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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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간혹 달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무척 쓰다.
붉게 익은 곱창 하나를 집어 들고는 질겅질겅 씹는다.
- 뭐 이러냐, 내 인생은.
- xx한다.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내뱉으며, 그도 소주잔을 기울인다.
- 왜 이럴까, 되는 게 하나도 없어.
- 네가 몇 번이나 해봤다고 그래, 다 그런 거지, 처음부터 잘 되는 게 있겠냐.
그래, 아직 질리도록 시도해 본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닌 것 같고.
- 모르겠다. 마시자.
소주잔에 투명하게 소주가 담긴다. 칠할, 팔할.. 에이 모르겠다.
- 하.. 나 참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 그래, 너 정말 치열했었지. 모르는 애들 없다.
치열했었다.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내 몸뚱아리 하나뿐이니, 치열해야지, 치열했어야지.
- 혹시.. 혹시 말이야. 내가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 니가? 니가 뭘?
- 그동안 나,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완전히 틀렸던 걸까.
- xx, 애들은 니 반도 못 따라 해. 니가 아주 배가 불렀구나.
모르겠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었다.
최선을 다했었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매달려야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을까.
- 나중에 말이야,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온통 오답투성이인 거 아니야.
출제자의 의도도 모르고, 문제도 잘못 이해하고, 그렇게 낙제로 막 달려가는 거지.
- 흐흐흐, 너 술 취하냐? 임마, 너가 우리 반에서 베스트야. 알잖아.
학창 시절은 그냥 학창 시절일 뿐이다. 네 개 중에 답 중에 하나를 고르는 그런 선택.
그렇게 단순하게만 살아갈 수 있다면 내 인생도 참 편하게 펼쳐졌을텐데.
- 하아.. 참 어렵다. 뭐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이 없냐..
- 정답? 흐흐, 그래! 그러면 니가 한 번 채점을 해봐라, 니가 하면 잘하겠네.
채점을 한다?
내가?
그래, 못 할 것도 없지. 내가 출제자가 되면 내가 답을 정할 수 있잖아.
인생에 정답이 어딨어, 출제자가 '이게 답이야'라고 하면 답이 되는 거지.
그렇게 나는 '채점해 드립니다'라는 유튜브를 열었다.
이제는 3백만 구독자가 넘었고, 내 '채점'을 듣기 위해 또 메일함이 꽉 찼다.
내 '채점' 기준은 이렇다.
메일 내용을 읽어보면서 메일을 보낸 사람의 희망과 불안감을 읽는다.
그것을 고스란히 점수로 반영해서 유튜브에 채점 결과를 찍어 올린다.
사람들의 반응?
열광적이지, 열광적일 수밖에 없지.
왜?
자신이 믿고 있는,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점수로 전달해 주고 있으니까.
그저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맞는 지를 확인해 보고 싶을 때 맞다고 해주는 것이니까.
어차피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고수할 테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