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평택 고덕 숙식 노가다 - 잠수탄 친구로 얻은 인생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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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커피짱조아 175.♡.28.221
작성일 2024.10.11 10:54
분류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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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 '메이커 페어를 아시나요?'

https://damoang.net/tutorial/11613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너 나하고 일하나 하자

무슨일이죠?


-너 정말 미술 다시 해보고 싶어?

그럼요!


동생은 현장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시도했던 일들을 말해주었습니다. 퇴근 후 그림 그리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보고 또 한번은 대량의 3D 펜을 중국에서 구입했답니다. 유튜버 사나고처럼 멋진 작품을 만들어 영상으로 올리고 3D 펜을 판매하자라는 꿈도꿨습니다. 하지만 매번 연장, 야간 근무를 하면서 피곤해서 어느순간 포기했다고 합니다. 백만원 넘게 구입한 대량의 3D 펜도 쳐다보기 싫어서 그대로 버렸답니다.(나 주지..)


그런 동생에게 메이커 페어를 추천했습니다.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전문 기술인들의 모임.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 코로나 이후로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한다. 그러니 너도 한번 해보자. 이미 신청은 했고 심사도 통과했다. 너는 나와 함께 참가만 해라. 거기서 예전에 함께 밤늦게까지 아이들 특강 샘플 만들던 때를 경험해 보자. 너도 항상 수업할 때가 그립다고 했잖니. 돈은 돈대로 모으면서 너도 잊지 못하는 꿈 조금씩 이뤄봐라. 나도 두렵다. 별 반응 없을수도 있지만 너랑 함께 하면 예전처럼 즐겁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생은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대략 한창 여름인 8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주제는 정해졌습니다. 

'팽이를 만들어 판매하자'

단,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각 단계마다 추가적인 파츠는 아이가 정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빠르게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자.


일단 팽이라는 주제는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합니다. 파리 메이커 페어에서도 남녀 비율이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파리 메이커 페어 - 열심히 만드는 여자아이
엄청 간단하지만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정말 '파리지앵'이 뭔지 알려주신 노신사분.. 정말 멋있었고 만들기도 좋아하시더라구요 ㅎㅎ



무엇보다 푸드트럭에서의 묘한 집중력을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길거리의 노포나 푸드트럭에서는 만드는 모든 과정이 공개됩니다. 식당에서는 음식을 주문하면 완성된 요리가 나오지만 길거리 음식은 주인이 재료를 섞고 뒤집는 등 다양한 움직임이 있습니다.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백종원이 푸드트럭 주인들에게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퍼포먼스’입니다. 고기 위해 술을 뿌려 화염이 피어오르는 불쇼를 하거나 가벼운 질문들을 통해 고객과의 거리도 좁히는 것도 음식의 한 요 소라는 것이죠. 


이런 요소가 있고 없고가 고객들의 즐거움으로 연결되고 그 증거 중 하나가 스마트폰입니다. 일반 식당에서는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봅니다. 반면 노포나 푸드트럭에서는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컨텐츠가 있습니다. 주인이 어떤재료를 넣는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는지, 또 내거는 얼마나 담는지 등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즐겁게 봅니다. 때로는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들을 촬영합니다.


제 부스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코딩이나 뭔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도 아니고 단순하고 아날로그적인 장난감입니다. 대신 모든 제작과정에서 하나하나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고 선택하게 합니다. 또한 옆 테이블 하나를 더 설치해서 색칠등의 간단한 미술활동도 곁들입니다. 그래서 팽이라는 단순한 작품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무엇보다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나 요즘같이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들어가 움직임의 원리를 알 수 없는 시대에 적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과거 아버지 몰래 라디오를 분해하고 카세트 테이프를 분해함으로서 대략적인 원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길다란 자기테이프를 계속 뽑아보며 여기에 어떻게 음악이 저장될 수 있는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아날로그 카세트를 분해해 보면서 수많은 장치들을 관찰합니다. 


