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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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지 않으니 차츰 엷어졌고,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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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223.♡.36.207
작성일 2024.09.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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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려 했을까, 잊어버리려 했을까.

의식하지 않으니 차츰 엷어졌고, 잊혀졌다.

굳이 떠올리지 않으면, 굳이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잊혀졌다는 사실 자체도 깨닫지 못했다.

이미 기억나지 않은, 아주 지난 오래 전의 바란 기억이니까.

아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나날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자리에 작은 싹이 자라고 파랗게 뒤덮였다.

우리의 일상은 이러하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펼쳐진다.

가만히 멍을 때릴 시간도 없다. 촉박한 무언가를 처리하느라 시간이 없다.

잊혀진 것? 그런 게 있었나?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오늘은 살아야 하니까, 오늘을 살아가기도 바쁘니까.


그러다 마주쳤다.

완전히 까맣게, 아니 하얗게 잊고 있던 지난날들의 아픔,

뒤돌아보니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발목은 물론 무릎까지도 깊게 빠져든 그 처절한 현장에서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눌러대는 셔터 소리만, 철컥, 철컥..

육중한 그 소리, 슬픔이 담긴 그 모습들이 박제되어 그의 발 아래로 떨어진다.

불쌍한 사람,

하려고만 했다면 진작 빠져나와 잘 정돈된 아스팔트 길을 걸을 사람이

꿈쩍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은 동상처럼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떠난다는 것, 눈길을 돌린다는 것, 잊어버린다는 것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 어떤 형상이 될 것이라는 걸,

한 없는 슬픔에 또 하나의 슬픔을 덧댄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울컥, 눈물이 고인다.

잊고 있었다. 잊지 않으려 했으나 잊고 있었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담긴 슬픔에

마음이 아리다, 쓰리다, 핏물이 고인다.

예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담아도 좋을 그것을

그는 한 시대의 아픔, 한 시대의 사람들, 한 시대의 고통을 박제한다.

그대 설령 잊었더라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듯이.


차라리 펼치지 말 것을,

차라리 이전처럼 잊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게 더 좋았을 것을,

빨간 알약이 아니라,

파란 알약을 선택할 것을.


지독하게 쓴 빨간 알약을 삼키고,

눈물이 흐르지 않게 깊게 숨을 내쉬고는

남은 페이지를 읽는다.

그리고, 또 다짐한다.

잊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힘들겠지만, 그래도 잊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 [리뷰] 말하는 눈 - 노순택

https://damoang.net/readingbooks/1257


* 이 글은 소모임 '글쓴당'에 올린 글입니다.



끝.

댓글 2

소금쥬스님의 댓글

작성자 소금쥬스 (118.♡.226.139)
작성일 09.25 10:46
저도 다양하게 글 쓰려고 노력합니다..
이젠 글쓴당과 경로당이 이제 함께 하는 꼴라보인거죠
저는 라떼는 하고 글 쓸 자신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우리 다모앙에서 교집합으로 끌라보 하면서
전 세계 !위 커뮤니티 만들수 있습니다..

팬암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팬암 (203.♡.217.241)
작성일 09.25 10:48
전태열 열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이태원 생각도 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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