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18.♡.4.197)
2024년 6월 20일 PM 08:22 · 수정됨(20:43)
어제 윤석열 대통령 각하께서 스파르타 운운하시기에 뒷골이 땡겨 척수반사적으로 씩씩대며 내뱉은 말이 큰 호응을 얻다니 저도 참 민망스럽군요.
그 때 딱 고등학교 서양사 교과서 수준의 난이도로 설명하느라 두루뭉실한 게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저출산과 파멸을 불러 일으킨 일등공신으로 아고게란 제도, 즉 스파르타식 교육이 있는데 오늘은 그걸 간단히 논해보고자 합니다.
아고게는 스파르타의 정치가 리쿠르구스 시기 고안된 교육체제인데 지금 기준에서는 비과학적이고 아동학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든 코스를 가집니다.
먼저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키와 몸무게, 건강과 장애, 생식기 기능 등을 검사한 후 거기에 못 미치면 내던져 버립니다. 여성들의 경우는 이 이후에 2차성징이 안 일어나면 역시 죽였습니다.
이 후 7살때까지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혹독하게 기본적인 전투 상식과 교양, 언어 등을 배운 후 집을 떠나 학교를 다닙니다. 학교 들어가자 마자 채찍질로 호되게 신고식을 한 후 지푸라기나 나뭇잎 등으로 자기가 잘 침대를 만드는데 이불은 주지 않았고, 겨울에는 아예 선생님들이 가시를 뿌려주었죠. 목욕도 1년에 몇 번만 하게 합니다. 악과 깡을 기르게 하기 위해.
학교 수업은 10시간은 군사훈련으로 음악이나 구령에 맞춰 마치 검도에서 형(카타)를 배우듯 창, 검, 방패, 격투 동작을 반사적으로 나올 때까지 익히게 합니다. 6시간은 수학과 문학 및 철학을 배웠으나 그 학문은 딱 군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됩니다.
그 외에도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학생들끼리 피가 나고 뼈가 부러질 만큼 격한 격투기 겨루기, 독초를 먹인 후 고통을 참기, 물에 피부를 불린 후 자갈밭에 굴려 피멍이 나게 한 후 찬 물 붓기, 몽둥이로 뼈가 안 부러질 만큼 맞기, 채찍질을 맞으며 버티기 등의 교육이 존재합니다.
이런 교육을 받으며 12세가 되면 군인의 징표로서 망토를 받으며, 16세가 되면 아침과 점심은 자유롭게 식사가 가능해지지만 그 식사는 반드시 훔치거나 빼앗아 먹어야만 하죠. 들키지 않으면 기합이고 들키면 기열 취급을 해서 식량을 구하거나 약탈하는 방식을 배우게 한 겁니다. 20세가 되면 졸업시험으로 산에 올라가 짐승을 잡음으로서 졸업시험을 치룹니다.
이렇게 졸업한 스파르타인은 이 때부터 15명의 전우가 한 조가 되어 30세까지 공동으로 식사, 즉 시시티아를 해야 하는데 그 돈과 식재료는 자신이 직접 구해와야 합니다. 30세가 넘으면 그제서야 집에 종종 돌아가서 아이를 기를 수 있었습니다.
아 참고로 여성들은 2차성징이 오면 집으로 가서 집안을 돌보며 군사 훈련을 주기적으로 받아서 남자들이 전쟁 나가면 여성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여군을 조직해서 스파르타를 수비하는 주둔병 역할을 합니다. 당연히 여성들도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
이 아고게와 시시티아는 시민들이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돈이 여간 비싼 게 아니라 식민지인 메세니아와 라코니아에서 착취를 함에도 돈을 못 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돈을 못 내서 아고게를 이수시키지 못하거나 시시티아에 참가하지 못할 경우 스파르타 시민 자격을 잃게 됩니다.
거기에 스파르타 시민은 군복무할 때 각종 무기와 갑옷 등은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합니다. 그 무기와 갑옷도 매우 비싼데다가 식민지와 주변국과 심심하면 싸워야 해서 부담이 되었죠.
거기에 스파르타 시민은 교육을 받을 때 농업이나 상업 등 실용교육은 하나도 안 받은데다가, 스파르타에서 쓰는 돈은 식초에 담궈 녹이 벌겋게 슨 철막대기였죠.
그래서 스파르타 시민들은 군인이 아닌 농업이나 상업, 수공업 등으로 돈을 벌 수도 없고, 기껏 돈을 모은다 해도 외국에선 안 받아주기에 가난해져 갔습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날이 갈수록 스파르타인들은 가장이 전쟁에서 죽거나 전쟁터에서 장비를 손상당하거나 사회생활 하다가 재산을 잃는 등 가난해진 스파르타 시민들이 많아지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고, 그렇게 몰린 경우 다른 나라로 도망치거나 스파르타 시민 지위를 버리는 일이 늘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파르타군이 전쟁이라도 매우 잘 해서 다른 곳을 압도한 것도 아닙니다. 아고게는 그저 개개인의 무용이 중요하던 고대 그리스 초기 시기에 나온 교육이기에, 팔랑크스 대형을 맞춰 지휘관의 전략과 전술에 따라 움직이며 싸우던 펠레폰네소스 전쟁 시기엔 큰 재미를 못 봤습니다.
도리어 평소에는 상인이나 조각가, 연설가 등을 하다가 전쟁나면 징집되어 싸우는 아테네 육군에게 패하는 일도 잦았고, 기껏 펠레폰네소스 전쟁 이후 테베와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해 스파르타 시민들이 거의 전멸하는 등 들인 노력에 비해 영 부실한 성과를 보여주게 되죠.
이런 판이라서 아고게와 스파르타 사회제도는 중간에 갈아엎고 바꿔야 했지만 오히려 기득권을 쥔 보수파들은 변화는 커녕 옛날로 돌아가자고 하는 판이라 로마 시대까지도 그 영향은 그대로 남아서 로마 시민들은 아고게 교육 훈련을 받는 스파르타인을 동물원 동물 보듯 구경하는 관광 코스가 있을 정도였죠.
뭐 그렇다 보니 스파르타인들은 전성기인 펠레폰네소스 전쟁 승리 이후 그리스 패권국이 된 시점에도 저출산과 국외 이민, 도망 등이 잦아서 힘이 약해져만 갔습니다.
외국인들의 이민을 받자니 스파르타 사람들도 매우 성격이 폐쇄적인데다가 스파르타가 워낙에 사회가 살기 힘들게 되어 있어 아무도 안 오려고 했죠.
그래서 스파르타는 아무리 국력이 강해도 그리스 내에서 힘 좀 쓰는 지역강국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고, 딱 한번 펠레폰네소스 전쟁 승리로 최강이 되어보지만 그 자리도 못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저 아고게와 군복무, 그리고 먹고 팍팍한 삶을 보면 뭔가 안 떠오르나요?
형태는 분명 다르지만 왠지 또 똑같아 보이기도 하는 것이...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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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벽오동심은뜻은
24.06.20 · 128.♡.187.153
[https://s3.damoang.net/data/editor/2406/comment_2156313497_VJ9Iufwp_0d87c5ab8b34e7137a171806e032695dcb42234c.jpg] -
이이니즈
24.06.20 · 119.♡.141.29
획일화 되고 가혹한 교육제도, 늦은 사회 진출, 각자도생 등등 뭔가 지금의 대한민국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여지네요.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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