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나의 생각을 바꿔준 무거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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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onJovi입니다. 이번 주의 주제가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 쉽게 글을 적기가 어렵습니다만, 제가 처음으로 5.18을 마주한 때와 이후의 시절을 어르시느앙님들께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비슷한 경험을 적어주셨던 핑크연합 어르시느앙님도 계셨지만, 첫 기억은 아마 직선제로 치른 대통령 선거였던 13대 대통령 선거 유세의 혼란 속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정확한 사리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정치에 대해 판단하고 평론할 수 있는 어떠한 식견이 있었던 때는 아니었고, 기계적으로 학습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따라오는 투표와 같은 부수적인 절차들에 대한 가벼운 이해 정도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던 곳의 권력 구조가 조금 특이했던지라 뭔가 뒤틀려 있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행정구역의 장인 군수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자로 보였던 사단장 2명과 기무대를 총괄하던 대장(계급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중령(?)이었던 것 같습니다.)에 비하면 임명직 군수 따위는 어린 제게도 아마 허수아비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왔었나봅니다. 동네 상황이 이러했기에 가장 무서웠던것은 '불온한 생각을 가진 자'에 대한 배척과 외면이었고, 조금이라도 왼쪽의 기미가 보이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에 대한 겁박이 서슬 퍼랬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군인들의 서슬이 퍼렇게 빛나던 시골에도 87년 6.29의 여파는 아주 크게 다가왔습니다.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할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하지만 국민들이 가지지 못했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사람들에게 많은 선택의 길이 다가오게 되었지요. 13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후보자 포스터들이 거리에 걸릴 무렵 어느 토요일 같습니다. 정오가 지난 시간에 집으로 가고 있었으니 토요일이 맞겠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당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사거리에서 연단을 세우고 기호 1번에 대한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 장소가 있었어요. 동네 특성 상 기호 1번의 지지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라는 키워드에 열광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유행처럼 들리던 말이 '보통사람'이라는 말이었는데, 노태우의 선거 슬로건이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였으니 아마 자주 들렸던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선거운동의 도가니를 살짝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꽤나 한적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한적한 길의 중간 즈음에 평소에 보이지 않던 뭔가 이젤같은 것이 놓여져 있는게 보였습니다. 보고 있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가끔 있었던 학교나 단체에서의 전시회를 생각할 정도의 규모로 놓여있는 것을 보며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고 옆으로 지나치려 했었어요. 하지만, 근처로 발걸음을 옮기던 제게 이젤에 걸려있는 꽤 큰 크기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는데, 가까이 가서 보는 순간 머리가 쭈뼛하게 서면서 얼어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흑백사진들이 5월의 참상을 여과없이 그대로 찍은 사진이더군요. 사진을 보는 순간 뭔가 이 상황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려고 하는 이성에 가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너무나 무섭고, 소름끼치게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 속의 장면들을 본 충격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오한이 나고 토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아요. 동네에 다른 아이들에게 그 이젤들이 강제로 치워졌다는, 그리고 그 이젤의 사진을 전시했었던 사람들이 맞으면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진을 본 충격이 너무 크고 강했기에 친구들과 그 주제로는 이야기에 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 두 살 터울인 형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형님도 역시 사진을 보고 온 뒤로 계속 생각이 난다고 하시며 제게는 다시 그 쪽으로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셨기에, 학교를 오갈 때에도 그 길을 피해서 항상 한 블럭 정도를 돌아서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형님이나 저나 그 즈음에 의식적으로 둘 다 사실과 거짓의 사이에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그 사진들을 본 순간 이 후 일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본 사진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혼란스러웠거든요. 사실이라고 하면 세상이 내게 거짓을 말한 것이고, 거짓이라면 그들은 내게 왜 거짓으로라도 그런 무섭고 끔직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인지...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평화롭다고 앵무새처럼 떠드는 뉴스와 신문과는 달리 어떤 특정한 존재의 부정한 부분들은 숨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지요.
