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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이민 1.5 세대의 입장에서 써보는, 앞으로 이민을 오게 될 1.5 세대를 위해 부모님들에게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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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아이 172.♡.155.54
작성일 2024.03.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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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이 아시겠지만, 저는 이민 1.5 세대 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미국으로 왔지요. 이모님의 형제 초청 (어머니) 로 온 경우로, 덕분에 외가쪽이 여기 계시지요.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이민 1.5 세대의 입장에서 미국 이민을 오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 입니다.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외국 이민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고, 일부는 미국 이민에 한정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미국 이민을 오는 외국인 중에서 한국은 상당히 비율이 높은 편 입니다. 취업 비자부터 투자 이민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누군가는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서, 누군가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누군가는 닭이나 튀길 수는 없어서, 누군가는 외국이라는 동경으로 오지요. 그리고 아마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옵니다. 그게 학업이건, 더 나은 경쟁을 위한 것이던, 더 나은 자유를 위해서건 말이지요

근데 "아이들" 을 위한다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위선이고, 거짓이고,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번 글은 그런 관점에서, 부모님을 따라서 아무런 준비 없이 오는 이민 1.5 세대,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가게 될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작은 경고이자, 조언이 되었으면 하네요

 

 

 

우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민을 생각할 때, "아이들" 을 위해서 "나/부인/남편" 이 희생을 하려고 한다... 라는 마음 가짐으로 오지 마시라는 말 입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서는 저희 (저와 동생) 을 위해서 오신 경우 입니다. IMF 가 터지고, 집값은 떨어지고, 대학을 가도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없어진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되었고 (98년 당시 아파트 한채, 차 한대, 컴퓨터와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그래도 나름 괜찮은 중산층의 모습이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당시 약사이셨고요), 저도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고요. 아, 저는 영어는 못했네요. (당시 수능 모의 고사 수준으로 영어는 40~50%, 전체 평균은 한자리였으니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모님의 형제 초청으로 온 경우이고, 저희는 인터뷰를 보러 오라고 한 98년부터 11년 전에 서류를 넣은 경우지요. 부모님도 다 잊어버리다시피 하셨는데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고3 1학기였고, 중간 고사 직전이었네요

 

그리고 몇 번의 인터뷰를 끝내고, 실제로 미국으로 온 것은 99년 2월 말 (저는 생일이 넘어서 병무청에 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3월에 왔네요. 졸업식도 했지요) 입니다. 서류에는 고등학생으로 나왔기에 (인터뷰 당시 고3 1학기였으니까요) 고등학교로 들어가거나 대학교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저는 고등학교로 가기로 했습니다. 

미국은 5월에 학년이 끝나고, 9월에서 10월에 새 학년을 시작합니다. 저는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10학년 (한국식으로는 고1) 마지막 한달을 듣고, 2년을 더 듣기로 결정했지요. 보통 영어 공부를 2년 정도로 잡기에, 대학교에서 돈을 주고 1년 이상 공부하는 대신 무료로 공부가 가능한 고등학교로 가기로 했지요.

 

... 영어는 정말 하나도 못하는데 고등학교를 들어갔지요. 옆에는 전자사전을 놓고, 제대로 된 영어 수업도 아닌, 외국인을 위한 영어 수업을 듣는 것도 상당히 벅찼지요 ㅎㅎㅎ 하나 예를 들자면, 처음에는 교과서 한 페이지를 읽는데 한시간이 걸리더군요 ㅎㅎㅎ 나중에 되서는 좀 나아졌지만 말입니다.

그나마 조금 나은 것은 수학 정도였지요. 그건 영어를 못해도 문제만 풀 수 있으면 되니까요.

 

나름 꽤나 큰 스트레스였지요. 숙제를 하려면 집에 와서 계속 책을 잡고 있어야 하고, 수업 중에는 모르는 영어를 들어야 하니까요.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도 못 알아듣는데 외국인 친구를 만들 수도 없었지요. 그래도 나름 공부는 한 편이었는데, 이건 뭐 알아들을 수 없으니 ㅇㅅㅇ;;;;

누군가는 말합니다. 미국에 몇 달 살면 영어 잘 하는 것 아니냐고. 2년쯤 하면 원어민만큼 하는거 아니냐고요.

 

... 설마요

 

그런식으로 말하면 유치원생이 되기 전부터 영어를 공부해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도 영어를 공부하는 한국 사람은 미국인들만큼은 아니어도, 최소한 구글에서 영어로 다 검색하고 영어 논문도 슥슥 쓸 수 있어야 하겠지요. 대학생이 되서까지 공부를 하는데 왜 성적은 쌍권총이 나오겠습니까?

