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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천자문] 025 - 墨悲絲染 詩讚羔羊 (묵비사염 시찬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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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lnimbest 211.♡.81.216
작성일 2024.06.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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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슬퍼하였고, 시경에서는 고양편이 찬미되었다.


묵비사염(墨悲絲染) :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슬퍼하였고
먹 묵(墨), 슬플 비(悲) 실 사(絲), 물들 염(染)
묵(墨)은 묵자(墨子)를 말하고, 사염(絲染)은 실이 물드는것을 말한다.

공자가 사망한즈음에 태어난 묵가(墨家)의 창시자인 묵자(墨子)는 유가가 인(仁)과 의(義)를 주장한데 반해 묵가는 애(愛)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유교의 '구별(區別)하여 차별(差別)하는 사랑'인 별애(別愛)와 대비되는 "모든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고, '노예(奴隸)도 인간(人間)이다'라는 만민평등(萬民平等)과 침략(侵略) 및 전쟁(戰爭)을 반대하는 비공(非攻)을 설파(說破)한 평화주의자(平和主義者)였다. 당연히 유교(儒敎)와 마찬가지로 묵가도 부국강병(富國強兵)을 꿈꾸던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에게 환영(歡迎)받지 못하였다.

흰실이 검게 물들었다는것은 맹자의 성선설과 같이 인간의 본성(本性)은 선(善)하지만 교육과 습관에 따라 선(善)해지기도 하고 악(惡)해지기도 함을 지적한 것입니다. 또 흰 실은 검게 물들면 다시 흰 실이 되기 어렵듯이, 사람 또한 한 번 악(惡)에 물들면 다시 선(善)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묵자는 발명가(發明家)이기도 해서 나침반(羅針盤)을 만든 삼국지 위나라의 마균(馬鈞), 톱을 만들었다는 춘추시대의 전설적인 목수 노반(魯班), 고대의 천체관측기구인 혼천의(渾天儀)를 만든 후한의 장형(張衡)등과 함께 뛰어난 과학자(科學者)로 인정받고 있다. 축성술(築城術)로 이름을 날린 묵자(墨子)는 반문농부(班門弄斧ㆍ공수반의 문 앞에서 도끼질을 자랑한다)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인 노반(魯班)과 현재의 워게임인 모의(模擬) 공성전을 치른것으로 유명하다.

묵자의 이름은 적(翟)으로 묵적(墨翟)이라 하고, 노반(魯班)은 원래 공손반(公輸般)인데 노(魯)나라 사람이라서 노반(魯班)이라 부든다. 노반이 초나라로 가서 송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운제계(雲梯械)라는 새로운 공성기(攻城機: 성을 공격하는 기계)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묵자는 노반에게 가서 다른 사람을 한명 죽여달라고 하자 공손반은 살인은 안한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묵자는 살인은 안한다면서 왜 송나라 백성들을 죽일려고 하냐고 묻자 대답이 궁해진 노반은 묵적을 초혜왕(楚惠王)에게 안내한다. 묵적은 초왕에게 비단옷을 입은 부자(富者)가 가난한 이웃의 누더기를 훔칠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왕은 도벽(盜癖)이 있는 사람같다고 대답한다. 이에 부유(富裕)하고 강한 초나라가 가난하고 힘없는 송나라를 치려고 함과 무엇이 다른지 묻자, 왕은 공손반이 만든 운제계(雲梯械)를 실험해보려 했을뿐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묵적은 자신이 운제계에 의한 공격(攻擊)을 막아 보겠다고 하며 초왕앞에서 모의(模擬) 공방전(攻防戰)을 벌인다. 묵적이 허리띠를 풀어 성 모양으로 사려 놓고 나뭇조각으로 방패(防牌)를 만들자 공손반은 모형 운제계로 아홉 번 공격했지만 전부다 실패(失敗)한다.이것을 본 초왕은 묵자에게 송나라를 치지 않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온 고사가 묵적지수(墨翟之守, 묵적이 지켜냄)로 원래는 "자기의 주장(主張)이나 의견(意見)을 굳게 지킨다는 뜻"이지만 "고집불통(固執不通) 상태나 공연한 것에 집착(執着)하여 쓸데없는 것을 고수(固守)한다"는 부정적(否定的)인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된다.

