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우무아 (203.♡.220.25)
2025년 8월 12일 PM 05:29
하루키의『1Q84』를 읽었습니다. 후기를 쓴 지는 꽤 되었네요. 1984년 도쿄를 배경으로, 피트니스 강사이자 비밀 암살자인 아오마메와 수학 교사이자 소설가 덴고의 평행 세계 이야기입니다. 아오마메는 어느 날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내려간 후, 자신이 알던 세계와 미묘하게 다른 ‘1Q84’라는 세계에 들어섭니다. 덴고는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의 대필 작업에 참여하면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입니다. 두 사람은 과거 초등학교 시절 깊은 인연이 있었으며, 각자 위험한 음모와 종교 집단 ‘리틀 피플’의 비밀 속에서 서로를 찾아 나섭니다.
"이봐 덴고. 재능과 감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알아?"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도 반드시 배부르게 살 수 있는건 아니야. 하지만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 굶어죽을 걱정은 없다는거야"
-1Q84 p.144-
하루키의 소설 초반에 나오는 덴고와 고마쓰간의 대화입니다. 덴고는 재능 있는 작가지망생이고 고마쓰는 감각이 넘치는 출판사 편집자입니다. 또 한 명의 재능자 후카리에, 초반이어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 아오마메. 1Q84의 등장인물은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풍깁니다. 작가 한 사람이 만들어 냈다고 하기엔 인물의 사고와 행동이 생생하고 독립적입니다.
이십대 초반이었나. 어느 번화한 거리의 서점에서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습니다. 제가 서점 카운터 위에 그 책을 올려놓지 않은 까닭은 그의 소설이 매력적이지 않았다기 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이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대체로 세련되고 재미있고 가독성도 좋습니다. 제목과 소설의 설정도 독특합니다. 작가 자신을 내면화시킨듯한 인물들의 나르시즘적인 화법이나 독백도 끌립니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일은 버겁습니다. 사실 그의 소설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소설들이 있죠. 몇번이나 완독을 실패했던 '백년동안의 고독처럼'. 어쩌면 '백년동안의 고독'은 죽을때까지도 읽지 못할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인물의 심리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드러냅니다.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뜨는 것처럼. 툭툭 내뱉듯이. 소설도 그런식으로 쿨하게. 그렇다고 유쾌한것도 아닙니다. 밋밋하죠. 분명한건 그런 밋밋하면서도 쿨한 분위기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하루키의 소설들은 서구화된 일본 사회의 전형입니다. 개인이라는 부분에서 국가나 사회라는 전체를 보는것처럼. 그의 소설에서 전통적 요괴나 정령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광적인 로망에 기대는 서구(유럽)적인 문체와 표현들. 유럽의 한 골목의 레코드 가게에 있는것 같은 말랑말랑한 음악적 취향이죠. 스시나 사케보다는 화덕에 구운 피자와 보르도산 와인이 더 어울리는 문장들. 특정한 장소와 지명, 그리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외하면 하루키의 소설에서 일본적인 색채는 오히려 흐릿합니다. 그가 내놓는 작품마다 세계적으로 읽히고 매년 한림원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겠지만.
고마쓰의 확신처럼 '재능'과 '감'을 선택 할 수 있다면 난 재능을 택할 것입니다. 조금 굶주리더라도. 뭐, 이따금씩 스스로나 타인들에 의해서 잡쳐지는 감정이나 물적 욕망. 그딴것들의 결핍엔 익숙하니까요. 야구 관람이 아니라 매일밤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문득 소설이나 써봐야 겠다고 했던 서른살의 저에겐 말이죠. 요즘에 찾아오는 하얀밤들은 불면이라기 보다는 하루에 자야하는 잠의 총량이 넘어섰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예전처럼 다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지. 밤이건 낮이건간에. 그건 그렇고 이번엔 잘하면 하루키의 소설 한편은 끝까지 완독 할 수 있을것 같네요.
7~9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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