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천자문] 011 - 始制文字 乃服衣裳(시제문자 내복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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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들고, 황제가 윗옷과 치마를 정했다.
시제문자(始制文字)하고 : 창힐이 문자를 지었고
비로소 시(始), 지을 제(制), 글월 문(文), 글자 자(字)
글월은 뜻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글이나 문장 또는 편지 또는 글자를 말한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결승문자(結繩文字, 노끈을 묶어서 표시함)를 사용하였다. 복희(伏羲)가 나무에 선을 긋거나 홈을 파서 새기는 서계(書契)를 만들어 쓰다가 황제(黃帝)의 신하(臣下)로 눈이 4개인 창힐(倉頡 또는 蒼頡)이 새 발자국을 보고 만든 문자(文字)가 한자(漢字)이다.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 문자(甲骨文字)는 글쓰기 어려운 거북의 등딱지(背甲, 배갑)보다 평평하고 부드러운 배딱지(腹甲, 복갑)를 많이 사용하였다.
문자가 만들어지자 역사를 기록할수 있게 되는데 역사책이 없는 이전을 선사 시대(先史時代)라 부른다. 예전에는 역사(歷史)를 그냥 사(史)라고만 하였다. 역사책(歷史冊)은 사서(史書)라 하였고, 고려사(高麗史), 정사(正史), 야사(野史)등도 그냥 사(史)만 사용한다. 역(歷)은 날짜를 헤아리는것 즉 달력(달曆)과 역법(曆法, 천체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으로 하여 세시(歲時)를 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사(史)는 기록학과 관련이 있고 역(歷)은 천문학과 관련된 말이다. 역사(歷史)라는 단어는 근대 일본이 History를 번역하기 위해 만든 조어(造語)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는 상고대(上古代)라고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삼황오제의 전설부터 주나라 초기 이전을 주로 말한다.
내복의상(乃服衣裳)이라 : 이에 웃옷과 치마를 입었다.
이에 내(乃), 옷 복(服), 옷 의(衣), 치마 상(裳)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나뭇잎과 짐승의 가죽으로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에 급급했지만, 황제(黃帝)가 의상(衣裳)을 만들어 인간(人間)의 예의염치(禮儀廉恥)를 알게 해주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의(衣)는 윗도리(윗옷)를 가리키고 상(裳)은 아랫도리(아랫옷)를 가리킨다.
치마가 바지보다 간단하여 만들기 쉬워서 아주 예전에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었다. 상(裳)은 치마를 가리키고, 바지는 고(袴)라고 한다. 치마는 상(裳)과 군(裙)이 있는데 상(裳)은 풍성하고 길이가 길어 화려하였으며, 군(裙)은 상에 비해 풍성하지 않고 땅에 끌릴 정도로 길지 않아 일상용에 적합하였다고 한다.
예전의 중국은 상의하상(上衣下裳)이라 하여 남성도 치마를 둘렀다. 이때의 옷은 상하가 한벌 즉 원피스라고 한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이 신하들의 반대를 뚫고 호복(胡服)인 상유하고(上襦下袴)를 도입하는데 치마 대신 바지를 입게 된다. 호복(胡服)은 중국 이외는 전부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중화사상에서 나온 오랑캐들이 입는 옷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북쪽의 기마민족의 옷을 말한다. 바지를 입는 이유는 말을 타고 싸우기 편해서이다. 우리의 한복(韓服)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호복이 근간(根幹)이어서 상유하고(上襦下袴, 상의는 저고리, 하의는 바지)를 따르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큰 겉고름이 생기는등 변화가 있었다.
문자와 의상 모두 황제(黃帝)때 만들어져서 비로소 중국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황제(黃帝)의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이었다. 그래서 황제(黃帝)를 공손헌원(公孫軒轅),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 헌원씨(軒轅氏)등으로도 부른다. 황제(黃帝)라는 명칭은 재위 기간 중에 황룡(黃龍)이 나타나 토덕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황룡(黃龍)은 고대 중국의 제국에서는 황제(皇帝)의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