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민주항쟁] 도시락 투쟁
여름숲1

Lv.1 여름숲1 (211.♡.231.115)

2024년 6월 5일 AM 11:50 · 수정됨(22:39)

조회 299 공감 0

6월 민주항쟁과 자유주제의 주간이네요.

거창하게 민주항쟁까지 갈건 없지만 그래도 비스드름한 주제의 희극을 하나 써볼까 싶네요.

아마도 6월이었을거예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3월에는 개나리투쟁이라고 등투(등록금 투쟁)를 했고

4월에는 4.19기념 묵념으로 시작하는 민주화를 계승하는 투쟁이었고

5월은 5월광주를 떠올리며

6월은 언제나와 같이 6.10민주항쟁..

그렇게 우리학교는 상시 투쟁중이었고 

우리학교는 **총련의 개라는 별명답게 개같이 악랄한 투쟁으로 경찰들이 이를 갈았던 학교였어요.


그러다보니 뭐 대단한 이념이 있어서도 아니고 과학생회장 선배나 안면있는 단과대 집행부 선배가 가자가자 하면 그냥저냥 노천마당에 나가 집회 머릿수나 채워주는 그런 존재감 없는 새내기였던 아니 2학년쯤이었을까요.. 가물가물

그날은 제법 큰 집회가 있어 오후 수업도 휴강이었고 어중이떠중이 죄다 집회로 몰려가는 분위기.

오전 수업이 늦게 끝나 점심먹을 타이밍을 놓친 저는 어서 집회에 나가자고 재촉하는 동기 선배들을 뒤로하고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펴들었습니다.


당시 몇푼하지 않았던 학생식당 밥을 먹는돈도 아깝게 여겨서 도시락을 싸서 다녔거든요.

어차피 집에서 받을 한달의 용돈은 정해져있고 도시락을 싸서 다니면 그돈이 굳어 소주한ㅂ...아니 책을 한권 더 사 볼 수 있잖아요?

엄마가 아침밥을 푸며 도시락 밥을 퍼주시고 반찬은 그냥 제가 아침상에서 적당히 랩에 주워 담아 다니길 몇개월이었어요.

그 도시락을 까먹으면서도 귀는 집회쪽으로 쫑끗.. 쫑끗

그런데 어느 순간 큰 함성을 시작으로 행진을 의미하는 음악이 흐르는 겁니다.

어 나가나?

가투 나가나?

어? 밥 먹어야 하는데 이거 안먹으면 쉬는데..

꿋꿋하게 도시락을 해치우고 부랴부랴 집회장소에 가니 이미 행진의 꽁무니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가버렸더군요. 사실 그쪽으로 나가면 행진하는 방향은 정해져 있어서 제 투쟁의 의지가 불타올랐다면 아마도 따라갔겠지만 

저는 그저 그런 회색분자 

오후도 휴강이겠다 집회 안나간 동기들 불러모아 닭도리탕에 소주잔을 기울였죠..


그리고 다음날 아침 등교길

집회인원 전원을 연행한 경찰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정문 근처에 붙어있었습니다.

기나긴 연행학우들의 소속과 이름이 적힌 명단까지… 삼백여명으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우리구가 속한 경찰서에서 수용 불가하니 서울시내 전체 경찰서에 골고~~~~루 뿌려져서 하룻밤을 지세웠다고 

오후쯤 풀려난 이들의 난무하는 영웅담들

우리는 유치장에서 다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며 불법연행 규탄집회를 했다고… 

마포서는 치사하게 밥도 안시켜줬다고

양천서는 처음 겪는 집회 연행 학생들에게 아주 친절한 대우를 해줬다고


뭐 그러그러한 영웅담 끝에는 도시락 먹다가 안달려간 여름숲 니놈이 위너라는 결론이 나왔다는….


점심시간 전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기 싫어 끄적거려본 6.10항쟁과 연관의 끄나풀이 아주 조금 있는 듯 한 얘기였습니다..


끄읏!!



댓글 (25)

  • 샤갈의눈내리는마을 Lv.1

    24.06.05 · 114.♡.182.211

    글 잘 쓰시는 어르시앙님 많아 햄볶아요{emo:damoang-emo-006.gif:50}
  • 여름숲

    여름숲 Lv.1 → 샤갈의눈내리는마을 작성자

    24.06.05 · 211.♡.21.218

    당주님이 칭찬해주셔서 많이 햄뽂아요~~~ ㅋ{emo:damoang-emo-004.gif:70}
  • L

    loveMom Lv.1

    24.06.05 · 211.♡.202.77

  • 샤갈의눈내리는마을 Lv.1 → loveMom

    24.06.05 · 114.♡.182.211

    [https://damoang.net/data/editor/2406/comment_1914615507_pquTYUAy_842cac8668a7211a721d40df0ff9e02f000e0bd1.gif]
  • 여름숲

    여름숲 Lv.1 → loveMom 작성자

    24.06.05 · 211.♡.21.218

    힘든 기억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또한 그걸 글로 풀어내려면 더욱 힘들죠. {emo:onion-039.gif:50}
  • Java

    Java Lv.1

    24.06.05 · 116.♡.66.77

    뭐든 밥은 먹고 해야죠~
    밥심으로 하는건데 말이죠~ ^^
  • 여름숲

    여름숲 Lv.1 → Java 작성자

    24.06.05 · 211.♡.21.218

    그러게요. 밥심으로 연행도 피하고요 ㅎㅎㅎ{emo:onion-021.gif:50}
  • 란초

    란초 Lv.1

    24.06.05 · 219.♡.88.128

    가투란 말도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연행된 선배 동기들도 대단하시고, 그날의 기억을 생생히 하고 계시는
    여름숲1님도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이 사회인데 ㅠㅠ
    최류탄, 백골단 지금은 안보이는듯 하지만...
    세월이 한참흐르고 나면 다들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들 하고 있을까요
  • 여름숲

    여름숲 Lv.1 → 란초 작성자

    24.06.05 · 211.♡.21.218

    워낙 인상깊었던 날이었거든요.
    그날 도시락을 까먹었던 장소와 무드까지 정확하게 기억해요 ㅎㅎ
    무식하게 한 대학교 학생 수백명을 한꺼번에 연행할 생각을 한 경찰들은 대체 뭔가 싶어요.
    MB시절 나락인가 싶었더니 박근혜가 들어오고
    이제 정말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녀석이 나라 앞길을 막다못해 다 때려부쉬고 있고..
    정말 어찌 기억하고 기록될지 궁금합니다.
  • 무명

    무명 Lv.1

    24.06.05 · 175.♡.223.49

    {emo:onion-042.gif:50} {emo:onion-035.gif:50}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른 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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