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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나의 80년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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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unja91 192.♡.96.218
작성일 2024.05.14 01:53
207 조회
7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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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글 쓰면 될 일이지, 왜 짧게 여러 도막으로 쓰는고 묻는 분이 계시다면, 제가 바쁘기도 하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해서… ㅎㅎㅎ

***

7~80년대를 살았던 세대는 아마도 "물자 절약" 이라는 것을 참 여러 모습으로 강제 당하고 살았다. 요즘은 환경보호 차원에서 물자를 아껴 쓰자는 쪽이었겠는데, 그 당시는 '경제가 어렵다' 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오일쇼크라는 미증유의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한 선진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몰려오던 때였으니, 이해를 해 줄만도 할 것 같긴 한데, 이상한 부분으로 절약을 강조하다보니, 우스운 일들도 많이 있었다. 몽당연필을 심지 끝까지 써야 한다고 하면서, 짧아진 연필을 모나미 153 볼펜 껍데기에 끼워서 쓰는 방법을 제시했다. 생각은 좋았겠지만, 모나미 153 볼펜 다 쓴 것을 국민학생이 갖고 있을 리 만무하며, 혹여나 언니 오빠가 쓰던 모나미 볼펜이 있다 한들, 그 당시는 볼펜 심지만 팔기도 할 만큼 열심히들 아끼던 시절이다. 아무튼, 다 쓴 볼펜으로 연필 깍지를 만들어서 몽당연필을 쓴다는 것은, 취지는 동의하나, 실행은 쉽지 않았다. 문제는 선생님들이 그걸 지적하고 다닌다는 것이겠지.

우리 선배 세대들은 혼식 장려의 일환으로, 보리나 콩 등 잡곡이 섞인 밥을 도시락으로 싸 왔는지를 검사하던 적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혼/분식은 언제나 권장했고, 가끔 드문드문 도시락 검사를 들어오는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 당시 유행어는 "불경기" 였다. 하지만, 아직도 잘 이해는 안 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80년대는 그 유명한 '3저 호황'의 시기였다 하는데, 도대체 누구 경기가 불경기였을까?

학교에서 성금도 참 뻔질나게 걷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 폐휴지 걷기, 크리스마스 씰... 이런저런 성금의 정점이었던 "평화의 댐" 성금. 테레비에서는 63빌딩이 찰랑찰랑 잠기는 모형을 보여주면서 위기의식과 경각심을 부추겼고, 북한의 금강산 댐 수공에 맞서는 대응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80년대 중반 학생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웠던 금액 일천 원을 요구했다. 그 돈은 다 어디 갔을까?

부동산도 들썩였다. 반 친구들 중 이사를 일 년에 한 번씩 다니는 집도 심심치 않을 지경으로 부동산 급등이 심각했다. 그것을 소재로 한 테레비 드라마도 종종 보였다. 그러면서 이 꼬마에게도 들렸던 소위 "이철희 장영자 사건", 어린 귀에도 똑똑하게 박히는 이채로운 별명 "빨간바지" 장영자. 누구는 빨간바지가 이순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튼, 그 빨간바지는 부동산 급등의 아이콘이었다.

격동의 시기였고, 시계 제로의 다이나믹 코리아였다.

댓글 16

동짓달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동짓달 (121.♡.150.229)
작성일 05.14 02:03
백만인 걷기운동도 있었는데 그것도 돈을 내고 참가해야했고 반마다 할당량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인원채운다고 애먹으셨던 기억이있네요. 저는 숙제안해왔다고ㅜ 강제로 차출된 기억이 ㅠ  그 참가비들도 다 꿀꺽한걸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junja9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junja91 (192.♡.96.218)
작성일 05.14 02:06
@동짓달님에게 답글 아,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백만인 걷기운동" 오우 저, 그거 직접 가서 걸었습니다.

동짓달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동짓달 (121.♡.150.229)
작성일 05.14 02:07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폭파사건때  전두환이  간발의 차로 참사를 면했다는 뉴스를 듣고  참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했던 1인 ㅠ .그때는 몰랐어요 . 전두환이 그런 놈인지ㅠ

junja9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junja91 (192.♡.96.218)
작성일 05.14 02:25
@동짓달님에게 답글 그렇죠. 저도 그 당시에는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나쁜 놈이 천수를 누리다가 가게 하시나요?"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loveMom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loveMom (211.♡.180.241)
작성일 05.14 02:19
지금 무슨 일 하세요?
어쩜 세세하게 다 기억하죠???

junja9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junja91 (192.♡.96.218)
작성일 05.14 02:26
@loveMom님에게 답글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깨작깨작 합니다. 요즘은 오히려 기억력이 떨어져서 걱정...

loveMom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loveMom (211.♡.180.241)
작성일 05.14 02:29
@junja91님에게 답글 이게 떨어진 기억력이면...
솔직히 말해봐여~
학창시절 전설로 듣던 사전 통채로 외운다는 그분이져???

junja9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junja91 (192.♡.96.218)
작성일 05.14 02:58
@loveMom님에게 답글 전혀요. 쓸모없는 것들만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필요한 내용은 다 흘리고 다닙니다.

junja91님의 댓글

작성자 junja91 (192.♡.96.218)
작성일 05.14 02:57
한 가지 덧붙이면, 당시 정부의 자원 절약 지침이 얼마나 짜쳤는지, 국민학교 졸업 사진첩을 칼라 인쇄를 금지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학년 국민학교 졸업 사진은 무려 흑백!

loveMom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loveMom (211.♡.180.241)
작성일 05.14 03:01
@junja91님에게 답글 국민학교 흑백 졸업사진이 이 이유였어요??

junja9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junja91 (192.♡.96.218)
작성일 05.14 03:18
@loveMom님에게 답글 비싸서 못 하는 학교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제가 다니던 나름 이름값 하던 사립학교조차도 칼라 인쇄를 못 했습니다.

loveMom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loveMom (211.♡.180.241)
작성일 05.14 04:24
@junja91님에게 답글 전 국딩 졸업때 칼라 졸업 앨범 가진걸 보질 못해서 그땐 그랬나보다 했었네요

소금쥬스님의 댓글

작성자 소금쥬스 (118.♡.226.139)
작성일 05.14 04:59
81년이었나?잘 기억은 안나지만 평화의 댐  만드다면서
500원식 강제로 걷었다는건 기억나네요..
79년 국민학교 6학년이었는데
수학여행도 못가고 졸업 앨범도 없었습니다...

Java님의 댓글

작성자 Java (116.♡.66.77)
작성일 05.14 11:12
별일이 다 있었네요.
저희는 졸업 앨범을 만들지 않았네요.
딱히 이유를 말한 것 같지 않은데요(제가 기억 못하는 것일수도)
단체 사진 한장 찍고 말았다는.
그게 절약 강조 때문인 것 같네요

샤갈의눈내리는마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샤갈의눈내리는마을 (114.♡.182.211)
작성일 05.14 11:33
도막으로 계속 연재해 주세요.
읽기 편합니다. ^^)b

도미에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도미에 (220.♡.183.100)
작성일 05.14 16:21
참 재미지집니다~~~
주2회 정기구독 갑시다~~
주2회 연재 읽는 재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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