일 06.20 15:03
https://youtu.be/1StUkZ0eDTQ?si=EaWJqBOuDk6Wqd8-

이거 보시면 정조에 대한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재미있어요

지지브러더스님의 댓글

작성자 지지브러더스 (203.♡.145.133)
작성일 06.20 15:31
이런 글 좋습니다.  알고 있는 내용도 있고, 첨 보는 내용도 있는데 공부가 됩니다!

모어린님의 댓글

작성자 모어린 (211.♡.97.138)
작성일 06.20 15:38
https://www.emanbae.com/episode/11771
정조 관련한 콘텐츠인데 읽을만 합니다.

똘똘이푸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똘똘이푸 (118.♡.65.177)
작성일 06.20 16:27
개인 역량이 시스템으로 이어지지 않은 한계가 역사에 많았네요. 사후 도루묵이 되었겠네요. 칭찬할만한 일인가 하고 이상적으로 생각해봅니다.

Gesseri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06.20 16:37
@똘똘이푸님에게 답글 아들 순조의 장인으로 김조순을 낙점하고 잘 보호해 달라 맡겼는데, 결과가 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참 좋지 못했죠. 세도정치가 각 관청, 관원끼리 견제하는 식의 조선왕조 시스템을 근원부터 무시했으니까요. 순조가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정치를 할 수 있을 나이까지만(=정조 본인의 즉위 나이) 살아 있었어도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똘똘이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똘똘이푸 (175.♡.37.157)
작성일 06.22 09:57
@Gesserit님에게 답글 너무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사실 약간 글과 반대의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본 이상적인 생각이었는데요. 배웠습니다.

사막여우님의 댓글

작성자 사막여우 (223.♡.193.136)
작성일 06.20 16:32
정조가 훌룡한 임금이긴 한데
위대한 임금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하죠.

정조는 영조와 건륭제라는 훌룡한 롤모델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 어깨위에서 출발한 셈이었죠.

정조가 즉위한 1776년은
청나라가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고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던
세계사적 변화의 시기였죠.

유교적 이상군주에 어울리는 모범을 보인 군주였죠.
아쉽게도...

Gesseri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06.20 16:38
@사막여우님에게 답글 어디까지나 전근대 봉건군주로서 최선을 다한 임금이었을 뿐입니다. 당시 격변하던 세계 정세를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보틀나인님의 댓글

작성자 보틀나인 (220.♡.91.166)
작성일 06.20 17:11
뒤주왕의 둘째아들!!! 게장왕의 둘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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