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아이셰도우

Lv.1 아이셰도우 (180.♡.185.178)

2025년 5월 7일 AM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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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들어보셨을, 한나 아렌트의 대표작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다른 유대인들과 다른 관점을 갖게 된 것은 라헬 파른하겐의 영향이 큽니다. 그 당시 독일 주류계로 녹아들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파브뉴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의식있는 패리아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라헬 파른하겐처럼, 한나 아렌트도 당시 시온주의를 비롯한 유대인들의 주류 의견처럼 무조건 아이히만은 악으로 똘똘 뭉친, 죽어 마땅한 악의 화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을 때 여러 과장되거나 거짓된 소문들이 돌았고,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바라본 아이히만의 모습을 통해 그녀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고, 또한 아이히만은 우리 속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도록 경각심을 줬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바라본 아이히만의 세가지 무능성은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다시 말해서 판단의 무능성입니다.  특히 마지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은 그 어느 것도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성격 결함, 타자 중심적 윤리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데, 아이히만을 보면서 이런 무능력이 인간을 악함으로 이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무엇 때문에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유대주의에 세뇌된 것도 아닌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아이히만이 어떻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삶을 크게 관조적인 삶과 활동적인 삶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 활동적인 삶은 노동, 작업, 행위의 세가지로 다시 구분합니다.

이 중에서 행위는 공적 영역에서 다양성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주고받는 의사소통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는 자유롭게 생각을 쓰거나 말하는 것이 중요하고, 19세기 살롱에서 라헬 파른하겐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사건이어도 사람들이 경험한 바가 다르고 이에 따른 의견도 제각각인데,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입장까지도 고려해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올바른 이야기하기가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며, 그래야 그에 따른 행위도 정당성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 의견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아이히만의 무능력의 본모습이라는 것이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에 대해 유대인들은 그녀가 아이히만을 용서하려 한다고 하며 공격했는데요,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은 진정으로 분노할 것에 대해서 분노하게 하는 것이지, 용서를 요구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법정에서 바라본 아이히만은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었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고자 함이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윤은주 박사님이 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마지막 문단을 보니, 또다른 전체주의 속에 살고 있는 2차대전 시대를 비롯한 현대의 일본, 그리고 흔히 말하는 극우를 비롯한 저쪽 성향의 사람들을 비롯해 미국,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돌고 있는 극우의 바람에도 적용할 점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아이히만의 행동은 그 어떤 폭력성이 아니라 생각과 말함의 무능력이 불러일으킨 평범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 평범함은 아이히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에 아이히만을 품고 있다. 자기와 공동체의 모든 사람 사이에서,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판단하고 행위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선하게도 혹은 악하게도 만들 수 있다. 결국 인간다움의 조건마저 제거할 수 있다는 전체주의의 공포는 전례 없는 사건에서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경험의 장으로 옮겨졌으며, 그 공포의 재현 가능성은 이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 윤은주 지음, 세창미디어, 182-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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