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 그 누가 그들을 망치려고 해도 상관 없을 것이다.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레드엔젤 59.♡.172.127
작성일 2024.09.10 20:30
분류 추천해요
117 조회
1 추천
글쓰기

본문

아래에 QLORD님 글을 보고 예전에 읽었던 파친코 감상문을 소환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구입할 당시에 여러 가지 논란(높은 선인세 문제 등)으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우연치 않게 구매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대성공.*_* 이전 작인 '백만 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과 레벨 차이가 나서 같은 작가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개인적으로 백만은... 뭐랄까... 90년대 미드 느낌입니다...)

좋은 책이고 마침 다모앙 회원님 중 한 분이 언급하셔서 다른 분들도 읽어 보시거나 들어 보시길 바래서 추천 말머리로 올려 봅니다.(요즘 만화책 감상문만 올려서 찔리는 것도 있고요..^^;;)


-----------------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상관없다.

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꽤 강렬한 시작이라서, 마지막 2권을 읽을때까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션의 그 유명한 ‘’아무래도…’가 조금 쌈마이틱한 인상으로 다가왔다면, 이 소설은 다루는 주제와 소재때문인지 한층 더 무게감이 있는 첫 문장인것 같습니다.

저는 청개구리 기질이 좀 있어서 인구에 화재가 되는 작품들은 잘 안보거나 읽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디즈니 마블 영화는 직관을 한 적이 없고(겨울 왕국은 예외), 인기 있는 작품인 오징어 게임은 아직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도 사실은 ‘뭐야? 왜들 호들갑이야?’이라는 생각으로 지나치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인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의 권유로 주문을 했는데, 마침 또 막차(2022년당시, 문학사항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습니다. 당시 새로 계약을 하느냐 마느냐 등의 판권 문제로 출판계에서 조금 시끄러웠던 걸로 기억합니다.)를 탔네요.^^; 게다가 이 글을 작성하려고 마음 먹은 시기에 국내판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요.

이미 읽어 보신 분들이나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라면 대략 줄거리는 아실 겁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이런 저런 스포일러성 글들도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어떤 소설들보다 등장 인물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스토리쪽에만 관심을 두는 편이라 인물들에 대해서는 좀 등한시하는 경향이 컸습니다만, 이 소설만큼은 주요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의 삶이 계속 눈에 밟히는 것 같습니다.

전 4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중 중심이 되는 건 아마도 여주인공 선자일겁니다.

선자를 통해서 일본에서 태어난 3대인 노아, 모세 형제. 4대인 솔로몬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가는 중심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이삭과 한수와의 얽히고 설킨 인연들 역시 이 소설의 메인 축이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이삭의 형 내외인 요셉과 경희 역시 선자를 중심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을 살펴 보면 개인적으로 참 흥미롭습니다. 선자의 경우는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가난한 집 출신으로 거의 매매혼 격으로 결혼한 어머니 사이에서 우여곡절끝에 얻은 귀한 딸이라는 설정입니다. 아버지인 훈이는 자신의 장애가 자식에게 물려지지 않을까 노심 초사했지만, 운좋게도 선자는 장애를 갖지 않고 태어납니다. 선자는 어찌 보면 1대가 가진 어려움중 하나인 장애의 어려움을 벗어난 세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가난하지만요. 게다가 양 부모의 착하고 우직한 성격을 고스란히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 받습니다.

이 성실하고 곧은 정신 유산은 배우자인 이삭의 만남을 통해 더욱 보완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3대인 모세와 노아가 가난과 차별이라는 여전히 남은 문제가 있음에도 건강한 신체와 착한 심성을 바탕으로 다음 신분 계층 이동을 위한 지식과 돈을 축적하는 목표를 가지는데 밑바탕이 되는 셈입니다.

마지막 4대인 솔로몬은 이전 세대가 물려준 건강한 신체와 정신, 지식(미국 유학자이니), 물질적 풍요의 기반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뛰어 오를 준비를 하는 세대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세대가 이어지면서 그 유산이 고스란히 잘 전해지고, 각 세대마다 더 큰 사회적, 정신적, 물질적 유산이 더해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물들이 꼭 비참한 사람을 살아간 불행한 캐릭터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대 유산을 적절히 인지하고 이용할줄 아는 도전적인 가족들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는 왜 다음 세대를 낳고 그들의 미래 삶을 생각해야 하는지 한 번쯤 고려해 보게 됩니다.

