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나의 80년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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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공수부대가 사람들을 죽였대…"
중딩 시절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쑥 나온 무거운 주제. 선량한 민주 시민이었던 나에게는 도시괴담과도 같은 이 소리, 아니, 어쩌면 테레비에서 나오던 빨갱이 사주를 받은 데모 선동꾼들에게서 나올 만한 소리가 나온 것이었다. 과묵한 나는 더욱 말을 아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저 친구를 꺾을 마음은 없었고, 그냥 무시하면 되었으니까…
80년 5월은 그렇게 우연히도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소리에 더 정신 팔 여유는 없었고, 앞으로 다가올 고등학교 생활과, 고된 공부를 생각하며 그냥 잊고 지나갔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이었다. 집으로 날아 들어온 한 장의 전단지. 검붉은 피색과 살색으로 물들은 전단지는 무슨 무슨 애국 단체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런 타이틀이었다. "더 이상 냄새나는 익사 사고 시체로 사람을 현혹시키지 말라!"
그 당시,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으로 연일 데모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모 애국 단체는, 익사 사고 시체 사진 여러 장을 보여주면서, 박종철 열사는 물고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저 물에 빠져 죽은 익사체라는 주장이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거짓 주장에 흉칙한 익사 변사체 사진들을 나열해 놓은 것이었다. 두려움 반, 흥미 반으로 그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달랐다.
'개XX들…'
평소에 일절 욕 하시는 법이 없던 양반이셨다…
1987년 즈음, 어느 여성 주간지에 "노태우의 시대가 오는가?" 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는 이모님의 말씀에 나즈막히 한 마디 덧붙이셨다.
'아니, 노태우가 왕이야? 노태우의 시대 같은 소리하네…'
아버지께서 정치 이야기에 말씀 보태신 경우는 이 때가 유일한 것 같다.
지금 아버지는 보수주의가 되셨다. 세월이, 가족이, 아니면 무엇이 그렇게 만드셨는지 모르겠다. 그냥 주변 노인네들이 다 그러니, 그런 척 하신 건지도…
BonJovi님의 댓글
인간 이하의 저열한 짓을 서슴치 않는 이들을 움직이는 배후가 정말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