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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월 1979 - 10.16 부마항쟁연구소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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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셰도우
작성일 2025.03.09 11:38
분류 독후감
96 조회
2 추천

본문


이 책은 지난 1979년 10월 16일에 부산대, 그리고 17일에 동아대에서 시작된 부마항쟁에 대해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들과 시민들의 인터뷰, 회고록, 그리고 탄압 과정에서의 반헌법범죄자들에 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저는 그동안 얼핏 듣기로 유신정권이 79년에 부산에서 계엄을 테스트해 보고,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광주에서 전두환이 5.18을 저질렀다고 들었기만 했지, 그 테스트 무대였던 부마항쟁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몰랐습니다. 해서 도서관에 꽂혀 있던 이 책을 집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사망자가 없을 뿐이지 광주와 너무 닮았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 였습니다.


유신독재와 YH 여공들 사건, 그리고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체포와 제명 사건들을 접한 부산대 학생들, 그리고 부산대에게 자극받은 동아대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부산을 가로질러 부산대에서 남포동까지 일련의 행진을 하며 시민들과 학생들이 불어나 커졌던 사건, 그리고 그 불길이 마산까지 이어져 마산에서도 이어졌던 사건. 

그리고 그런 시위대와 시민들을 페퍼포그 차를 앞세워 경찰봉과 군인들의 총기 개머리판 등으로 사정없이 내려치며, 시위대에 있었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비롯해서 구경하고 있던 시민들, 심지어는 시위대가 도망친 건물 속에 있던 아무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고 불법적으로 체포, 구금하고 가둬두며 고문과 구타를 밤낮없이 해대며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을 비롯한 신민당 등과 연락해서 조직적으로 일으킨 것이라고 허위 진술을 강요하던 사건.


하지만 너무나 유명한 10.26 탕탕절 사건이 열흘 뒤에 일어나면서 이 모든 고문과 구타, 허위 진술 강요는 유야무야되었고, 몇몇은 실형을 살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집행유예나 공소기각, 훈방조치로 풀려났죠.

한편 이 때 내린 비상계엄의 경험을 토대로 전두환의 보안사는 '시위 발생시 초동단계에서 강경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부마지역 학생소요사태 교훈' 이라는 문건을 작성했고, 이 문건은 이후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들이 '충정훈련'이라는 이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투입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김재규의 형사재판기록을 보면,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하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서 전 국민이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원하고 있다고 했고, 그에 대한 좋은 입증자료로 부마항쟁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즉,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기로 결심을 하는 데 있어서 열흘 전에 일어났던 10.16 부마항쟁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지요.


이 책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저 또한 궁금했던 것이, 과연 이 당시에 그렇게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가두고 고문했던 군인들과 경찰들, 그리고 권력자들, 각종 증거와 법 절차들을 싹 무시하고 유죄 판결을 내렸던 판사들, 그들에 대한 처벌에 대한 얘기는 여태 듣지를 못했습니다. 하다 못해, 제가 사는 이 부산에서도 10.16에 대한 얘기는 지금은 거의 들을 수가 없고, 심지어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때 학생들과 시민들이 끌려갔었던 보안사 부산지구, 일명 '삼일공사'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 부산울산지방병무청 현역입영센터 자리가 바로 그곳이라고 하더군요.


비록 이 때는 시민들과 학생들을 짓밟던 독재세력이 아무런 처벌도 없이 넘어갔지만, 이들에 대한 추적과 역사에 기록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내란 세력들은, 반드시 이들처럼 곱게 넘어갈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도 단호하게 처벌하고 단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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