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426 (39.♡.223.199)
2024년 6월 22일 PM 05:47 · 수정됨(23:19)
아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이야기가 나와서, 국뽕에 살짝 찬물 끼얹는 이야기 하나 써 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만들었다, 중국은 물론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훨씬 앞서는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라고 모두들 학창 시절에 배워서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에 종로 피맛골 재개발 사업을 하다가, 실제 금속활자가 발견돼기도 했죠.
그런데, 생각보다는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중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정설입니다. 활자의 재질이 인쇄 기술의 진보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금속활자 이전에는 목판 인쇄를 했습니다. 목판 인쇄는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 먼저 종이에 인쇄할 내용을 잘 정서합니다.
- 종이를 뒤집어서 나무 판자에 붙입니다.
- 글자 부분만 남기고 나무 판자를 잘 파냅니다.
- 목판에 먹물을 바릅니다.
- 종이를 목판에 대고 잘 문지릅니다.
목판 인쇄의 문제는, 100 쪽짜리 책을 만드려면 목판 100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손으로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잘 본을 떠야 한다는 겁니다. 필사를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대량 인쇄를 하기엔 턱 없이 부족합니다. 목판의 내구성 문제도 있습니다.
현대적인 인쇄술은 대략 아래처럼 진행합니다. (컴퓨터 조판은 논외로 합시다)
- 같은 글자를 많이 많이 만듭니다.
- 원고 한 쪽에 필요한 글자를 모두 모아서 조판을 합니다.
- 원고가 100쪽이라면 100개의 조판을 만듭니다.
- 잉크를 바릅니다.
- 종이에 프레스로 찍어냅니다.
한 쪽을 인쇄하려면 같은 글자가 여러 개 필요하죠. 여기까지 쓴 글에만 '금'자가 벌써 9개가 나왔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인쇄하려면 '금'자가 몇 개나 필요할까요? 그리고 지식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한자는 너무 문자가 많습니다. 한글은 그보다 낫기는 하지만, 여전히 완성형 기준으로 글자수가 너무 많습니다. 현대의 유니코드에도 주로 사용하는 한글 코드 개수가 5,000자를 넘습니다. 금속활자를 만들긴 했지만, 당시의 금속 가공 기술이나 제조 기술의 한계 때문에 대량 생산이 어려웠습니다.
한자나 한글은 글자 수가 너무 많아서 한 권 분량의 조판을 할 만큼의 활자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한 쪽에 필요한 활자 정도였습니다.
- 원고 한 쪽에 필요한 글자를 모아서 조판을 합니다.
- 조판된 활자들에 먹물을 바릅니다.
- 종이를 잘 펴바르고 잘 문지릅니다.
- 조판을 해체해서 다음 쪽에 필요한 글자들로 조판을 합니다.
- 반복합니다.
목판 인쇄보다 나아진 게 뭔가요? 목판은 그래도 책 한 권 단위로 목판을 만든 다음 열심히 찍어낼 수 있습니다. 한 번 필요한 목판을 만들어 놓으면, 목판이 남아 있는 한 계속 같은 책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금속활자로는 쪽 단위로 밖에 찍을 수 없습니다. 당시 금속을 만드는 기술, 원료 확보, 금속 가공 기술의 문제로 권 단위의 조판이나, 인쇄한 후에 조판을 보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한 쪽을 필요한 만큼 찍어낸 다음, 조판을 해체하고 다음 쪽을 찍어야 합니다. 책을 10권 찍어 놓고, 나중에 필요해서 또 인쇄를 하려면 조판 과정을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합니다.
한자나 한글의 특성과 가공 기술의 문제로 활자의 크기를 작게 만들기도 어려웠습니다. 활자의 내구성도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프레스로 찍어내는 인쇄기는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서양에서 구텐베르크를 이야기할 때는 금속활자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인쇄기의 발명과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 인쇄가 가능해졌고, 그것이 지식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나라 금속활자는 목판을 금속으로 대체했을 뿐, 인쇄기의 발명이나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지식 혁명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자 체계 자체의 한계 - 기계화가 어려운 문자 체계 때문이기도 하고, 제조 기술의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조 기술의 한계는 근대적인 공업 기술이 도입되어서야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고, 문자 자체의 한계는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극복이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동아시아 3국이 모두 타자기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그나마 우리나라 정도에서나 성공했고, 그마저도 알파벳 기반의 타자기들 만큼의 속도나 모양새는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세종대왕 이후에 문종이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살아서 왕조를 튼튼히 하고 기술 개발을 계속했다면, 그리고 한글을 계속 개량했다면, 그래서 기계화에 유리하도록 한글 체계를 개편했다면, 역사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는 대체역사물도 누가 써보면 재미있겠네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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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스
24.06.22 · 110.♡.2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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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V426
→ 우웅스 작성자
24.06.22 · 39.♡.223.199
이런 글 쓰는 것도 무서워요. 고작 이 정도의 글에도 날 선 반응이 나오기도 해서요. (국뽕에 반대하는 넌 친일파야!! 이런 식으로요) -
비비가오려나
→ LV426
24.06.22 · 121.♡.12.36
왜구당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 말고는
다양한 생각과 접근법 좋습니다. -
RRider_man
24.06.22 · 180.♡.225.117
직지코드..라는 다큐멘터리도 나름 재미있죠. -
길길벗
24.06.22 · 79.♡.178.141
독일 마인쯔에 있는 구텐베르크 박물관을 방문했을때도 인쇄문화에서 동아시아 3국이 언급되더군요.
거기서 단연 한국의 인쇄술이 돋보였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보고는 입을 닫게되었습니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술, 오늘날 봐도 모터만 달으면 바로 인쇄가능한 그런 기계장치를 보고는
인쇄문화가 다르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
DDymaxion
24.06.22 · 210.♡.132.153
목적 자체가 달랐죠.
조선 활자는 국가 문교 목적이었고
구텐베르크는 개인사업 즉 영리목적이었고요.
그런데 사실 구텐베르크 인쇄기술도 생산성은 그닥이었습니다. 찍어낸 성경 발행부수도 그렇고 퀄리티도 그렇고 성경의 가격도 그렇고요.
왜냐면 이전의 필사본 퀄리티를 흉내내려고 수작업을 추가로 엄청 해 주고 고급 제본 등등 하다보니 인쇄해낸 성경 한권 가격이 필사본보다 엄청 싸졌는데도 집 한채 값이었다고 하더군요.
유럽 인쇄가 꽃을 피운건 사업 말아머고 폭망한 구텐베르그 이후 종교개혁 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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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문화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글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