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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일 PM 12:38 · 수정됨(10. 21. 15:45)

전통과 현대
지금은 현대사회다. 과거는 전통사회다. 차이가 있다면 자연과 떨어진 거리다. 자연과 멀리 있으면 현대, 그렇지 않으면 전통사회다. 전통사회는 자본이 없으니 회사도 없고, 회사가 없으니 해고도 없다. 그야말로 자유롭다. 하지만 현대문명의 편리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온실 안에서 자연을 축소판으로 즐길 수도 있다. 테니스도 치고 첼로도 켠다. 하지만 대가가 따른다. 자연을 거슬러야 한다. 한정된 자원에서 싸워야 한다. 전쟁을 치러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자연과 인공
유만수(이병헌)는 제지회사에 다닌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든다. 집에선 온실에서 나무를 가꾼다. 멀쩡한 나무를 철사로 감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트는 분재가 취미다. 식물을 해치고 자연을 거스르며 산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빌딩에서 반사된 햇빛은 피할 수 없다. 집에서도 아들 그림자 뒤에 숨어야 햇빛을 겨우 피할 수 있다. 장어로 해고통보를 받은 만수는 결국 산이라는 자연에서 뱀에게 물린다. 돼지를 키우던 만수 아버지에 이어, 나무를 키우는 만수는 급기야 시체를 (돼지처럼) 토막내지 못해 분재로 만든다. 현대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전통과 자연을 피할 수 없다. 대가를 치른다. 어쩔 수가 없다.
인간과 사람
태어나면 인간이지만 아직 사람은 아니다. 사람이 되려면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역할을 받아야 한다. 가족 안에서 남편 혹은 아내. 회사 안에서 부장 혹은 사장. 만수는 "다 이뤄낸", '사람'이다. 화목한 가정. 안정된 직장. 번듯한 양옥집까지. 하지만 해고를 당한 이후로 역할이 사라졌다. 이뤄낸 게 모두 무너질 판이다. 만수는 비슷한 역할을 가진 사람을 만나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인간 대 인간으로 죽일 생각이다. 현대사회에선 자연으로 돌아가면 죽는 것이다. 뱀에 물려도 죽고 땅에 묻혀도 죽는다. 죽이지 않으면 인간은 죽는다. 자연의 섭리다. 어쩔 수가 없다.
얼굴과 가면
고대 그리스 연극은 가면을 쓰고 연기한다.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퍼슨/사람의 어원이다. 사회에서 역할극에 맞는 가면을 쓰면 인간이 아닌 사람이 된다. 그럴듯한 가면을 쓰면 체면이 선다. 만수는 가짜 회사, 페이퍼 컴퍼니, '레드 페퍼'를 차려 경쟁자 이력서를 모은다. 머그샷처럼 지원자 얼굴이 보인다. 형사가 보여준 태블릿 화면도 범모와 시조 얼굴이 사라지니 검은 화면에 만수 얼굴만 남는다. 후보자 가면은 모두 희생자 얼굴이 된다. 만수는 범모(이성민)를 죽이려고 할 때 내연남의 가면을 쓴다. 만수는 시조(차승원)를 처음 만날 때 안경을 쓴다. 그리고 총을 쏠 땐 얼굴을 가린다. 사람의 얼이 들어있는 굴, 얼굴을 가린다. 이제 가면이 얼굴이 되어버린 만수는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를 땐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선출(박휘순) 얼굴을 랩으로 칭칭 감아 가린다. 이제 다리도 떨지 않고 능숙해졌다. 어쩔 수가 없다.
체면과 존엄
가면을 쓰고 체면을 세운다. 엘피를 모으고 분재를 보면서 스스로 체면과 명성을 높인다. '올해의 펄프맨' 상을 받은 범모와 만수의 모습이다. 그리고 만수의 체면과 가면은 당연하게도 콧수염이다. 그러니 체면을 구길 수 없다. 하지만 범모는 아라에게 모욕을 당한다. 자기 침대 위에서 아라가 젊은 배우와 놀아났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들으며 범모, 만수, 아라는 한바탕 소동극을 벌인다. 이제 체면 챙길 때가 아니다. 아라가 범모를 쏠 때 역시 "해고가 문제가 아니라 해고에 어떻게 대처하는 지가 문제" 였다며 자존심과 체면만 챙긴 범모를 벌한다. 만수 역시 손에 총을 든 아라에게 좋긴다. 우스꽝스럽게 산길을 도망가면서 볼썽사납게 소리만 꽥꽥 지른다. 두 사람이 모두 받은 명예로운 '올해의 펄프맨' 트로피는 이 장면에서 고작 둔기로 쓰인다. 면이 안 선다. 어쩔 수가 없다.