물론 열심히 하면 잘 되겠지요. 근데 미국에서 산지 17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영어가 제일 어렵네요 ㅎㅎㅎ 

 

 

 

이민을 오면 제일 어려운게 바로 영어지요. 아마도 클리앙에 계신 분들 중에서 이민을 생각하고 계시거나, 이민을 준비 중이시거나, 이미 이민을 오신 분들은 그래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하시는 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혹은 저희처럼 초청 이민의 경우는 그래도 미국에 누군가 계시고, 기반이 있고, 영어도 어느 정도 하시는 친척이 있는 경우지요

근데 그게 아닌 경우는요? 특히 큰 아이가 고등학생 정도된 40대 말에서 50대의 부모님은 그렇지 않지요. 그런 경우 영어는 처음에는 부모가 직접 바디랭귀지로 하게 되지요. 그리고 조금 지나면 그 집 첫째 아들/딸이 하게 됩니다.

 

정작 당사자도 영어를 잘 못해서 학교에서 버벅이는데, 집안의 모든 영어는 도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 스트레스를 알고 계시나요?

이민을 와서 영어를 못하는 부모들이 하는 대부분은 개인 비지니스 이지요. 미국에 온 한국인 이민자의 상당수는 개인사업을 하고, 그 중 대부분은 구멍가게, 테리야키 식당, 세탁소 입니다. (서브 프라임 사태 이후 세탁소는 사양길이지만요) 

그런 개인 사업에 관련된 영어도 아이가 맡게 됩니다. 버벅이는 영어로 다양한 통역을 해야하지요. 물론 중간중간 실수를 하고, 때로는 그 실수가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버려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대학생이 되어도, 직장인이 되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도, 영어 때문에 도와드려야 하는 일들이 많지요. 부모님 사업을 돕기도 해야 하고, 다양한 서류 작업도 해야 하지요.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하니 그 정도는 도울 수 있는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 집안에서 제일 잘 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 뿐이지요.

길고 긴 문장을 통역하고, 다양한 서류를 읽고, 다양한 일들을 도와드리고, 자기의 일도 해야지요. 학교에서는 영어로 치이고, 집에 와서는 부모님의 영어로 치이지요. 개인 사업을 하시니 주말도 없이 도와드리고, 숙제도 해야 하고요.

 

 

 

제 부모님은 지금도 그렇지만, 슈퍼를 하고 계십니다. 그냥 한국에서 생각하는 편의점... 보다는 좀 크겠네요. 별거 아닐지도 모르시겠지만, 이 지역에서 맥주가 들어오는 배포점은 총 세곳이 들어오고, 우유/치즈/계란 등이 들어오는 곳이 있고, 음료수는 펩시와 코카콜라가 각각 다르고, 감자칩이나 과자 들이 들어오는 곳이 두 군데고, 육포와 다른 주전부리가 들어오고, 아이스크림이 들어오지요. 매주 들어옵니다. (아이스크림은 격주로 오기는 하네요)

매년 세금과 라이센스를 갱신해야 하고, 건물주 서류 관련 되서도 봐야 하고, 매일매일 수 많은 편지와 서류가 들어와서 그걸 분류하고 대충 훑어 보기라도 해야하지요.

제가 대학생이 되기 좀 전부터 시작을 하셨는데, 저는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교로 가서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했고 (딱히 대학교에 큰 욕심도 없었고요), 오후에 학교가 끝나면 가게로 와서 가게를 보고 + 손님을 받고 + 문을 닫았지요. 슈퍼가 그렇지만 1년 중에서 쉬는 날이 있을리가 없지요 ㅎㅎㅎ 공휴일은 좀 일찍 닫기는 했네요. 그래도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몇년을 했지요. 대학생 때는 그렇게 저녁 11시까지 돕고, 집에 와서 숙제를 하고 새벽에 자고, 다음날 학교를 가고, 다시 학교가 끝나면 가게로 돌아왔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생때 딱히 친구도 없었지요 ㅎㅎㅎ 다른 애들은 학교 끝나고 같이 숙제를 하기도 하고, 애인을 만들고 놀러가기도 했는데, 저는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저녁에는 가게에 있었으니까요 ㅎㅎㅎ 주말에는 잠 좀 자고 숙제를 마져 하면 끝이었지요. 그래도 방학 때는 (학교 가지 않는 시간 동안) 좀 쉬고 + 밀린 게임도 좀 하기는 했네요. 그래도 저녁에는 가게를 도왔지요

 

뭐 다행이도 졸업은 잘 하고, 인턴도 했고, 결혼도 하기는 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군요ㅎㅎㅎ)

 

 

이곳저곳에서 영어에 치이고, 부모님을 돕고, 제 일도 해야 하고요.

