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여요 그 단어] 11월 21일 - 칼
알림
|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24.11.22 01:58
본문
모든 것은 각자 다르게 탄생한다. 그리고 각자 다른 모습으로 노화한다.
먼지를 뒤집어쓴다거나, 때가 묻는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무뎌진다거나.
근데 그렇게 노화한 모습은 대개는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축처진 뒷모습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보호'라는 명목하에 덮어씌우거나 어딘가에 잘 넣어놓고는 잊어버릴때가 많다.
집 안에 잘 있던 녀석을 꺼내본다.
쓰임도 선택도 없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녀석이다.
나는 싹둑 끊어내거나, 날카롭게 잘라내거나 하는 일에는 통 소질이 없어
힘든 회사 생활도 그만두지 못하고,
친구의 투정부림도 그만듣지 못하고,
지인의 어려운 면도 그냥두지 못하는지라
이 녀석처럼 행동할 일이 도통 없으니 떠올릴만한 물건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나, 오늘은 문득 떠올라 꺼내보니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손가락을 올려도 생채기 하나 못낼것 같이 무뎌보이는데다가
꺼내지도 않았는데 끄트머리에는 아주 작게 녹까지 슬어있다.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너도 늙었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버린다.
그래도
그만두지 못한 회사에서 어쨌든 직원 노릇은 하고 있고,
그만듣지 못한 투정듣기라도 어쨌든 친구 역할은 해주었고,
그냥두지 못한 어려움이라도 어쨌든 사람 구실은 하였으니
소질없이 늙었을지언정, 세상 살아가면서 뭐라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래. 우리, 늙어 무뎌지지만 뭐라도 더 해보자꾸나.
오늘의 제시어
-.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 '칼'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반짝 하고 빛나는, 젊은 날이 투영되는 어떤 멋짐의 형상이었을지,
혹은 누군가 부드러운 융털로 사랑스럽게 문지르면 여전히 얼굴이 비치는 영롱한 무엇이었을지,
나는 무엇이었을까는 잠시 생각해봅니다.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