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셰도우 (180.♡.185.178)
2025년 5월 13일 AM 11:32


4.3문학회에서 올해 4월 3일에 발간한, 12명의 회원분들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토론한 후 각자의 관점에서 쓴 독후감 겸 에세이를 모은 책입니다.
이 책을 고른 건, 다름 아니라 지난 달에 읽었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난 후에 너무 가볍게 표면만 보고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찝찝함과 미심쩍음,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5.18을 맞아 읽을 다음 책인 소년이 온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한강 작가님에 대해 보다 더 제대로 알고자 하는 욕구들이 계속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지라, 마침 지난 4.3에 맞춰서 발간한 이 책을 통해 전문적이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분들이 읽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떤 책인가를 알고, 보다 더 깊게, 그리고 선명하게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책들이 그저 유명한 책에 편승해서 얹혀가는, 혹은 묻어가는 그런 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만, 나름 이런 제주4.3을 계속 기억하고 작별하지 않는 분들의 견해와 식견을 통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과 견해, 지식을 얻고 그를 통해 새롭게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고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마치 교과서 옆에 함께 보는 참고서처럼 말이죠.
이 책을 통해 제가 가장 많이 깨달았던 건 이탤릭체에 관한 것, 눈과 새에 대한 심상과 그들이 상징하는 바, 이 책이 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책인가에 대한 관점, 그리고 한강 작가님을 큰심방(심방(心房)은 무당을 제주도에서 부르는 말입니다)을 넘어 신방(神房)이라고 표현한 관점이었습니다.
이탤릭체는 꺼질 듯 꺼질 듯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그날, 그리고 그날 이후의 이야기들을 마치 심방(무당)의 공수처럼 경하나 인선, 그리고 각종 자료 등을 통해 전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소설의 이탤릭체를 구술이고, 소리이며, 낭송된 시가 되기도 하고, 산 자가 죽은 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이라 했는데, 저는 이 말을 보고 책을 다시 보면서 풀리지 않았던 많은 궁금함들, 특히 이탤릭체의 의미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당이 굿을 하면서 마치 접신하여 혼령들의 이야기를 무당의 입을 통해 대신 전해 주듯이,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한강 작가님이 마치 무당처럼 제주 4.3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보니, 첫 장면에서 밀려오는 바닷물을 보면서 뼈들이 휩쓸려 가지 않도록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하는 경하의 꿈도, 2부에서 갑자기 살아난 새 아마와 어느새 멀쩡한 열 손가락을 갖고 태연하게 언제 왔냐고 경하에게 묻는 인선까지, 많은 것들이 해석이 되더군요.
또한 '눈'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들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소설 속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되었듯이, 인선이 입원한 서울의 병원에서 본 아름다운 눈과, 70여년 전 토벌대의 총칼에 살해당한 인선의 외조부님과 막내이모를 비롯한 시신들 위에 쌓였던 눈, 그리고 인선의 부탁을 받고 새를 살리러 인선의 중산간 집으로 가던 길에 건천에 빠져서 쓰러져 있던 경하 위에 내리던 눈. 그 모든 눈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순환작용을 통해 계속 존재하고 돌기에, 이 눈은 대만에서 살해당했던 4만명, 오키나와의 20만명, 그리고 제주의 3만명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잇고 또한 시간을 이어 인선의 외조부 일가를 비롯해 몰살당한 1948년의 제주 사람들과 인선, 경하를 이어주는 고리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새'는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이를 제주 4.3 희생자들이라고 보는 이 책의 회원분들의 해석이 정말 옳은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두통과 위경련을 달고 살면서 편두통이 올 때마다 구토를 하고, 그나마 저녁에 먹는 죽으로 겨우 살아가는 약하디 약한 경하조차도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고 약한 새(4.3의 영혼들, 특히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 젖먹이 아기들), 하루만 물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어느 새 죽어버리는 연약함, 아무리 아파도 내색 한번 안 하다가 갑자기 횃대에서 툭 떨어지면 이미 늦은 거라는 모습(속솜허라는 말로 대변되는, 거대한 국가폭력 앞에서 타자화되어 있고 말하는 순간 배척당하고 죽을 수 있기에 한을 꾹꾹 눌러담고 살아가는 생존자들), 인선의 아버지처럼 두개의 눈으로 정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의 각각 다른 방향을 보며 동시에 두 방향, 두 세상(국가폭력이 휩쓸고 간 서슬 퍼런 세상과, 그를 겪어보지 못했기에 모르고 자란 인선의 세상)을 보는 모습까지, 이 책을 읽다 보니 제가 갖고 있던 정말 많은 의문들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궁금증이던 지극한 사랑은, 고통에 대한 공감을 통한 사랑이라는 해석(46p)이 있었는데, 이 또한 저는 이 해석을 통해 깨달은 것이 많았습니다.
