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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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람만이희망이다 118.♡.154.166
작성일 2024.08.10 13:47
분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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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귀신, 강시


. 80년대 홍콩 영화의 주요 장르를 크게 나누자면 성룡류의 무술영화와 주윤발류의 느와르 영화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틈새에서 꽤 인기를 끈 시리즈물이 '강시' 시리즈였다. 당시 우리는 '홍콩요괴'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 뿌리는 꽤 깊다.

. '강시'는 '굳어질 강'에 '시체 시'이니 '죽어서 뻣뻣하게 굳은 시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강시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 통통 튀는 독특한 걸음걸이를 보인다. 강시의 또다른 특징은 앞으로 두손을 뻗은 자세와 청나라 복식이다. 강시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시체가 일어나서 움직이는 설화는 전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보편화된 이야기이지만 대개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다루어질 뿐이지 강시처럼 일반화된 귀신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강시는 중국 귀신이야기 총집이라 할 수 있는 '요재지이'에조차 다루어지지 않는 '듣보잡' 귀신이 80년대 홍콩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사례다. 그래서 강시의 개념이 어디에서부터 등장했는지 분명치 않지만 묘족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그 한 기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 묘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매우 척박한 지역에 살기 때문에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면서 조상신, 주술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독물을 잘 사용하는 신비로운 종족으로 묘사된다. 중국 무협 소설 중 오독교 같은 독을 쓰는 문파가 나오면 십중팔구 묘족 라인이다.

. 묘족은 고향에 대한 집착이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혹시 타지에서 죽게 되면 제대로 혼이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떠돌게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고향의 주술사가 찾아가서 땅에 묻힌 동족을 일으켜세워 데려오게 되는데 이 주술사가 '영환술사'다. 영화 속에서 '영환도사'는 퇴마사로 묘사되지만 원래는 혼을 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영화는 한족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이다보니 '술사'가 아니라 '도사'가 되어 주역의 팔괘를 수단으로 삼는 것으로 묘사된 것이고.

. 영환술사는 각 지방을 돌며 객사한 동족들을 모아서 데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시체들을 줄줄이 세워 행진하듯이 올 수 밖에 없다. 이미 뻣뻣하게 굳은 시체라서 통통 튈 수 밖에 없는데 앞 사람(시체?)의 어깨에 손을 얹은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줄을 맞춰 오다보니 손을 앞으로 뻗은 자세가 되는 것이고.

. 강시가 청대의 인물로 묘사되는 제일 큰 이유는 홍콩 영화들이 설정한 배경이 청말 개화기였기 때문에 당시의 시점에서 '옛날 시체'란 청대에 묻힌 변발한 시체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른 이유로는 청대가 300년 가까이 비교적 오랫동안 안정을 누리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부족으로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도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으며, 청대에 고위직으로 나가지 못하는 한족 지식인들이 소설 등 창작물 시장에 대거 뛰어들어 '이야기' 자체가 증가하는 시기였던 탓도 있다.

. 생각해보면, 오로지 고향에 돌아가 '제대로 죽겠다'는 일념으로 일렬로 어깨에 손을 얹고, 사람들 시선을 피하기 위해 밤길만을 택해 통,통,통 언제 닿을지 모르는 고향길을 재촉하는 강시와 영환술사의 행진은 정말 서글프기 그지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 이 강시 이야기는 2007년 개봉했던 영화 '낙엽귀근'을 떠올리게 했다.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농민공으로 도시에 와서 일하다가 죽은 친구를 고향에 데려다주기 위해 직접 떠메고, 산 사람인척 버스에 태웠다가 쫓겨나고, 심지어 대형 타이어 안에 집어넣고 굴려가면서 먼 길을 떠나는 우직한 친구의 이야기인데, 더 슬픈 것은 이게 실화였다는 점이다.

. 고향에 대해 그렇게 강렬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이 마음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내가 온전해진다는 마음은 아내와 아이들이 색색 잠들어있는 집에 도착하는 순간 매번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 아마 이 집에서, 가족들의 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면 나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어떻게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몸부림을 치게 될지도. 그것이 진짜로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것일지라도.





………………………


페친 분의 피드에 강시 얘기를 보다가 예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중국 감독과 배우, 그리고 중국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인가 싶은 스토리..

보신 분들 대다수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영화이니 만큼 추천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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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1 페이지

djbach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djbach (211.♡.192.120)
작성일 08.11 07:05
별점:
평가 없음
보고 싶었는데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사람만이희망이다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사람만이희망이다 (211.♡.237.146)
작성일 08.11 22:16
@djbach님에게 답글 제 기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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