물론, 세대를 이어가는 이 가족들에게 마냥 행복한 일만 있던 건 아닙니다. 배우자를 잃는 일도 있었고, 인종 차별 속에서 몸부림치다 끝내 뜻을 꺽을 수 밖에 없던 결말도 맞이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모세(소설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모자수라는 성명보다는 모세로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가 가장 자신의 유산을 잘 남긴 인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비록 파친코라는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업을 운영하지만, 현세의 물질적인 부를 이루고, 다음 세대인 자식에게 지식과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친구 면면을 보면 일본인 하루키와 재일 한국인(아마도 연배를 고려하면 2세대인 순자와 비슷한 나이로 추정되는) 고로가 있습니다. 이들의 면면도 하루키가 소설 후반부에 연배를 고려해 보면 경찰 청장급이고, 고로는 업계를 떠났지만, 모세에게 파친코 사업 노하우를 전수했던 인물입니다. 말하자면 모세는 빛과 어둠의 세계 양자에 속한 친구를 가진 셈입니다.

그에게는 비록 현지 출생인 재일 조선인이라는 굴래가 있을 지언정 그 극복의 터전은 마련하고 아들인 솔로몬에게 다음 바톤을 넘길 정도의 업적은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인 솔로몬도 비록 외국계 은행의 상급자에게 배신을 당하는 쓴맛을 겪지만, 미국 유학 코스를 밟은 엘리트에 자신이 일군 파친코 업을 이어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힙니다. 이 가족 세대는 일본에서 여전히 힘겹지만 자신들의 아이덴티를 부각시코자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발판을 마련한 셈입니다.

파친코(도박 게임) 관련해서 검색을 해 보면 솔로몬 세대를 기점으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다음 세대가 이 업계를 양지화 하고, 선진적인 운영안으로 이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이니치로서 순수 일본인같은 지위는 얻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이 세대는 분명 지하 경제적인 속성을 가졌지만 거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을 양지화로 이끌어 낸 세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95200014&localCode=jpn&menuGbn=special](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95200014&localCode=jpn&menuGbn=special)

더불어서 조선시대로 치면 백정과 같은 불가축 천민적인 세대이자 업계에서 어떻게 자이니치들이 생존해 갔을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의 시작 문장처럼 역사가 혹은 주변 상황이 어떻게든 ‘우리를 망쳐 놨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그걸 어떻게든 극복할테니까’라는 게 바로 이들의 심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자의 연애 대상중 한 명인 고한수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가장 불행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등장 인물들 대부분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다음 세대에 뭔가를 남긴 이들이지만 한수는 그 어떤 것도 다음 세대에 전달을 하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인 세대 유산으로서 세 딸들이 있지만, 이들과의 연대감은 순자와 그 아들, 손자와의 연대감과는 비교할 수 없고, 일반인들과도 비교 자체가 불가합니다. 거의 남과 같습니다. 게다가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던 생물학적인 아들인 노아의 죽음으로 고한수는 다음 세대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가능성과 자신의 모든 것이 종결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소설 내내 권력과 돈을 가진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소설 마지막까지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야쿠자 두목으로서 삶이 마감되고, 그마저도 그의 죽음과 더불어서는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의 사상은 그 누구도 이어받지 못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암투병을 하면서도 소설 마지막까지 병원 침실에 누워 살아 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는 즉시 그가 살았던 삶의 기록은 어느 세대에도 전달되지 못하고 사라질 비참한 운명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고한수라는 인물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용서하지 못할 기회주의자에 배금주의자이지만, 그 자신의 삶의 결정에 의해 쇠락해 가는 고전적인 영웅들의 몰락을 보는 듯하기 때문입니다.(늘 그렇듯이 불구경, 싸움 구경 다음에 재미있는게 남 잘 안되는 겁니다….)