소리와 소음
사람이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 인간이 듣기 싫은 소음이 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자동차 창을 올려 막으면 된다. 아내 미리와 함께 일하는 치과의사 놈 오지호(유연석) 말은 듣기 싫다. 시끄러운 공장 소음도 귀마개를 틀어막으면 안 들어도 된다. 침대 위에서도 누나라는 말이 듣기 싫으면 반말로 말하라고 하면 된다. 자존심에 음악카페를 차리지 못하는 쫌생이 범모의 마지막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크게 틀어서 위로하면 된다. 귀가 안 들리던 주인공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우리도 같이 듣지 못했던 <복수는 나의 것>이 생각난다. 자폐를 보이는 만수의 딸, 소율이는 소리를 소음처럼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듣기 거북한데 집에서는 듣기 좋은 연주조차 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아름다운 소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만수와 미리의 바람처럼 소율은 이제 사람처럼 살 수 있다. 하지만 만수와 미리는 더 이상 사람처럼 살 수 없다.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가 없다.
상승과 추락
상승은 자연과 중력을 거스른다. 하락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영화가 시작하면 만수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딸 소율을 달래 저녁 먹으러 내려오게 한다. 집은 높은 곳에 있고 오를 만큼 다 올랐다며 만수는 만족해한다. 이후로 추락은 계속된다. 태양제지에서 문 제지로 내려간다. 그때부터 태양보다 달빛 아래 있는 시간도 많아진다. 그리고 시체를 묻기 위해 매번 바닥을 파야 한다. 차라리 흙구덩이 안에 누워 있으니 편하다. 이 사람은 이제 더 추락할 곳이 없다. 이층에서 일층으로 선출(박휘순)을 내려오게 하고 땅에 묻은 후에 다시 올려놔야 한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만수는 내려오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남의 집 옥상에 올라가서 고추화분을 아래로 던지려는 모습처럼 말이다. 만수는 계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버지의 총을 집고, 아버지의 집을 사고, 아버지처럼 온전치 못한 정신을 내려놓지 못하니까 추락할 수밖에 없다. 다 이뤘는데, 다 잃는다. 어쩔 수가 없다.
상징과 디졸브
만수를 둘로 쪼개면 범모와 시조가 된다. 범모에겐 한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바람난 아내가 있고, 시조에겐 비슷한 또래 딸이 있다. 그러니 동병상련이다. 측은지심이다. 만수는 범모가 바람피는 현장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시조의 마지막은 잔인하고 비참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만수를 미래로 옮겨놓으면 선출이 된다. 선출은 이혼해서 혼자 산다. (아마 만수와 미리도 결국 이혼하지 않을까.) 둘 다 숲속 이층집에 산다. 둘 다 술을 좋아하고 윤리의식이 부족하다. 뒷돈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층집도 그렇게 샀을거다. 범모와 시조보다 만수와 선출은 생김새까지도 닮았다. 아라(염혜란)가 입고 있던 브이넥 스웨터는 마지막에 미리(손예진)가 입고 있던 스웨터와 색깔만 다르고 같다. 치과의사 오진호(유연석) 이름은 아라의 내연남 진오와 비슷하다. 아들 시원과 친구 동호는 마치 형제 같다. 이렇게 인물들이 여기서 겹치고 저기서 겹치니 화면까지 겹치는 디졸브는 당연하다. 고추까지 계속 겹친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수가없다
어쩔 수가 없다, 를 띄어 쓰지 않고 어쩔수가없다 라고 쓴 건 감탄사처럼 보이고 싶어서라고, 박찬욱이 말했다. 그 뜻을 받잡아 이 글에서도 많이 썼다. 띄어 쓰지 않아서 고유명사가 되기도 했다. 닭 한 마리를 띄어 쓰지 않으니 닭한마리라는 고유한 메뉴가 생긴 것처럼 말이다. 체면과 명성을 넘어 이제 존엄의 경지에 오른 칸느박의 작명답다. 어쩔 수가 없다.
작가와 감독 박찬욱은 지독한 영화광이었다. 영화평도 잘 썼다. 책 읽기도 좋아하고 사진도 잘 찍는다. 그러니 머릿속에 있는 방대한 지식을 영화에서 풀어놓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이는 대야가 가득 차서 넘치는 경우지, 방정을 떨며 걷다가 칠칠맞게 흘리는 게 아니다. 어쩔 수가 없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서. 현대사회는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이진법으로 작동한다. 지금까지 쓴 소제목 역시 이진법, 대립쌍 혹은 바이너리binary다. 둘만 놓고 이리저리 비교하는 게 가장 쉽다. 셋은 너무 복잡하다. 태양과 달, 그렇게 두 개 행성은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셋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삼체 문제'라고 부르는 복잡한 방정식은 현대 컴퓨터로도 계산이 힘들다. 그런데 <어쩔수가없다>처럼 페어링이 이렇게나 많으면? 어지럽다. 저글링을 보는 것처럼 어지럽다. 과잉이다. 하지만 서커스를 보러 이미 입장료라는 대가를 치렀으니 어지러워도 즐겁게 봐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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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eyouman
25.10.07 · 218.♡.132.162
와 멋진 리뷰입니다 공유해 주셔서 감사 드려요~ -
재재원34
25.10.13 · 211.♡.131.128
와~~~
한번 봤는데, 모르던 심오한 내용이네요.. - 또
또좋은날
25.10.21 · 175.♡.110.10
고급스러운 필체 고급스러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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