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 castellio님의 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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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람만이희망이다 210.♡.46.98
작성일 2024.06.2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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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트위터 초기부터 꽤 오랜 기간 열렬한 트위터리안으로 지냈습니다.

트친 분들 중, 가장 좋아하는 몽상가, 이방인.. 진경님

이 분의 피드는 늘 사색케 하는 영감의 보고였으며 소중한 안식처이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꼭 이 분의 140자의 짧은 글들을 공유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https://x.com/castellio




오늘은 오드리 햅번의 기일. 그녀의 생전 미모를 칭송한 한국 기사들에 대비되는 독일의 한 인용을 발견했다. 그녀의 유니세프 친선대사의 경력을 전하며 매체는 그녀의 이 말을 전했다. “나는 공동의 죄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동의 책임은 믿습니다.”


그래, 누군가를 믿겠다는 마음은 결국 기꺼이 속아주겠다는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재미 없고 밋밋한 속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재미 없고 밋밋한 것이 실상은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깨달아 가는 과정이 아닐까?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말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게 무슨 말인데요?"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번역한 말이에요." 우연히 보게 된 TV의 일본 드라마에서 이렇게나 낭만적인 사실을 알게 된 깊은 밤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 - 시위에 나서는 학생들이 학생이라 뭘 모른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이 그렇게 아끼는 유관순 역시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딸이었으면 좋겠어, 아들이었으면 좋겠어,라는 질문에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무사히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녀석,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구나 싶었다.


소위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내가 성경에서 읽은 구절은 이것이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무조건 참고 견디면 상대는 더 악랄해집니다."


인간관계 문제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점이 아니라 해결책을 연구한다. 방향은 여기서부터 틀렸다.


"인내란 기다리는 능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좋은 태도를 견지하는 능력이다." 기다림 자체가 인내가 아니라 기다림의 태도가 인내라는 말, 곱씹어야겠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실은, 우리는 결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이 힘을 더해가는 작금이랄까..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욕을 안 먹는 쪽의 선택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란 사실이었다. 어느 편의 욕을 하찮게 여길 것인가, 그게 늘 중요했다.


새길 만한 말을 전해 들었다. 변명하면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라는.


진정한 근심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생존에 관한 것 뿐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넘어서면 근심은 감사로 바뀌어야 한다. 감사로 바뀌지 않고 남은 근심, 아마도 그것이 욕심의 정체인지도..


"빨리 가려면 홀로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의 격언이란다. 그렇지.. 외로움과 위로는 모두 제 자리가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잘 알아. 나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아주 배가 고프거든..." 비슷한 얘기를 드물지 않게 듣는다. 체험으로 삶을 이해했다는 그 오만함을.

"위대한 정신은 사상을 논하고, 보통의 정신은 사건을 논하고, 하찮은 정신은 사람을 논한다." 엘리너 루스벨트의 이 적절한 문장은 우리말로도 이리 운율이 잘 맞는다.


사과에는 받는 이의 마음을 위한 사과와 자신의 마음을 위한 사과가 있다. 이기적인 사과만큼 폭력적인 것도 세상엔 없다.


포옹을 설명한 아름다운 글을 보았다. HUGS: "Helping Us Grow Spiritually."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도록 돕는다니, 아낄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을 안 쓴다는 거죠?" 한국 청소년들과 달리 독일 청소년들은 비교나 허세가 적다는 내용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분께 아들은 대답했다. "남들이 뭐라 하질 않죠." 아..결정적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직 죽은 물고기들만 물결을 따라 헤엄친다." (Nur tote Fische schwimmen mit dem Strom.) 독일의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견했던, 언제나 새롭게 정신을 차리게 하는 한 줄.


인생. 울음으로 시작된 인생을 웃음으로 마무리하려 애쓰는 지난한 과정.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 샤오미 창업자가 늘 되뇌이는 말이란다. 묘하게 매력적인 말이다.


독일 유명 마트 체인의 함부르크 지점이 진행한 반 인종차별 캠페인. 외국산 제품을 모두 치우고 다음과 같은 문구들을 달았다. "외국인 없는 선반은 이렇게 비어 있습니다." "다양함이 없다면 우리는 더 가난할 것입니다." 영리하고 윤리적이며 참신하다.


한 독일인 친구가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투홀스키의 한 문장을 메일로 보내왔다. “만일 선거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금지될 것이다.” 아, 어쩌면 이렇게도 서늘한지.


좋은 걸 아끼며 살아왔다. 제일 아끼는 컵은 잘 쓰지 않는 식으로. 갑자기 부질없고 어리석단 생각이 든다. 결국 지닌 것 중 늘 안 좋은 것만 쓰는 셈 아닌가. 쓴 것만이 내 것이거늘..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것만 쓰도록 애써봐야겠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출구를 찾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정도면 됐잖아? 난 할 만큼 한 거야,라는 출구를.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이해에 관한 김애란 작가의 말에 밑줄을 긋다.


자기는 객관적으로 못생겼다는 학생에게 객관적인 사실이란 없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객관이란 건 고작 과반이 넘는 주관에 불과한 것 아닌가.


넷플릭스 <메시아> 시즌 1을 끝냈다. 인상 깊었던 죄에 대한 어떤 정의.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는 글을 읽었다. 세류는 이렇게나 흉흉해지고 말았다.


맘에 들지 않거나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상처 받았다는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겁하다.


