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왜 근절되지 않을까? (feat. 두 번째_사회적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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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현재의 학교폭력 제도가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제도가 완전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법률과 제도라 할지라도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다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제도의 미비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를 운영해오면서 현재의 학교폭력 문제를 제도의 문제라고만 정의 내리지 않았습니다. 제도의 문제와 더불어 전반적인 사회적 환경이 학교폭력과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수많은 부모들과 상담을 하면서 절감했습니다.
이에,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두 번째, 사회적인 환경에 대해서 정리하여 말씀드립니다.
1. 사회적 '정의'에 대한 변질
'정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입니다. 올바른 도리는 모든 이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역사가 수백, 수천 년이 흘러도 정의의 개념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윤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정의'의 개념이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적 현상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보편적인 기준이 아닌 나의 사적 이익에 더 많은 잣대를 들이댑니다. 사회적 정의의 개념을 공공의 선과 보편적인 기준이 아닌 개인의 사익으로 판단하는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가 학교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접근하는데 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 통제할 수 없는 아이들, 교권의 붕괴
중학교 2학년인 딸은 학교에 다녀와서 자주 하소연을 늘어 놓곤 합니다. 자신의 반에서 수업을 방해하고, 공공의 사용물을 함부로 망가뜨리고, 선생님들조차 통제할 수 없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딸의 교실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딸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서너 명의 학생들을 경험했었고, 그 학생들을 제재할 수 없는 학교의 현실을 개탄스러워했습니다.
지금 현재 그런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소멸되고 있습니다. 이는 교권의 붕괴 때문이기도 하고,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무관심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러한 통제되지 않는 학생들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릅니다. 교권의 붕괴는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는 현실로 만들었고, 그 학생들을 학교폭력의 가해 학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3. 사과를 굴욕으로 인식하는 일부 부모들
상담을 하다 보면 가해 학생 부모들의 사과로 모든 것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가해 학생 부모들은 사과보다는 오히려 변명을 하고, 자녀의 학교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잘못된 일을 행하였을때 '사과'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해 학생 부모들은 사과를 굴욕으로 인식합니다.
마치 내가 피해 학생 부모에게 사과를 하게 되면, 나 자신이 굴욕을 당하는 것이라고 왜곡하고, 사과하는 것 자체가 내 자녀의 가정 교육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해 학생 부모들은 사과가 아닌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고, 심지어는 피해학생을 쌍방 폭력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을때 당연히, 인간의 도리로서 해야 되는 사과를 굴욕으로 인식한다면, 지금의 학교폭력은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면,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울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진심으로 사과할 줄도 알고, 용서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심리적인 한 부모 가정의 증가
이혼 가정이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입니다만, 더 심각한 것은 심리적인 한부모 가정입니다. 심리적인 한부모 가정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정인것처럼 보이지만 부부간의 대화가 없다 보니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고,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가 없는 가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한부모 가정과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아빠들은 가정과 자녀 교육은 등한시한 채, 경제적 활동에만 집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교폭력이라는 가정의 위기를 아내에게 일임한 채 그저 방관만 할 뿐이었습니다.
온 오프라인 강연을 하면서, 심리적인 한부모 가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리적인 한부모 가정에서 학교폭력이 발생되면, 피해자녀가 상처를 치유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자칫하다가는 가해 학생들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부모들에게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5. 욱하는 사회,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
경제 불황과 맞물리기도 하고, 경쟁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낙오되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경험합니다. 그런 가운데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피해 의식을 갖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러다 보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욱하게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하락하면서 심각한 우울감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부모들의 이러한 현상은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달이 됩니다. 평범하고 모범생이었던 학생이 어느 순간, 상대 학생을 무참히 폭행했던 사례, 상대 학생을 지속적으로 악랄하게 괴롭혔던 사례 등, 폭력의 유형이 우발적이면서 심각하고 악랄한 폭력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 편승된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6. 자녀의 성향을 모르는 부모
"소장님, 우리 아이는 착하고요. 모범생입니다." 대부분 가해 학생 부모들이 저에게 이야기하는 첫 마디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착하다고 인식합니다. 그리고 모범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착함과 학교폭력은 별다른 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더욱이 '착하다'라고 자녀를 평가하는 것은 부모의 주관적인 판단 일뿐입니다. 어느새인가부터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착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이지만 의외로 부모들이 자녀의 성향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의 결핍이 어떤 것인지 , 자녀의 성향과 관심사는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에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 보다 정의로운 아이로 양육해야 하며, 공부를 잘하는 아이 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간혹 자녀들의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성격은 선천적이지만, 자녀의 양육 환경만 바뀌어도 성향은 바뀔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성향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가정에서 올바른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자녀는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의 피, 가해 학생으로 연루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자녀들의 성향을 부모들이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7. 외동 자녀에 대한 잘못된 자녀 양육 방식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환경입니다. 외동 자녀들이 급증한다는 것은 부모들이 한 자녀에게 집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러한 집중은 부모들의 과도한 욕망으로 투영되기도 합니다.
외동 자녀들일수록 자녀의 자존감, 마음 근육, 회복 탄력성을 키워 나가는것에 더 집중을 해서 양육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대부분은 내적 성장보다는 학업 성적과 친구 관계 등 외적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부모가 외동 자녀에게 친구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거나 자녀에게 과도한 칭찬을 자주 한다면, 자녀는 성장하면서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종속되거나, 인정 상실 공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친구 관계는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관계의 역학 관계가 무너져 종속 관계로 이어져 나간다면, 자녀들은 학교폭력의 피해 학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이 인정 상실 공포에 빠져버리게 된다면 자녀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외동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존감과 마음 근육, 회복탄력성 등의 내적인 성장입니다. 부모들이 자녀 양육 방식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는다면, 자녀는 학교폭력에 노출되었을때 그로 인한 상처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자녀의 외적인 성장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 성장입니다.
8. 학교폭력에 대한 부모들의 무관심(설마, 우리 자녀가?)
수년간 부모들에게 학교폭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씩 뉴스에서 학교폭력의 현실을 대할 때는 심각하다고 인식을 합니다. 하지만 그 경각심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여전히 우리 자녀는 모범생이고 착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학교폭력은 우리 자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학교폭력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자칫하다가 학교폭력에 연루가 된다면 부모들은 지옥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녀의 인생과 가정의 행복이 한순간에 무너진 사례를 수없이 많이 봐왔습니다.
부모가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바로 알고,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교육을 시켜야합니다. 부모들이 방심하는 순간, 지옥을 경험할 것입니다.
학교폭력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간혹, 과거의 학교폭력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풍족한 현실을 영위하고 있는 지금의 자녀들과 무엇 하나 풍족하지 않았던 과거를 마주했던 부모 세대의 현실은 문제 해결과 접근 방식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겁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연약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적인 환경과 부모들이 아이들을 연약하게 만든 것입니다.
부모들의 전반적인 자녀 양육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학교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는 앞으로 더 크게 대두될 것입니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져가는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