제 대학생활은 그랬습니다. 솔직히 이민 1.5 세대의 대부분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를 가지 않는 이상, 이런 삶이 되지요. 

 

아이들을 위해서 오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아이들도 고생을 하게 되는 구조지요

물론 슈퍼가 아니라 식당이나 세탁소 였다면 좀 달랐겠지요. 좀 더 일찍 끝나고, 공휴일 등에는 쉬니까요. 

 

그래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돕게 되지요. 

 

 

 

물론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저도 딱히 후회를 하지는 않지요

 

그래도 한번씩은 대학생 때 좀 더 놀러다녔다면 ... 하는 생각은 하지요. 좀 더 친구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멀리 미국 동부에 가서 경험도 해봤으면, 친구들이랑 며칠 놀러다녀봤으면... 하기도 하고요.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 중에는 자신은 아닐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근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게 되면 그렇게 되요.

그나마 취업 비자로 오시는 분은 어느 정도 영어가 되고 + 주말이나 공휴일은 쉬는 월급쟁이니까 괜찮지만, 개인 사업을 하면 그런거 없어요 ㅎㅎㅎ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보다 아이들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좀 더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도 함께 고생을 하게 되지요.

 

 

 

뭐, 그래도 한국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근데 아이들은 한국이 아니기에 다른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학교에서는 영어로, 문화로, 수업으로, 학점으로 고생을 하고, 집에 와서는 부모님의 영어를 돕는데 고생을 하지요

대학생이 되서는 취업도 신경을 써야 하기에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부모님이 돕기도 어렵지요. 저도 대학 생활 때 정신 없이 지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다행이도 주변에 컴공과를 다닌 분들이 많이 계셨고, 제가 원래 원했던 목표인 국어 교사나 (이래뵈도 문과였지요 엗헴) 경영쪽은 아예 포기를 할 수 있던 상황이라서 다행 아닌 다행이었지요. 운이 좋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인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고요. 

근데 이런 것들은 부모님이 도와주시거나 한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지금 이민을 준비하는 분들의 상당수는 미국 등에서 유학 등의 경험을 하셨기에 좀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취업이나 인턴 등은 좀 다른 이야기 이고요.

 

 

 

이리저리 장황하게 썼지만, 이민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온다고 하시지만,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엄청 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 입니다. 

다행이도 저는 딱히 질풍노도의 시기가 없어서 -_- 괜찮았지만, 사춘기에 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이들도 많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갈피를 못 잡다가 취업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그런 경우 아이들의 자괴감도 엄청나지요.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도 회사나 일로 영어 등으로 치이다보면, 아이들을 정작 돌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도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이야기도 별로 못하고,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요.

미국 학교에서의 상황과 문화를 모르니 제대로 돕기도 힘들고, 영어가 안되니 선생님과 상담도 힘들지요. 

 

미국 초등학교에서 부모는 상당히 다양하게 아이들을 돕고 선생님/학부모와 이야기를 하고 돕기도 해야 하는데, 한국인 부모님들은 영어를 이유로 그런 부분에서 발을 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떻게 뒤쳐지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네, 그래도 직장인이라면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고, 휴가를 받아서 놀러가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발을 쿵쿵거려도 신경쓰지 않을 개인 주택을 마련하기도 하고, 여름에 캠핑도 갈 수 있지요

 

 

 

 

근데 그건 어쩌면 부모의 만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부모님과 놀면 좋지요. 하지만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건지 생각해 보세요.

이 모든 것은 부모의 만족을 위한 것 입니다. 부모가 아이와 같이 놀고 싶다는 부분 말이지요. 아이들도 행복하지만, 자기가 행복하고 싶어서 이민을 생각하시는 것 이지요.

 

하지만 정작 이민을 오면, 영어부터 다양한 문제로 부모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들도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 밑에서 스트레스가 전염되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도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요

물론 어디서건 그런 스트레스는 있을겁니다. 근데 자칫하면 "이민 오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거다"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요

 

한국에서 중산층 혹은 그 이상으로 살다가, 미국와서 월세 살면서 회사에서 치이고, 사업으로 전전긍긍하고, 문화적으로 다르니 고립되기도 하고, 친구들도 딱히 없이 아이들만 보다가, 집에서 이런저런 문제로 부부싸움도 하게 되지요

 

 

... 그건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이민 인가요?

 

 

 

 

이민은 오기도 힘들지만, 와서가 더 힘듭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지요

그리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을 잠시 맡아줄 할머니/할아버지도 없고, 일 끝나고 같이 한 잔 할 직장 동료도 없지요. (미국은 개인주의니까요)

병원을 가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니, 다양한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그 와중에 아이가 아프기도 하고, 부부싸움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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