선생(先生). 그저 '먼저 태어난 사람'의 뜻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먼저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근사한 해설을 들었다. 그렇게 듣고 나니, 비로소 이 말에 담긴 무게가 전해졌다.


열심과 방향은 각각 따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방향이 잘못된 열심과 열심이 결여된 방향, 열심은 변명이 될 수 없고 방향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실패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실패에 머무르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절망 한복판의 희망을 노래하는 한 멕시코 속담을 만나다: "그들은 우리를 땅 속에 묻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씨앗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부상자를 돌보던 21세 여성의료봉사자를 이스라엘군 저격수가 사살했다. 총알은 정확히 '의료진' 표시가 선명한 가슴 부분을 관통했다. 유탄이 아닌 저격. 죽기 직전 인터뷰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부상자들을 도울 수 있어 신께 감사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신은 어떤 심정일까..


직장을 구해. 일하러 가. 결혼해. 아이를 가져. 유행을 따라가. 정상적으로 행동해.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TV를 봐. 법을 준수해. 노년을 위해 저축해. 자, 이제 나를 따라해봐. "나는 자유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오늘 참 좋은 말을 보았다.


“연대를 구하나,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본 청년들의 60년대 운동권 구호라는 이 말, 시대와 공간을 꿰뚫어 여기까지 닿을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언어 폭력이 표현의 자유라면 폭행은 행동의 자유겠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


상처는 결코 없앨 수 없다. 그러니 상처를 없애려는 모든 노력은 부질없고 소모적인 고역일밖에. 상처는 잘 달래어 함께 살아가야 할 반려자와 같다. 상처와 친해지는 것,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뭔가 올바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곧 그 소리에 색칠을 하기 시작한다. 빨강, 검정.. 그러니, 이 시대에 내 소리가 색깔을 입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심히 자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벌거숭이 인간들이 지어주는 채색 옷을 사랑하자.


"살다보면 제일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어." 우연히 귀에 들어와 박힌 대사였다. 대사를 곱씹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 것, 그게 각오요 결단이겠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로 피해자의 존엄이 회복되는 서사는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존엄의 회복마저도 가해자에 달려있다는 말 아닌가. 가해자와 전혀 상관없는 피해자의 존엄 회복 이야기를 더 자주 더 많이 보고 싶다.



친구는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나온 친절한 아저씨를 만났고, 아저씨는 망원경에 폰을 밀착시켜 이런 사진을 찍게 해주셨다고 한다. 친절이 낳은 신비로움, 놀라움, 아름다움.


선조도 버텨낸 민족이었다. 그러니 희망을.


연애가 주는 장점을 말하라기에 연애는 성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대답한 후 덧붙였다. “연애는 자신의 바닥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죠.” 그 바닥을 잘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분명.



"권력을 싫어해도 된다만 몰라서는 안 된다."


선거의 계절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순수하게 살지언정 순진하게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아내의 대답. “우리 아들 생일이지.” 순간 떠오른 말을 아내에게 들려줬다. “당신이 그 애를 낳은 날이지.” 아내는 그 말이 마음에 든 표정을 지었다.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대’라고 한다. 글쎄.. 그렇게 멋진 세대가 있었나? 결국 개인적 손해나 억울함은 절대 못 참는 세대라는 뜻의 돌려 말하기가 아닐까 싶었다.


‘잘 사는’이 ‘돈 많은’을 의미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할 만큼 했다, 최선을 다했다 말하는 사람은 정말 최선을 다한 게 아냐.” 아내가 말했다. “정말 최선을 다한 사람은 늘 부족하다고 말하거든.” 아내의 오늘의 명언이었다.


목사, 의사, 검사, 판사.. 모두 사명감을 기대하는 직업이다. 사명감이 결여된다면 가장 추악한 직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원래 하늘은 이렇게 맑았던 거야,라고 코로나가 말헀다.


독일 친구 아저씨가 오래 전 보내주신 사진을 이제야 보았다. 거기엔 진작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말이 적혀있었다.

"지붕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별을 볼 수 있는 시야는 더욱 더 넓어진다."


나이들어서 꼰대가 되는 것일 리 없다. 꼰대가 나이가 드는 거겠지.


팟캐스트에서 김애란 작가의 말을 들었다. 중간에 그녀는 일을 고르는 기준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인지 나를 소진시키는 것인지의 구분을 언급했다. 나를 성장시키는가 소진시키는가..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일을 고르는 참 좋은 구별법이구나 싶었다. #책읽아웃


“‘언젠가’ 죽는 게 아니라 ‘언제든’ 죽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키키 키린의 말이라고 한다. 삶에 대한 기묘한 겸허함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늦은 꿈이란 없다. 실행되지 않은 꿈만 있을 뿐.


말하자면 인생은 가위바위보,라기보다는 묵찌빠라 하겠다. 아직, 진 건 아니다.


기대를 멈춘 지점, 정확히 그곳에서 삶의 기적도 멈춘다.




댓글 2 / 1 페이지

은비령님의 댓글

작성자 은비령 (218.♡.202.177)
작성일 06.20 22:42
좋은 음악에 좋은 글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줄 한줄 깊이 공감하며 읽어내려 왔습니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곡인데 첼로 버전으로 들어도 참 좋네요. 
첼로가 주는 깊이와 감동이 있습니다.

사람만이희망이다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사람만이희망이다 (210.♡.46.98)
작성일 06.20 23:03
@은비령님에게 답글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밤 되시길 소원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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