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담) 변검(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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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기남 165.♡.229.94
작성일 2024.06.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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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에는 1995년작 영화인 변검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으니,

혹시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변검 트레일러라도 보시고 뒤로가기를..






지금의 중국 영화들은 대부분 중국 사상 프로파간다를 위한 것들이 많지만,​

문화 대혁명 시기를 거치고 나온 80~90년대의 중국 영화들은 지금봐도 대작들이 많았죠.

 

저도 당시에 나온 영화들을 한때 마구잡이로 찾아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것은 패왕별희(1993)이겠지만, 인생(1994), 붉은 수수밭(1987) 같은 영화들도 참 좋았죠.

 

그중 1995년작 '변검'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일단 등장인물부터 소개해봅니다.

 

 

경극배우로 나오는 양소난이라는 인물입니다.

 

관음보살의 일대기를 경극으로 만들어 연기하는 인물로,

문화대혁명 때에도 운좋게 살아남은 경극 배우라 그런지,

그 시기에 사라진, 그리고 사라질 것 같은 다른 예술분야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관음득도라 하는 이 경극은,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극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요.

좀 더 찾아보니, 인도쪽 전설이 아닌, 중국판 관세음보살 전승을 각색한 듯합니다.

 


영화상으로도 이 공연 일부가 나오는데,

병이 들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관음보살이 위태로운 밧줄에 매달려, 아버지를 살려주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라며 염라대왕에게 호소합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이 아버지를 살려주지 않으려하자,

결국 스스로 밧줄을 끊고 떨어지지만, 그 희생 덕분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 승천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경극은 이 영화 전체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습니다.

 

 

한편 주인공인 왕씨, 변검왕.


나이가 들었지만, 후계자가 없어 길들인 원숭이 한마리와 길거리 공연을 하며 연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있었지만 변변찮은 벌이 때문에, 30년 전에 한살배기 아들을 버리고 도망갔다 하며,

고생하며 키운 아들도 10살 되던 해에 병들어 죽어서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항상 탓하고 있습니다.

경극과 마찬가지로, 남성들만 예술을 할수 있다는 전통 때문에 제대로된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것도 있었죠.

 


어느날 길거리에 축제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옵니다.

변검왕도 공연을 하기 위해 길 한켠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공연을 시작 합니다.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에 길거리 한쪽에서는

인기 경극배우인 양씨가 관은보살로 분장하고 가마에 올라타 행진을 합니다.

 


복숭아 뼈를 만지면 아들을 낳을수 있다는 소문도 있고,

배우로서의 인기도도 높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와중에,

양씨는 멀리서 변검 공연을 하는 변검왕을 보게 됩니다.

 


순식간에 가면을 바꾸며 그 가면에 맞추어 연기하는 변검왕의 모습을 보고는 매료됩니다.

관음보살 역할을 하랴, 잠깐잠깐 곁눈질로 변검왕의 공연을 훔쳐보랴 바쁩니다.

 

 


행진이 다 끝나고 사람이 흩어진 거리,

공연이 끝났지만 돈 한푼 벌지 못했던 변검왕에게 양씨가 가서 동전 한닢을 건냅니다.

그리곤 다음날 한번 만나자는 제안을 합니다.

 

다음날 양씨를 만난 변검왕.


변검왕에게 자신의 경극단에 들어와서 공연을 같이 하면,

변검도 전수할수 있고 수익을 나누면 돈도 많이 벌수 있으니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지만,

변검왕은 변검 자체가 독립성을 갖기를 원하고,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에게 기술을 물려주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훗날 변검왕이 술친구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만났을 당시에는 변검왕은 양씨를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기술을 빼앗아 가리라 생각했던거죠.

 

아무튼 경극 배우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음에도,

변검왕의 뜻을 존중하여 그 거절을 받아들입니다. 대인배이죠.

그리고 꼭 후계자를 찾으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는길에 무슨 생각에서인지 관음보살상을 하나 삽니다.

아마 양씨가 연기하는 관음보살이 생각나서겠죠.

 

 

당시에는 기근이 있었는지 부모들이 자식을 매매하는 것이 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남에게 파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었던 시절이었죠.

 


변검왕은 양씨의 조언을 듣고, 도저히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거리의 뒤쪽으로 가서 아이를 한명 사오려합니다.

 


돈 줄 필요도 없고 데려가기만 해달라는 여자아이를 뿌리치고 나서려는 순간,

눈빛이 반짝이는 아이 하나가 부릅니다.

 


그리고 이어서 남자 하나가 와서는 자기 아들이라며 동전 10개에 팔라고 합니다.

이어 흥정하여 5개에 아이를 넘겨받은 변검왕은 내심 후계자를 찾았다는 마음에 기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도 올립니다.

