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나의 80년대 (2)
페이지 정보
본문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관내에서 나름 이름깨나 있다는 사립학교였다. 직장생활 하시는 어머니께서, 그래도 나름 신경써서 자식 교육 시키시겠다는 생각으로 넣으신 곳이다. 부잣집 친구들이 유난히 많았던 국민학교 생활에서, 우리집은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좀 쪼들려 보였다.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 알고보니 여러모로 비리가 많은 사학재단이었다. 시끄러운 문제로 뉴스도 많이 탔는데, 이미 미국 나와서 외노자 생활을 하던 시절이라, 그 이야기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다. 아무튼, 그런 학교였으니, 새 정권이 들어선 만큼 새로운 마음으로 정권 입맛에 맞는 교육을 알차게도 해 주셨음은 당연한 일이었겠다.
어릴적에는 국민교육헌장만 외우면 되었는데, 뭔가 더 외워야 할 것들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교육헌장의 위엄을 넘어서는 것은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 벽면을 빼곡히 채우는 반공 포스터, 도덕 포스터, 사회 포스터 등등이 늘어났다. 그곳에서는 '상기하자 6.25' 같은 틀에박힌 것들도 있었고, 아직도 북한보다 얼마나 우리가 쪼달리는 비행기와 탱크 대수를 갖고 있는지 등을 비교하는 도표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리는 북녘 동포들, 불쌍한 북한 친구들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경제 개발 5개 년 계획은 우리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들었나 등등을 소개했다.
급기야는 어린 마음에, '이렇게 좋은 경제개발 5개 년 계획을 꾸준하게 해 왔는데, 전두환 대통령은 7년 하고 그만둔다 하니, 그러면 경제개발 5개 년 계획같은 좋은 일은 앞으로 못하겠네...' 라는 생각을 할 지경이었다.
나는 왜 그런 것들을 꼼꼼히 읽을 생각을 했을까? 다른 친구들은 복도를 우다다다 뛰어다니다가 선생님께 걸려 얻어맞는 와중에 나는 그 포스터들을 들여다보곤 했다. 나는 역시 주입식 교육으로 다져진 체제 순응적인 선량한 민주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런 선량한 민주 시민도 조금 많이 흔들렸던 사건은, 80년도 방송 통폐합 사건이다.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 환영받던 채널은 TBC 였다. 유난히 만화를 많이 틀어준 방송국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TBC 가 곧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 그러면 잘 보고 있던 만화는 어찌 되는건가? 게다가, 이후에는 그 채널이 KBS 가 된단다. 뭐?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제일 따분하고 재미없는 채널이었던 KBS 가 채널을 두 개 한다고?
TBC 가 종영하는 마지막날은 유난히 뭔가 재미있는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다들 빠이빠이 안녕 기억해줘 그런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섭섭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 시작된 KBS 2 채널은 다행히 옛날 KBS 같이 노잼 방송만 틀어주는 따분한 곳이 아니란 것이 드러나면서, 우리 어린이들은 안도하게 되었다.
junja91님의 댓글
비치지않는거울님의 댓글의 댓글
저도 읍니다 세대이고 ... 파이브 독 이어(얼)에서 빵 터졌습니다.
BonJovi님의 댓글
태정태세와 더불어 머릿속을 지배하는 괴물같은 기억이네요.
소금쥬스님의 댓글
오후 5시에 싸이렌 울리면 길 가다 멈춰 서서 가슴에 손 올리고 했었던거...
loveMom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