카세트를 분해하면 이렇게 수많은 흥미로운 부품들이 나옵니다. 오늘 날 스마트폰을 분해하면 나오는게 있을까요?
우주선 같죠?^^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신기하게 생긴 부품들을 보며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반면 요즘은 모든것이 터치가 되어 재미가 없습니다. 시각적인 즐거움은 있지만 내가 터치함으로서 무엇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류 기술의 정점인 마이크로칩은 우리같은 일반인은 그 속을 볼수도 없고 이해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메이킹을 직접 보여주고 대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계획을 동생에게 말하며 조금씩 구체화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서로 야간근무나 철야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통화하기도 힘들었지만 동역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동생의 응답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열정이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럼에도 옆에만 있더라도 힘이 될 녀석이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통화도 어려워지고 카톡에 대한 대답도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흘러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부터 아예 연락이 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도 최근 몸이 힘들어 잠시 쉬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페어에는 꼭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336321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설마설마 했지만 정말로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았습니다. 참가비가 문제였을까 싶었지만 22만원을 반으로 나누면 11만원, 그 친구의 능력으로는 반나절만 일해도 충분히 벌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혼자 하자.

​이 글을 쓰면서 그 당시 일기를 돌아봤습니다. 막막함 초조함. 그리고 쎄함을 미리 감지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질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주도성’ 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하는 것. 애초에 학원 생활을 답답해 했던 것도 내 자신의 근무 여건을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이미 정해진 수업시간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왕복 4시간 거리를 홀로 이동하며 설치 완료


결국 이것도 내 일이고 작은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결과만 말하자면, 페어에서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일단 밤새워 준비했던 재료들은 모두 판매했습니다. 계속 아이들이 오는 바람에 점심식사 조차 하지 못해서 관계자분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가져다 주었습니다. . 쉬는 시간에는 관계자분이 오셔서 여기에서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뭐하는 부스인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yVjz_oPKKz/?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토요일, 일요일 페어를 마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안전화, 안전모를 챙겼습니다. 다시 묵묵히 평택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너무나 피곤해서 팀장님께 월요일을 쉴까 했지만 이미 금,토 근무를 페어 준비로 모두 빠졌기에 더 부탁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몸에서는 굉장한 고양감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해냈구나. 정말로 혼자서 했구나. 2시간 거리를 그 커다란 짐들을 지고 가서 부스를 설치하고 생각한 컨셉대로 밀고 나갔구나. 결과를 떠나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또 한편으론 갑자기 연락이 끊킨 동생이 생각났습니다. 페어 중간에라도 연락오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갑작스런 거절에 대한 생각도 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제 삶에 몇가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ㅇ 쎄한 느낌이 오면 맞다.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은 이 ‘쎄함’을 무시해서 일어납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했는데 서서히 연락이 안되기 시작한다. 뭔가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상대방의 연락이 점점 뜸해질때,사람은 바빠도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에는 어떻게든 관심을 기울입니다.하지만 점점 바쁘다는 말로 연락이 뜸해진다면 관심이 식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꼭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ㅇ 과거의 추억에 속지 말자.  

-과거 그 사람과 했던 일들의 많은 것들은 미화되기 마련입니다.쓴물은 빠지고 단물만 남습니다. 그걸 추억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자꾸 착각합니다. 되돌아보니 그 친구는 일을 너무나 잘했지만 무단결근이 몇번 있었습니다. 집안일이나 개인적인 긴급사항이긴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빈도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아예 큰 사고를 쳐서 몇주간 결근해서 그 선생님의 수업을 제가 전부 맡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조짐이 보였지만 즐거운 추억들이 오히려 사고를 방해했습니다. 


ㅇ 최악의 상황을 기본세팅으로 생각하자.

-과거에는 이유없는 긍정파였습니다. 잘되겠지. 잘 굴러가겠지. 살아보니 결국 제 스스로 잘 굴려야 했습니다. 영화도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화일수록 ‘생각보다 별론데?’라고 느끼는 일이 많았습니다.기대한 영화가 재미있으면 당연하다 느낍니다.반대로 기대하지 않고, 별 재미도 없을 거라는 마음으로 본영화는 ‘생각보다 괜찮다’ 라는 지점을 많이 발견합니다.아이러니하게도 부정적인 출발일수록 긍정적인 면을 많이 만납니다.

현장에서도 모든 조건이 최악일거라 생각하고 지냈지만 생각보다 안전하고 사람들도 좋았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대접받으러’ 현장에 갔다면 모든게 실망스러웠을겁니다. 무작정 부정적이 될 필요는 없지만 페어도 동생이 빠지고 나 혼자서 하고 사람들도 반응이 시큰둥할 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기대치를 낮춰 놓는 것도 나름 괜찮은 전략입니다. 덕분에 한두명만 와도 기뻤고 많은 아이들이 왔을 때 더할나위 없이 깊은 고양감을 느꼈습니다. 


