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심리상담소, 정신과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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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추피추 211.♡.93.70
작성일 2024.04.18 08:31
분류 시술·수술기
1,29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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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8 클리앙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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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이 쓰다보니 길어져 세줄 요약을 맨앞으로 옮깁니다.

1. 우울증은 의지, 정신력으로 극복되는게 아니다

2. 정신과 문턱은 높지 않다

3. 우울증 친구에게는 말없이 고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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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주에 한번씩 정신과 다니면서 약물 치료는 계속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일상을 회복한 40대중후반 남자입니다.

코로나로 우울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제 경험을 써봅니다.

 

3년전이군요. 급격한 업무 능력이 저하되고,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침체된 기분이 지속되었습니다.

거기에 회사 상황도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상사와의 관계도 계속 악화되면서 악순환의 가속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집중을 못하니, 한 일도 없이 퇴사 생각만으로 시간만 보내고, 퇴근하면 자고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하며 잠만 자고 그렇게 몇달이 되었습니다.

 

이게 흔히 말하는 남자 갱년기인가도 싶기도 했고, 머리에 나사가 빠져 정신력이 헤이해져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 계절탓인가도 하면서 나름 문제를 해결해보려, 원인 분석을 해 봤으나, 생각하면 할 수로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가지에 가지를 쳐 나가더군요.

 

운동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해 보고자, 자전거로 출퇴근도 하면서 땀을 흘리고, 주말마다 산에 올랐지만 점점 효과가 떨어지더군요.

 

항상 멍한 정신상태에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 괴롭더군요.  수면의 질도 나빠지면서 쉽게 잠들지도 못하고, 잠들어도 잘 깨고, 깨고 나면 멍한 상태인데도 다시 잠에 못들고, 출근해서도 그냥 일도 제대로 못하고, 해야 할 일 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상사의 질책을 듣고, 팀원들에게 우산 역할도 못하는 무능한 팀장으로 되어가는 것 같더라구요.  마음속의 결론은 이미 퇴사로 굳어져가고 있는 상태가 되었고, 퇴사하고 이직하면 괜찮아질까했습니다.  하지만 40중반의 나이로 이직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기에 더더욱 좌절감도 들었습니다.  운동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고요.

 

혼자서 극복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배들, 친하게 지냈던 예전 동료들과도 몇번 고민 상담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반응은 "너만 그런게 아니고, 원래 다들 힘들어", "운동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해봐" 였고, 오히려 내 단점을 노출시켰다는 것에 괜히 고민을 말했다라는 후회마저 들더군요.

 

선택지는 심리상담소와 정신과가 있었고, 아무래도 정신과를 택하기에는 내 정신력의 한계, 의지박약을 인정하는 것 같아 심리상당소를 택했습니다. 추천받은 곳이 있어 그 곳에서 2시간 정도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비는 1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진표 비슷한 거의 200개 넘는 질문에 답을 썼고, 그 다음 백지에 그려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족 그림도 그리고, 집도 그리고, 친구들 이름도 나열해 표시해보고...  상담사는 저의 상태를 이직병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표현은 안했지만, 제가 받아들이는 느낌이 그랬죠.  그러면서 상사와 면담을 해보라는  조언을 받았고요.

 

그 다음날 상사에게 요청하여 면담을 했습니다.  "실망시켜드려 미안하다. 우울증인 것 같아 심리상담도 받았다. 다시 열심히 하겠다.  저를 좀 도와달라"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반응은 냉램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열심히 해보라.  어려운 점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라"라고 했지만 표정은 신뢰의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괜한 짓을 했구나라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뭔가 감정의 바닥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더 밑으로 떨어지더군요.

이제는 제 자신조차도 내 판단력과 의지력 자체를 믿지 못하는 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심리상담소를 찾았습니다.

첫 방문에 2시간 가량 문진 작성하고, 면담했습니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내 감정을 잘 이해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쭉 하면서, 내가 이렇게 속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았고, 내 말을 누군가가 들어준다고 이렇게 좋은 거구나라는 것도 알았고요.  거의 울뻔하게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했습니다.

