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소년이 온다 - 한강
아이셰도우

Lv.1 아이셰도우 (180.♡.185.178)

2025년 5월 24일 PM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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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후 처음으로 돌아온 5.18을 맞이해서 읽어봤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에서 잠시 물러났던 5월 21일 이후로 광주에서는 '해방광주'라는, 광주 시민들의 자치 기간이 열렸습니다. 소설은 그 시기 상무대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해방광주라 불리는 광주 시민들의 자치공동체 속에서 시민들은 수준 높은 민주의식과 참여 정신을 보였습니다. 질서의식을 발휘하며 치안을 유지했고, 자발적으로 거리를 치우고 시신들을 수습하며 밥과 피를 나누면서 고통을 분담하는 협동정신을 발휘하며 시민 모두가 공동운명체로 묶이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 짧은 해방광주 공동체의 시간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광주 시내로 다시 진입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그 전날부터 계엄군이 들어온다는 얘기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죽기를 각오한 소수의 시민군만 도청과 상무관 등에 남아서 결국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 날 이후 살아남은 광주 시민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는 고통과 더불어, 거리로 나와 달라는 여성들의 처절한 호소 방송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문을 굳게 잠그고 나가지 않았던 그날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 자괴감을 갖게 되며, 이는 부채의식과 책임감으로 이어져 그들에게 지워질 수 없는 상흔과 고통을 남깁니다.


'소년이 온다'는 이러한 사람들, 즉, 압도적인 국가 폭력의 반대편에 서서 해방광주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님이 광주에 살던 옛 집에 살았던 동호(실존인물 문재학군)를 중심으로, 동호네의 사랑채에서 셋방살이를 했던 동호의 친구 정대, 동호와 한 조가 되어 상무관에서 시신 수습을 맡았던 은숙과 선주, 시민군으로서 각종 물품 조달을 담당했던 진수,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까지 6명에 작가님까지 총 7개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친구인 정대를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자괴감, 그리고 '세상에, 너는 머스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 라는 정미 누나의 말이 새삼 기억나며 더해지는 죄책감 때문에 엄마의 손을 끝끝내 뿌리치고, 같이 가자는 선주 누나의 손을 피해 계단 위로 도망가서 진수와 함께 최후까지 남은 동호.

억지로라도 동호를 데려왔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시 언제라도 계엄군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동호를 도청에 남겨두고 온 동호의 어머니.

26일 밤에 도청을 나오기 전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총을 메고 있는 동호를 보는 순간 영혼이 부서진 은숙

5.18 이전에 동일방직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건에 연루되어 해고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광주로 흘러들어왔다가 5.18을 경험했고, 최후까지 남아서 시민들에게 도청으로 나와 달라는, 불이라도 켜달라는 방송을 하다가 잡혔고, 카빈 소총을 갖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성고문까지 당하며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나버린, 그래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다가 죽기 위해 다시 찾아간 광주 금남로의 가톨릭센터 외벽에 붙어 있던 동호의 시신 사진을 본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피를 펄펄 끓게 해 되살게 된 선주

이들은 5월 27일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부채의식과 죄책감, 부끄러움, 자괴감, 그리고 마치 방사선 물질에 노출된 것처럼 지속적으로 삶이 파괴되는 고통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2장과 4장의 남자들, 정대와 진수는 인간이 한낱 악취와 썩은 내 나는 시체 고깃덩어리로, 그리고 배고픔과 온갖 고문, 학대에 시달리면서 분비물과 상처, 고름과 진물 등으로 범벅이 되어 동물과 다름이 없게 된 모습을 통해 수치와 혐오를 느끼고, 이를 통해 인간 존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는 모습을 대변합니다.

'그러니깐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당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소년이 온다 134p)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고통스럽다고, 책을 계속 이어 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이야기했던 의문,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이 아닐까?' 처럼, 그렇게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동호가, 동호의 어머니가, 은숙과 선주가 그랬던 것처럼, 각자가 각각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사랑으로 이어진 고통의 연대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죄책감과 부끄러움, 고통을 조국 전 대표님 일가 사건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물론 광주 분들의 그것에 비할 바는 절대 아니지만, 대표님 일가친척들과 지인들 집안이 도륙나는 걸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패배감, 죄의식, 부끄러움, 그런 어둡고 무거운 감정들이 대표님과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 부채의식으로 남았고, 마찬가지로 이재명 후보님의 서사에서도 그런 감정은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44년만에 다시 터진 내란을 종식시키고,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5.18에 대한 단죄를 비롯한 남아 있는 상처와 아픔들도 치유되는 그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합니다.



- 뱀발로, '소년이 온다'에서 제가 제일 많이 안타깝게 생각했던 인물은 정대의 누나 정미였습니다. 소설 시작 전에 이미 실종되어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정미누나를 찾아 동호와 정대가 길거리를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는 정미는, 의외로 5장 선주의 이야기에서, 동일방직을 모티브로 한 방직공장에서 5.18이 일어나기 3년 전에 선주와 같이 일했던 걸로 나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으면서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온 정미는, 동생 학비를 보내야 하고, 자기도 공부해서 언젠가는 의사가 되고 싶기 때문에 해고되면 안된다며 선주의 노조 가입 권유를 거절합니다. 그 후에 언니들이 동일방직 사건을 연상시키는 탈의 시위를 하다 모두 잡혀가자 혼자 남아서 왜인지도 모르는 눈물을 서럽게 흘리며 언니들의 신발을 모두 모아 아무도 없는 노조 사무실에 모아두죠.

그러다 후에 노조 일을 잠깐 돕지만, 언니들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고생하는 걸 보고는 해고되기 전에 사표를 내고 광주로 가서 동호네 집에서 정대와 함께 셋방살이를 하게 됩니다. 광주에 와서도 코피가 자주 나는 연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동호를 학교에 보내고, 자신도 언젠가는 공부해서 의사가 되려는 꿈을 남몰래 갖고 야학에도 다니죠.

그런 정미는 동호의 기억 속에서 짝사랑의 대상으로, 정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무섭지만 가장 그립고 많은 추억을 가진 누나로, 동호 어머니에게는 우리 집에 들어와서 빨래 바구니를 보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운동화하고 칫솔을 들고 마당을 왔다 갔다 하던 그 고운 처녀로 기억됩니다. 

이런 정미는 소설 속에서 죽은 동호나 정대와는 다르게 생사여부도 확실하게 확인이 되지 않고, 다만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도 없고 불도 켜지지 않는 사랑채 방의 모습을 통해 죽었을 거란 추측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호가 있던 상무관에 정미와 비슷한 체격의 여자 시신이 있었지만, 얼굴이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서 알아볼 수 없는 탓에 동호도 정미 누나인지 아닌지 확신을 못 합니다. 

제가 안타깝게 느꼈던 부분은, 정미가 언니들의 신발을 모으면서 서럽게 울었다는 부분에서, 그리고 연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일하면서 동생을 인문계 학교로 보내려고 했다는 장면에서 그녀 나름의 언니들과 동생을 향한 사랑의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또한 악착같이 살아보고자 동생과 함께 셋방살이를 하던 그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의 모습, 자신도 언젠가는 의사가 되고 싶다던 꿈이 결국 허망하게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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