 


어찌나 기뻤던지 아예 업고 다니며 거리 구경을 합니다.

심지어 양씨가 운영하는 극장에 가서 양씨에게 후계자를 찾았다며 자랑도 합니다.

사진도 찍고요.

 


구와(우리나라로 치면 멍멍이쯤 되는 예명)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밥도 지어주고,

도망갈까 싶어 꼭 껴안고 자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이 아이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애였다는걸 알게됩니다.

 

초반부의 흐름으로 보자면,

관음보살을 연기하는 사람을 만난 뒤 관음보살상을 구입하고,

후계자를 얻었다는 생각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 후계자가 자신이 원하던 것과는 달랐던 것이죠.

 


그래도 그 간 정이 들었는지 바로 내치진 않고,

자신을 할아버지가 아니라 사장님이라 부르라고 하며,

다른 곡예를 가르치며 길거리 공연을 이어갑니다.

물론 변검은 가르쳐주지 않고요.

 


변검은 전수해주지 않기로 했지만,

꽤나 똘똘했던 구와는 빠르게 곡예도 배우고,

자신의 변검 공연 전에 손님몰이랑 수금도 곧잘 하는 등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오랜만에 술집에 잠시 들른 변검왕과 구와.

그와중에 구와는 술 한단지를 몰래 훔쳐와 변검왕에게 줍니다.

 


변검왕은 크게 화를 내며 다시 돌려놓으려 혼내고,

술단지를 돌려놓고 돌아온 구와에게,

자신은 평생 정직하게 살았다며, 달래줍니다.

 


달래줄겸하여 경극을 보여주러 갑니다.

그 경극이 바로 관음득도.

 


어느날 변검왕이 술을 마시러 시내에 가고,

구와는 변검왕의 집인 조각배에서 변검의 가면을 구경합니다.

 


그러다가 가면을 촛불에 너무 가까이 가져가는 바람에 불이 나서 변검의 도구들을 홀랑 태워버립니다.

너무 큰 사고를 쳤다는 생각에, 구와는 그길로 길거리로 도망갑니다.

그래도 당장 생계를 이어야한다는 생각에 가방을 메고 거리를 나서는 변검왕.

 


길거리에서 배회하던 구와는 또다시 인신매매범에게 잡힙니다.

잡혀간 곳의 다락방에 가니 왠 어린 남자아이가 있는데,

변검왕과 구와가 경극 공연을 보러 갔던 날에,

부잣집 내외가 잃어버린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영화 초반부터 잠깐잠깐 나와서,

시청자들은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그리고 앞으로 변검왕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걸 모르던 구와는 변검왕이 아들이 필요하다는것을 생각해내고,

아이와 함께 그곳을 탈출하여 변검왕의 나룻배에 데려다 놓습니다.

 


한편 변검왕은 자신의 재산과 구와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절에 찾아가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구니를 만나서 대화를 하던 중에,

변검왕에게는 자녀가 한명 있을 운명인데,

북쪽으로 가면 물가에 있을 것이다.. 라는 예언 같은 말을 합니다.

 


정말 그 방향으로 가니, 자신의 나룻배에 꼬마 아이가 하나 있었고,

부처님이 전해준 자녀라 생각하고 크게 기뻐합니다.

 


그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데려왔냐는 말에, 어떤 누나가 데리고 왔다는 말을 하게 되고,

변검왕은 구와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구와를 찾기도 전에 변검왕은 부잣집의 아들을 납치했다는 유괴범으로 몰리게 됩니다.

뭐 경찰들로서는 유괴범을 잡았다는 실적도 올리고, 부잣집 아들을 찾아줬으니 이득이었죠.

아예 경찰서장은 변검왕에게 이전 유괴죄를 다 뒤집어 씌우기 까지 합니다. 고문까지 하면서요.

 


변검왕이 붙잡혀 가는 것을 본 구와는,

변검왕의 나룻배에 가서 가면들을 챙겨다가 변검왕이 갇혀있는 감옥에 와서 전해주지만,

이제는 다 끝났다며 가면을 찟어버리며 좌절합니다.

 


거리에서 상심해있는 구와에게 술집 아저씨가 다가와서는,

경극 배우인 양씨가 도와줄지도 모르니 찾아가봐라며 충고합니다.

 


그래서 구와는 무례함을 무릅쓰고 경극 배우를 찾아가 변검왕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하지만,

그 조차 어찌할 수는 없었죠.

 


마침 경찰 고위 관계자가 생일을 맞이해서 양씨를 불러 공연을 하게 됩니다.

구와는 경극 공연이 벌여지는 곳의 지붕으로 올라가 발목에 밧줄을 묶고 지붕 아래로 매달립니다.

