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lightened (119.♡.35.219)
2024년 6월 22일 AM 07:54 · 수정됨(13:26)
부모님 모두 한국인으로 한인2세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남성과
미국 대학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학생들의 제일 큰 고민거리가 바로 군입대입니다.
대부분의 한인2세들은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한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남자 한국인 유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하는데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제가 한국인이고 남자이니 제 수업을 듣는 한인 학생이나 남자 유학생들이 군입대 문제로 저랑 얘기를 하고 싶어 오피스 아워에 찾아오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군 전역한지 25년 가까이 되고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남들만큼, 제 또래 남자들만큼 저도 군대 생활이 정말 힘들고 고달펐다는 것은 기억이 납니다.
일상적으로 가해져서 익숙해진 구타보다 고문에 가까운 정신적인 피로함이 더 힘들다는 것을 배우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고
완전히 나를 내려 버리고 남의 요구에 온전히 나를 다 맞춰야 한다는 걸 배우기에 아직 스스로를 낮추고 남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경험이 너무 없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인생에서 군대가 아니면 배울 수 없었던 수많은 삶의 교훈들을 군대 경험을 통해서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찾아오는 학생들을 굳이 위로하거나 훈계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그 나이 때 그런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해병대 문제나 군대 조직의 오랜 병폐들 속에서 희생되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더더욱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조심하게 됩니다.
군대 문제의 형평성으로 분노하는 20대들의 마음이 제 세대에게도 아주 낯선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삶을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군대라는 경험이 아직 배울 것이 더 많이 남은 창창한 젊은 영혼에게
얼마나 귀한 경험이 될 수도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네가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결단에 달려 있다는 말은
꼭 해줍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떤 학생에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거라.
지금은 고통으로 보여도 앞으로 반드시 그 고통이 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게 써주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서 자기 후임들과 나와서 옛날 근무하던 부대 근처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연예인인데 허물없이 후임들과 전역한지 7-8년이 지나도 저렇게 웃고 즐겁게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고 그 연예인의 성숙한 인성이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저는 힘든 군생활을 하면서도 후임들에게 단 한차례도 나쁘게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불합리하고 나쁜 관습도 없앴습니다. 물론 제가 전역하고 다시 생겼지만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전역 후에는 일부러 군생활과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멀리하고 잊으려고 했습니다.
후임들에게 연락이 더러 왔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제 상처를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지금은 선임이던 후임이던 가릴 것 없이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만나 보고 싶습니다.
제 20대 어린 시절 2년 넘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억은 나쁘게만 추억하는 것은 저에게 큰 손해입니다.
돌아보면 반드시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아프지 않고는 크게 성장할 수가 없었을테니까요.
이메일을 보내고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비록 소식은 끊겼지만 다들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기를 기원해보았습니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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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과씨
24.06.22 · 47.♡.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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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온에어
24.06.22 · 49.♡.111.163
제대한지 30년이 지났지만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두 세대쯤은(50-60년) 후에야 인간다운 군생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감옥보다 못한 군대라고 생각합니다. -
프프로세우스
24.06.22 · 59.♡.167.223
52사단 213연대 기동타격대에 있었는데. 94년에요. 매우매우 거지같았습니다. 군대의효용성에 의문이었던.
기타대가 뭐냐하면요. 충정훈련. 광주때 그 진압군인의 목적을 이어받은 시민 소요진압부대였습니다.
즉 부대가 시민을 상대로 전투훈련을 하던.
당시 5x사단 서울주변이 전두환이 자기 지키려고 만든 부대라고했죠.
다행이 94년에 해체되고 예비군교육대로만 남았습니다. -
블블랙맘바
24.06.22 · 211.♡.165.221
군대는 내 몸에 나의 허락이 새겨진 문신과도 같아 아무리 때수건으로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듯이 내 뇌 어딘가에 나의 허락없이 새겨버린 문신이라 생각합니다ㅏ. -
이이모양
24.06.22 · 125.♡.54.138
풀을 먹인 짐승을 잡아 우리는 고기를 얻습니다.
풀이 고기로 바뀌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맛은 없으나 고루 나누어 먹인 풀로
고기를 못 만드는 자도 넘쳐 납니다.
비록, 고기가 목적은 아닐지라도
사그라질 때까지 존재의 이유도 모르는 것이 우리 아닐까요.
고깝던 군영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자신 안에 등이 없으니 널리 어둠을 밝힐 잔광도 없는 것이지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저도 오래되어서 다 잊어가지만 군대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경험은 본인의 신념에 의해 복무를 하든 의무 복무를 하든 군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굳이 안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거 말고도 할 거 많고 경험할 거 많으며, 그 중에는 군대보다 훨씬 좋은 것과 나쁜 게 어차피 다 있을 거니까요.
대신 본인의 선택에 의해 받게 되는 결과는 스스로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죠. 스티브 뭐시긴가 하는 친구처럼 추접스러우면 안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