인선이 입원해 있다는 봉합수술 전문병원 로비에 걸려 있는, 손발 마디가 하나씩 잘려나간 사진들을 경하는 처음에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끔찍한 장면은 잘 못 보기에, 경하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실에서 만난 인선의 봉합된 손가락은, 완전히 신경이 붙을 때까지 3분마다 신경을 찔러서 피를 내야 하는, 말하자면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인선의 어머니와도 연결이 됩니다. 인선의 외조부님, 그러니깐 정심의 부모님과 막내동생을 그 학살에서 잃어버리고, 그 눈덮인 채 쓰러진 시신들 속에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오빠, 결국 오빠와 같은 곳에 잡혀 있었다는 인선의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드디어 오빠를 주정공장 뒤편 고구마 창고에서 두어번 만났지만 어느날 갑자기 육지로 이송되었고, 이후에 6.25 전쟁이 그친 1954년에 대구형무소를 찾아갔지만 진주로 이감되었다는 기록만 있기에 다시 진주로 갔지만 이번엔 이감 기록도 없이 찾지 못한 오빠, 그리고 4.19 혁명 뒤인 1960년에 알게 된, 오빠가 대구형무소로 갔던 즈음에 보도연맹 사건 관련자들도 대구형무소로 왔고, 경산의 한 코발트 광산에서 집단처형되어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광산까지 찾아가서 오빠의 유골이라도 찾아보려는 인선의 어머니.
5.17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34년 뒤인 90년대 말에나 다시 결성된 유족회 활동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며 돌아가실 때까지 오빠의 행방, 유골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한 그 한과 지극한 사랑. 그것을 평생에 품고 살아가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인선의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인선은 가출도 해보고 발버둥도 치지만, 결국 인선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자신을 꽉 끌어안는 어머니를 더 세게 안으며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빠의 흔적을 쫓아 진주까지 갔던 것처럼 인선도 어머니가 남긴 기록과 유족회 자료, 기사들을 찾으며 어머니의 자취를 되짚어 가고, 그런 인선의 고통과 사랑은 새를 구해달라고 경하에게 부탁하면서 이어집니다.
물론 경하는 새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인선의 집에 갔을 때 한차례 보긴 했어도 딱히 사랑하는 새도 아니고,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못해 들어준 인선의 부탁을 따라 폭설을 뚫고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려서는 희미한 기억과 배터리 잔량도 10퍼센트 가량밖에 남지 않은 핸드폰에 의존해서 세천리 중산간 어딘가에 있는 인선의 목공방을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굴러 떨어지면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쓰러져 있는 중에, 그냥 이대로 잠들어 버릴까 하다가 살려야 할 새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다시 일어서서 길을 찾아 갑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목공방을 찾아갔건만 새는 이미 죽어 있었고, 경하는 자신도 굴러떨어진 충격으로 머리에서 피가 나는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 가장 좋은 상자와 천을 찾아서 새를 관에 넣듯 넣고, 목공방 옆의 나무 밑에 묻어줍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들어갑니다
- 새의 죽은 얼굴을 다시 감싸 여민다. 좀전처럼 손수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흰 무명실로 감고 재봉 가위로 자른다. 매듭을 짓다 잘 안보여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고서야 끈끈한 즙 같은 것이 새어나온 걸 안다. 덤불에 찔려 흐른 피와 섞인 그걸 패딩 코트 앞섶에 함부로 닦는다. 시고 끈적이는 눈물이 다시 솟아 상처에 엉긴다. 이해할 수 없다. 아미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 152p) -
이렇게 인선의 어머니, 인선, 경하 세 여자들로 이어지는 고통의 공감과 연대는, 고통은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사랑은 고통에 공감하고 나눠 지는 것이란 면에서, 이 세 여자들 뿐만 아니라 경하로 대표되는 4.3과 직접 연관이 없는 이 시대의 독자들까지 그 고통과 사랑으로 들어감으로서 4.3을 잊어버리지 않고, 작별하지 않고 계속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해석이 떠올랐는데, 앞으로 몇 차례 책을 더 읽어보면서 더 많은 숨겨진 해석들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열두개의 시선을 읽으면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처음 읽으면서 가졌던 눈과 새, 그리고 지극한 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한 것, 그리고 이탤릭체가 심방(무당)의 공수처럼 전언되는 증언이라는 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을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읽어보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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