ㅇ (힘들어도) 나 혼자 90%이상 커버 가능한 일을 진행하자.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그동안의 경력이 있기에 힘들어도 나 혼자서 진행 가능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함께 하면 너무나 즐겁겠지만 없으면 힘들지만 그래도 굴러갈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동생의 연락이 완전 끊켰을 때 암담했습니다. 차량 지원도 없이 모든걸 대중교통으로 옮기고 2일 전부 혼자서 부스를 맡아서 진행하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능은 했습니다. 다행이 중간에 가족과 친구들이 찾아와서 이것저것 돌봐준 덕에 잠시 쉴 수는 있었지만 전적으로 진행은 가능했습니다. 


주변에 보면 큰 사업을 꿈꾸더라도 갑자기 동료가 취업을 한다던가, 다른 일을 하면서 계획 자체가 무너지는 걸 봐왔습니다. 애초에 자기돈이 안들어간 일은 자기 일이 아닙니다. 참가비를 반으로 나누자고 했던 것도 돈이 들어가야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부터 삐걱거렸을 때 어쩌면 마음속으로 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2023년 메이커 페어를 잘 마무리 했습니다. 사고가 있었지만 그 덕에 주도적으로 할 수 있었고 모든 경험속의 기쁨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몸은 쓰러질 것 같았지만 깊이 생동하는 정신 덕에 월요일도 기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바보인가봅니다. 그 이후로도 동생이 생각났고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배신감이라는 감정보다 이녀석이 살아있나, 그냥 형 미안해요 라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대략 3개월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보니 놀랍게도 “부원장님”이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노는 사라지고 반가움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 글에선 밝힐 수 없지만 그 당시 동생은 개인적인 일로 잠수를 탔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자고 생각해도 이 동생을 생각하면 가끔은 ‘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일단 살아있으면 다행이다. 가끔 연락하며 지내자"


이렇게 전화를 끊고나서 여전히 사람을 의지하고 싶어하는 제가 바보 같습니다.


2024년 또 메이커 페어가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도 혼자 하려 했으나 수업하는 아이들 몇 명이 참가를 희망하며 같이할 예정입니다. 팽이와 피젯스피너, 자동차 등 종류를 늘렸습니다. 컨셉은 동일합니다. 만드는 과정을 오롯이 보여주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 이번에는 아예 원하는 사람들은 직접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몇가지 장치를 준비했습니다. 자신의 장난감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눈으로 따라가는 것을 통해 집중력을 불러일으킬 계획입니다. 그래서 팀 이름도 집중력클럽이라 지었습니다. 


설명 넣기


메이커페어 서울

장소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광장(DDP)

커피짱조아 위치 : S-7

시간 :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토,일



개인적으로 한번쯤은 자녀분과 함께 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명 유튜버 긱블도 온다고 하네요^^

 다양한 사람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시간되면 제 부스에도 한번 놀러와 주세요.

또 이 글을 보고 오셨다고 말씀해 주시면 특별 유료 파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ㅋㅋ)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6 / 1 페이지

인생은경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인생은경주 (58.♡.24.41)
작성일 10.11 11:47
글이 읽기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이슨본죽님의 댓글

작성자 제이슨본죽 (117.♡.10.4)
작성일 10.11 12:38
좋은글 잘봤습니다. ㅎㅎ

압살롬님의 댓글

작성자 압살롬 (247.♡.138.0)
작성일 10.11 13:14
애들이랑 한번 메이커스 페어 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안 열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덕분에 알게 되었고, 아이들이랑 이야기 해보고 가봐야겠네요~!!^^

가게 되면 꼭 부스에 방문 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된미래님의 댓글

작성자 오래된미래 (175.♡.16.184)
작성일 10.12 20:41
덕분에 좋은 행사를 알았습니다.
내일 아이들 데리고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JinoLee님의 댓글

작성자 JinoLee (119.♡.146.203)
작성일 어제 15:27
믿을 수는 없지만 정감이 가는 사람이었던 걸까요. 올해 행사도 잘 되시길 바랍니다.

NewJeans님의 댓글

작성자 NewJeans (106.♡.131.88)
작성일 14:47
사람은 바빠도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에는 어떻게든 관심을 기울입니다.하지만 점점 바쁘다는 말로 연락이 뜸해진다면 관심이 식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꼭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격하게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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