고한수는 사실 순자의 남편이자 노아와 모세의 아버지인 이삭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 인물입니다. 훤칠한 키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의 교육의 혜택을 받았다는 묘사가 잊을만하면 나옵니다. 거기다 공통적으로 소설의 중심 인물인 순자의 애정을 함께 하는 시간에는 흠뻑 받았던 인물들입니다.

소설속의 묘사를 보면 외모와 함께 타인과 대비되는 그들의 지적인 부분에 대한 서술들이 나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동전의 앞뒷면같은 당시 지식인들(변절한 이광수 같은 인물들, 그래도 남아서 독립운동을 한 투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게임으로 치면 이 소설의 진짜 보스는 어쩌면 선자의 남편인 백이삭 목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생애는 비참했을지 모르지만, 고한수와 달리 생물학적으로 다음 세대를 온전히 이어주는 모세, 솔로몬의 체계를 완성합니니다.(유대감을 기준으로) 그리고, 비록 자살이라는 큰 좌절이 있었지만, 노아를 통해서 지식과 선함에 대한 정신적인 유산이 묘지기를 대표되는 다음 세대에도 전달 됩니다. 아내인 선자와의 사랑의 완성도 고한수와는 비교 불가입니다.

선자가 마지막에 미련을 가졌던 노아가 들어 있는 사진을 묻는 소설의 결말은 어쩌면 비참해 보였던 결말을 가진 노아가 사실은 유전성이 아닌 정신적인 세대 전달 유산을 착실하고 훌륭하게 전달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이삭이 자신의 세대 전달 유산을 남기는 결과는 이 부분에서 그 완성의 절정을 이룹니다.

해설에서는 이삭이 이미 아이를 잉태한 선자를 선택하는게 종교적인 성장 배경에 따른 굴레라고 말합니다만, 저는 앞의 사안을 고려해서 다르게 봅니다. 그는 굴레가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헌신의 대상을 찾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속에서 이삭이 선자와 결혼을 결심하는 장면의 묘사는 의무감에 사로 잡힌 사람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권리와 희망을 드디어 발견한 사람처럼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비슷한 상황의 출발선을 가진 한수와 달리 생물학적 자손과 정신적인 자손을 모두 남긴 성공한 세대가 된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반대편의 거울상같은 고한수는 픽션상의. 캐릭터로서는 참 매력적일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남자라는 분위기를 시종 일관 풀풀 풍기면서, 모순적인 순정을 작품 내내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순정은 꽤나 상식밖의 모습들로 묘사됩니다. 선자의 어머니인 양진의 장례식에 와서는 ‘내 아내가 죽어서, 이제 당신과 결혼할 수 있다’라는 말은 그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를 부각하는 장면입니다. 모두가 슬픔을 표현해야 하는, 그것도 여주인공인 선자의 모친이 세상을 떠난 날에 한수는 그저 이제 선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 같은 말을 합니다.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키다리 아저씨적인 모습은 사실 자기 만족적인 발로였고, 이를 통해서 선자는 완전히 한수로부터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됩니다.

고한수가 타인들로부터 이같은 외면을 당하는 건 사실 그 자신의 문제점들때문이기도 합니다. 한수는 작품 곳곳에서 잊을만하면 꽤 폭력적인 면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최악인 장면은 자신의 심기를 거슬린 호스티스에게 가한 물리적인 폭력 장면입니다. 소설속의 실제 묘사는 짤막하게 나오지만, 피해자의 이후 삶이 매우 피폐해 졌다는 부연 설명은 그가 휘두른 폭력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고한수는 자신의 뜻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치 않은 인물이며, 그로 인해서 마지막까지 그 어떤 세대에 유산도 유대감도 남기지 못하는 비참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따지고 보면 생물학적인 아들인 노아의 죽음도 한수의 자기 중심적인 성격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한수가 장기적으로 권선징악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망가지는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바로 시작했던 첫문장입니다.

역사(조국이, 환경이, 주변인들이, 여러 질병과 고난이)가 우리(선자, 노아, 모세, 솔로몬)를 망쳐 놨지만 상관없다.

그들은 이제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자이니치든 상관없이 자신(선자, 모세, 솔로몬)으로 계속 살아 갈거라는 걸 독자들은 알 수 있으니까요.

댓글 0
글쓰기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