 

10회 상담를 받기로 하고, 주 1회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상담 자체는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말이 귀 기울려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고, 내 감정 상태를 객관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좋은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머릿속에는 퇴사하면 괜찮아질까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리상담소를 다니는 두달반 동안도 회사는 여전히 가시방석이었고, 그냥 대책없는 퇴사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상담때 상담사에게 퇴사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니,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고, 정했으면 그러라고 하더군요.

 

상사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갈곳 정해지지 않는 퇴사라고 하니, 저에게 "너가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가족도 있는데 가족도 생각해야 않느냐?" 하더군요.  오히려 그 말이 결심을 더 굳히게 하더군요.  그 당시 "이렇게 무능한 가장일바에는 그냥 사라져주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이르렀거든요.

 

퇴사하고 백수가 되었습니다.

정말 바닥인 줄 알았습니다.

바닥이니, 이제 올라갈 일만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회사를 안 나갈뿐 여전히 무기력했고, 우울한 생각은 떨쳐지지 않더군요.  대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마저 들더군요.

 

프린랜서 생활을 시작했고, 이 생활을 회사라는 울타리 속 생활보다 훨씬 더 강도높고 힘들더군요.

뭔가 배수의진을 쳤다고 생각하는데도 자꾸만 물속으로 쳐박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일하는 곳 근처에 새로 문을 연 정신과가 있어, 저기나 한번 가보자하는 생각에 들어갔습니다.

 

첫 진료는 한 30분정도 했습니다.

우울증이 맞다고 했습니다.  우울증은 약물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다리가 부러졌으면 깊스하고서 뼈가 붙은 다음 재활치료를 하는 게 맞지 깊스도 않고 재활치료를 하는 것은 우울증을 정신력만으로 극복하는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사람의 뇌 특히 감점은 호르몬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신력, 의지로 저 호르몬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아침,점심,저녁 이렇게 하루 세번 먹는 우울증약과 "필요시"라는 글자가 적힌 약 일주일치를 받았습니다.  약 포함 진료비는 2만원정도 되었습니다.  역시 의료보험이 되니 좋더군요.  의료선진국 대한민국 좋은 나라입니다.

 

약 효과는 강력하더군요.  이틀 후부터 우울한 감정을 사라졌습니다.

대신 부작용이 있었는데, 멍청해진 것 같고, 항상 졸리더군요.  마치 계속 가지치는 우울한 생각을 끊어버리기 위해 신경세포의 시냅스들을 몽땅 정지시켜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상과 관련된 모든 기능들이 영향을 받는 것 같더군요.  특히 코드를 짜거나 따라갈 때 콜스택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내가 지금 왜 이 코드를 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더군요.  그리고 뇌를 쉬게 하는 성분인지 몰라도 자도 자도 계속 졸려, 일에 큰 방해였습니다.

 

이렇게 한 넉달정도를 매주 통원하면서 약물 치료를 받았습니다.  우울증 자체는 아주 좋아졌습니다.  우울증 뿐만 아니라 평소 저를 괴롭히던 과민성대장증후군도 사라졌습니다.  그전에 거의 하루에 세네번은 화장실을 가야했고, 특히 버스를 타기 전에는 반드시 꼭 화장실을 들렀어야 했는데, 그게 사라지니 정말 좋더군요.

 

우울증은 사라졌지만 업무 능력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졸립고, 특히 머리가 워밍업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ADHD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검사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게 아닌지, 10만원가량 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ADHD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한번 해보자고,  ADHD 약 추가되었습니다.

약 이름은 콘서타정.  이 약이 좀 비싼지, 이 약이 추가되면서 일주일 약포함 진료비는 기존 만6천원정도에서 2만원5천원정도 되었습니다.

 

저 약은 저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머리속에 항상 드리워진 구름이 싹 걷힌 느낌이었습니다.

무기력증이 싹 사라졌고, 집중도 잘 되고, 집중이 잘 되나 보니 업무 효율이 정말 잘 나오더군요.

이제까지 고민했던 것들, 우울증도 본질은 저 ADHD때문이었고, 그때문에 집중을 못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고, 이직병도 생기도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지금까지 힘들게 보냈던 시간들이 아깝더군요.