머리가 굵어지면서, 내 스스로가 뭔가를 찾아낸다고 해서 바뀌거나 변하는 것은 없겠지만 진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다면 반드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일종의 믿음 같은게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아가면서 변했으니까요. 그래서였는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이 시기에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책을 교환해서 보고, 이런 저런 토론을 하면서 지식을 확장해갔고, 먼저 대학에 진학한 형님이 가져오는 책들과 전해주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통해서 광주의 그 날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기억이 있음에도 반사적으로 처음에는 저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째서 같은 나라에서? 더군다나 국민을, 국가를 지킬 의무가 있는 군인이 국민을 억압하고 총부리를 겨눌 수 있을까?'라는 물음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삿된 권력욕 때문에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는 것과, 이러한 욕심 때문에 희생되는 보통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모두의 합의로 만들어가는 '이상적인 세상'은 눈가림에 불과했구나 하는 자각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좌익세력'이라던지, '용공분자'라던지 하는 명칭을 달고 죄인처럼 비춰지던 앞 세대 형님, 누님들의 생각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 무섭고 잔인하던 5월, 총칼 앞에 서서 당당했던 분들이 그랬던 것 처럼, 시대의 공인된 폭력 앞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입 닫고 살 수 없었기에 맨 손으로, 또는 돌맹이나 화염병으로 그들과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함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면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그 묘비 하나하나가 모두 채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생명이라는게 너무 슬퍼서 망연하게 서서 한참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이렇게 큰 슬픔을 어떤 위로로 보듬을 수 있을까... 막막함에 또 울고 울고 울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 따위는 너무나도 미숙하고 어린 생각이라는 생각과 이렇게 남겨져있는 슬픔에 위로조차 되지 않으리라는 절망 비슷한 감정 속에서 마냥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었던 덕분에 저는 광주를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막막함이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또 얼마나 막막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두렵기도 합니다.
단순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불의'를 행하는 쪽에서 흘리는 피와 희생에 비하면 '정의'로 대변되는 보통 사람들이 흘리는 피와 희생이 과다하게 많다는 생각을 언제나 해왔습니다. '정의'가 언제나 우려하는 '권력이나 힘의 남용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사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의'는 항상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고 있고, '정의'는 언제나 최대한의 희생을 담보하지만 최소한의 이익만을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줄 정도 밖에 안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점이 사람들을 점점 세속적으로, 또는 불의 따위를 감수할 정도로 타락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합리적인 견해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거대한 물결'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룰 밖에 서있는 '불의'한 자들에게는 룰 밖에만 맛볼 수 있는 피 맛을 보게 해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만명의 타인이 흘린 피가 강이 되어도 근본적으로 눈 하나 깜짝 안 할 자들이겠지만, 아주 세게 귀때끼 한 방 처 맞고 흘리는 제 코피에는 기절할 것처럼 반응할게 뻔하기에, 그렇게 졸렬하고 비겁하고 이기적인 족속들이 이런 혼란의 원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불의'가 부지런한만큼 '정의'도 부지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의'가 뭔가를 행하기 전 '정의'를 두려워 할 줄 아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주제가 시작되는 날 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내용도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네요. 글의 두서 없음은 어르시느앙님들께서 너른 맘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하루 마무리 하시고, 즐거운 휴일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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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Jovi님의 댓글의 댓글
정의가 불의보다 조금만 더 부지런해진다면 반드시 불의를 짓이겨 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동짓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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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에님의 댓글
글 쓰는 일 말고 다른 일 하시나요?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으셔도 될 거 같아요~
BonJovi님의 댓글의 댓글
그래서 엔지니어로 살고 있습니다.~
릴렉스님의 댓글
BonJovi님의 댓글의 댓글
분노를 에너지로 더 부지런한 정의로 거듭나야겠지요.
맑은생각님의 댓글
최루탄의 아주 고약하게 맵고 눈물, 콧물 쏙 빼는 그 냄새를 맡을 때 마다 왜 저럴까 생각했던 적이 많았죠.
그리고 학교에서도 TV에서도 신문에서도 왜 데모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과격한 대학생들이 사회에 불만을 갖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그 때 왜 대학생 형들이, 넥타이맨 아저씨들이 그렇게 모여서 외쳤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자 노력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