사족(蛇足)으로 공손반은 아홉번 공격에 실패한 이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定理)처럼 오지소이거자의(吾知所以距子矣, 나는 너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 오불언(吾不言, 말하지 않겠다)이라 말하며 여지(餘地)를 남겼지만, 묵적은 이 마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묵자를 암살(暗殺)하는 거였지만, 묵자는 자신을 죽여도 자기의 제자(弟子)들도 다 방어하는 방법(方法)을 안다고 말하자 초왕은 송나라를 치는것을 포기(暴棄)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定理)란 1637년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數學者)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가 "n이 3 이상의 정수(整數)일 때, x^n+y^n=z^n을 만족하는 양(陽)의 정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인데 거의 350년이 지난 1995년에 영국의 저명(著名)한 수학자인 앤드루 와일스가 이를 증명(證明)하였다. 수학적인 내용을 차치(且置)하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定理)가 유명한 이유는 페르마 자신은 알고는 있지만 "여백(餘白)이 부족해 증명 방법을 적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더 유명(有名)해졌다.

시찬고양(詩讚羔羊) : 시경에서는 고양편이 찬미되었다.
시 시(詩), 기릴 찬(讚), 새끼 양 고(羔), 양 양(羊)
시(詩)는 시경(詩經)을 말하며 찬(讚)은 기리다, 찬양(讚揚)하다라는 뜻이며 새끼양을 고(羔)라고 하고 어미는 양(羊)이라 한다.

시경(詩經) 國風(국풍) 召南 (소남) 고양(羔羊)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고양지피(羔羊之皮, 염소 갖옷) 소사오타(素絲五紽, 흰 명주실 다섯 타래로 만들었네). 이 시는 주나라 시조(始祖)인 무왕의 형인 문왕(文王)의 교화(敎化)를 입어 남국(南國)의 대부(大夫)들이 염소가죽으로 된 갖옷(갖은 가죽을 말한다)을 입는 검소(儉素)함을 찬양하였다. “고양(羔羊)의 예(禮)”란 새끼 양이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것은 새끼 양이 어미 양에게 예(禮)를 다한 것으로, 성인의 교화(敎化)로 사람들이 선한 본성을 회복하게 되었음을 찬양한다.

사서삼경(四書三經)중 하나인 시경(詩經)의 원래 이름은 그냥 시(詩)였다. 주나라의 시 305편을 다루고 있어서 주시(周詩)라고도 하였는데 시(詩) 보다는 주나라 시대의 노래를 담은 민요집(民謠集)에 가깝다. 당나라때 오경(五經)에 포함되면서 시경(詩經)이라 불리었다.

사서삼경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네 경전과 시경, 서경,주역의 세 경서를 말한다. 우리는 사서삼경이 익숙하지만 중국과 서양에서는 사서삼경이라 하지 않고 춘추와 예기를 더해 사서오경(四書五經, Four Books and Five Classics)이라 한다.

고대에는 양(羊)은 산양(山羊) 즉 염소를 가리킨다. 염소는 순우리말이고, 중국과 일본에서 염소를 산양(山羊)이라 한다. 흔히 알고 있는 양모용으로 개량된 털이 복실복실한 양은 면양(綿羊)이라 부른다. 헷갈리게도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인 산양(긴꼬리고랄, Long-tailed goral)은 앞에서 말한 산양이 아니고, 양의 친척뻘이지만 사향소에 더 가깝다고 한다. goral은 히말라야 영양(羚羊)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현대의 양(sheep)은 면양을 말하고 고대의 양(goat)은 산양(=염소)를 말하며,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산양은 존재인 고랄(goral)을 말한다.

참고로 윷놀이에서의 걸이 양(羊)을 말한다. 도(돼지), 개(개), 걸(양), 윷(소), 모(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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