 

뭐 다 아까운 것만은 아니고, 도움된 것도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좀 정리했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편이라 항상 손해보는 편이었는데, 정작 제가 아쉬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 때  당연한 반응이 올 것이 기대했던 대로 안 오는 것을 느끼면서, 불필요한 인간관계도 정리하고, 인생관도 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심하게 가을을 타던 것도 사라졌습니다. 

 

작년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송강호의 대사가 뇌리에 깊히 박힙니다.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야"라는 것.  계획은 원래 어긋나게 되어 있으니 거기에 실망하지 말고, 그냥 계획 안 세우고 오늘 하루에 충실하는 것으로 계획관에 바뀌었고요.

 

정신과 다니기 시작한지 거의 2년이 되어가네요.  아직 의사는 약을 줄일 단계는 아니라고 해서 현재 ADHD와 우울증약을 계속 먹고 있는 있습니다.

 

혹시나 우울증으로 고민이신 분, 정신과 문턱을 넘어보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주변에 우울증있는 분에게 충고나 격려가 별 도움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나는, '힘내라', '가족을 생각해라', '정신력' 이런 말보다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고기 사주세요.  저도 그 시기 말 없이 제 이야기 들어주며 고기 사준 친구가 제일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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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1 페이지

MrSunday님의 댓글

작성자 MrSunday (112.♡.187.11)
작성일 04.18 10:32
잘 극복해가고 계시니 다행이네요. 요즘은 좀 어떠신지요?

마추피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마추피추 (115.♡.201.98)
작성일 04.19 16:55
@MrSunday님에게 답글 감사합니다.  약 효과로 잘 제어하고 있습니다.

netter님의 댓글

작성자 netter (117.♡.2.238)
작성일 04.18 11:12
자기자신울 내보이는 글 쓰기가 쉽지 않은데 용기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은 없지만 극복과정이 피부에 와 닿고 삶에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마추피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마추피추 (115.♡.201.98)
작성일 04.19 16:56
@netter님에게 답글 모든 병은 들어내야 더 잘 치유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뱉은 말이 있으니 더 조심하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바닥군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바닥군 (210.♡.41.89)
작성일 04.18 12:45
저도 읽고,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댓글을 달았던 것 같습니다.
우울은 정신적 감기같은 것입니다. 처방약이 필요한 경우가 생각보다 꽤 있으니 다들 어려워하지 마시길.

마추피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마추피추 (115.♡.201.98)
작성일 04.19 16:57
@바닥군님에게 답글 네 맞습니다.  의지로 호르몬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히어로즈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히어로즈 (14.♡.239.138)
작성일 04.18 13:28
회사 운영하면서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 정신과 상담 후 약을 복용한적이 있습니다.

주변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에게 반드시 병원 방문 상담과 약 복용을 추천합니다.
병원은 제가 3군데 정도 가봤는데, 마지막 의사가 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말이 참 잘 통하는 분이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의사를 잘 만나느것도 중요하더군요.

마추피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마추피추 (115.♡.201.98)
작성일 04.19 16:57
@히어로즈님에게 답글 네 맞습니다.  의사도, 상담사도 잘 만나야 합니다.

뚜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뚜비 (220.♡.111.82)
작성일 04.18 13:29
저도 다시 병원 찾아야하는데, 쉽지 않네요..ㅠㅠ

마추피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마추피추 (115.♡.201.98)
작성일 04.19 16:58
@뚜비님에게 답글 꼭 방문하시길 바래요.

뚜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뚜비 (211.♡.221.170)
작성일 04.25 14:29
@마추피추님에게 답글 감사합니다.

BARBOUR님의 댓글

작성자 BARBOUR (123.♡.99.240)
작성일 04.19 15:38
저도 몇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가족들 와이프 한테 제일 미안하더라구요. 지금은 괜찮긴 합니다만 우울증은 무기력하게 해서 무서워요

마추피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마추피추 (115.♡.201.98)
작성일 04.19 17:00
@BARBOUR님에게 답글 네 맞습니다. 우울증이 먼저인지 무기력증이 먼저 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안 좋은 것들을 죄다 불러 모으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지요.

BARBOUR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BARBOUR (123.♡.99.240)
작성일 04.19 17:14
@마추피추님에게 답글 맞습니다. 가족들한테도 친구들 한테도 그냥 맘 굳게 먹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데 마음에 굳게 안 먹어지는데 참...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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