 


그리고는 변검왕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를 본 경극 배우도 변검왕을 풀어주라 간청합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진짜 밧줄을 자를리 없다며 허풍이라 여기며 자리를 뜹니다.

 


결국 구와는 정말 밧줄을 잘라 떨어지고,

그것을 양씨가 급하게 뛰어가 받으며 계단 밑으로 구르기 까지 하며 살려냅니다.

 


그에 감명을 받은 경찰은 다시 수사하여 변검왕을 풀어주기로 합니다.

 


이런 소동 끝에 변검왕은 풀려나게 되고,

그 계기가 구와의 희생 덕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변검왕은 구와에게 변검을 가르쳐주며 이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구와라는 역할.

어찌보면 더 어렸을 때 유괴범에게 유괴를 당했거나,

기근에 견디지 못한 부모가 팔았을수도 있습니다.

극중에서도 여러번 팔렸다 여자아이라고 들켜서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는걸 보면,

보통의 삶을 살아오진 못했습니다.

 


변검왕과 만나서는, 아플 때 약도 써주고 하는걸 보면,

여자인걸 들키고난 뒤에도 기어코 버리지 말아달라 매달린게 이해가 되는 동시에 마음이 아파지는 부분입니다.

 


이후 관음득도 경극을 보고난 뒤,

관음보살은 여자인데도 사람들이 숭배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등,

이 영화가 전하고자하는 주제를 관통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에 대해.

변검왕 역을 맡은 '주욱'은 출연당시에도 나름 고령이셨지만, (1930~2018)

극중 변검 기술 뿐만 아니라, 완고하지만 입체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경극 배우 왕씨역의 조지강(1962년생)은 중국의 전통 연극인 월극 배우 출신이라 하며, 다른 영화에도 출연하신듯 합니다.

월극이란 것도 찾아보니, 전통적으로 남성에게만 전수되던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여성 연기자들도 생기고 있다는걸보면,

'변검'에 출연했던 것은 정말 적절한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구와 역의 '주임영'이란 친구는 이 영화 딱 한편만 출연하고, 그 전후로 기록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저런 루머가 있는듯 하지만, 역시나 확인은 힘든듯.

들리는 루머가 맞다면, 구와역의 주임영 또한 자전적인 영화에 나왔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잘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인물 클로즈업샷이 많이 나오는데요.

특히 주연들의 클로즈업샷에서 나오는 연기력이 정말 좋습니다. (조연/엑스트라는 좀 허술)

 

한편, 이 영화의 감독인 오천명(1939~2014)은 소위 중국 4세대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문화혁명으로 인해 해외에 있던 중 다시 돌아왔고, 그 이후에 이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전적인 이야기이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감독 본인도 자신이 예능인이라 생각했는지,

예능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다른 영화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변검왕의 경우에는, 과거의 규칙에 매달리던 꽉 막힌 사람이었을 뿐 마음씨는 착하고 정직했던 사람이고,

마지막에서는 그런 규율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선택한 것도 삭막한 현실에 대비하여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변검왕을 존중하고 배신하지 않았던 경극배우 양씨도 정말 드문 선역이랄 수 있습니다.

 

오천명 감독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한듯 5세대 감독을 열심히 지원했다 하는데요. (첸카이거, 장예모)

그렇게 오천명 감독이 힘써 키웠던 5세대 감독들이 지금은 프로파간다 영화만 만들고 있으니,

말년에는 참 씁쓸하셨겠다 싶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또 다른 영화로 잡담을 써볼까 합니다.

댓글 4

신림동루니님의 댓글

작성자 신림동루니 (211.♡.200.121)
작성일 06.18 12:42
와 정말 재미있게읽었습니다!

필력이 아주 좋은시군요~

다음에 또 다른 영화도 소개해주세요

포기남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기남 (165.♡.229.94)
작성일 06.18 13:16
@신림동루니님에게 답글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잘 만들어졌지만 조금은 잊혀진 대중영화들을 고르다보니, 좀 신중해지긴하는데요.
그래도 예전 기억을 더듬어서 다음에 리뷰할 영화를 잘 찾아보겠습니다.

베니와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베니와준 (175.♡.183.194)
작성일 06.18 21:14
정말 영화 한편을 다 본거 같아요. 전에 본 장예모 감독의 원세컨드가 떠올려지네요..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뭔가 삶에 대한 태도나 하층민의 힘겨운 삶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집념이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암튼 그렇네요

포기남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기남 (165.♡.229.94)
작성일 06.19 08:12
@베니와준님에게 답글 중국 영화들도 괜찮은 작품들은 꽤 깊은 통찰이 보이는 것들이 있죠.
다른 이상한 중국 영화들에 가려져서 빛을 못보는 명작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원세컨드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한때 장예모 감독 작품들을 꽤 찾아봤던 기억이 있기도 해서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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