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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는 커뮤니티를 어떻게 망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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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2024.06.2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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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농구커뮤니티에서 정치관련 게시글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가입일자 확인 기능을 삭제하고 그간 징계로 영구정지됐던 아이디들도 사면해주었습니다. 더불어 징계의 수위도 낮추고 엄격했던 표현의 제한도 풀어주었습니다. 일종의 대사면과 규제완화가 동시에 이뤄진 겁니다. 해당 사이트는 디씨에서 '존중과 배려가 지나친 X선비 사이트'라고 비하받던 사이트였다는 걸 감안해보면 굉장히 파격적인 조치들이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발생한 이유는 1) 나이 들어가는 커뮤니티의 한계 2) 부진한 뉴비 진입 3) 떨어지는 사이트뷰와 게시물 리젠율 등등일 겁니다.


이런 조치로 인해 사이트 회원들은 꽤 크게 반발했습니다. 특히 정치글 허용에 대한 반발이 엄청 났습니다. 정치에 관한 스트레스 없이 편히 보던(?) 정든 사이트가 망가질 거 같아 두렵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에 관한 포스팅은 읽어보지도 글/댓글을 작성하지도 않을 거라는 회원들도 꽤 됐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렇게 선언했던 회원들은 여지없이 정치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훌륭하게 어그로를 끌면서 말이죠.


동시에 대사면+가입일보기 기능 삭제의 콜라보로 모든 게시판에서 진정한 어그로가 늘어났습니다. 농구 사이트에서 가장 논쟁적이며 어그로 끌기 쉬운 주제가 '누가 사상 최고의 선수인가'입니다. 대상은 주로 조던 대 르브론이고요. 어그로를 끄는 유저들은 '조던이 위대한 건 인정하지만'으로 시작해 조던을 깎아내리고 피펜을 띄우고 결론적으로 르브론이 우위임을 은연 중에 깔아둡니다. 그러면 이에 다른 유저들이 반발해서 댓글을 달고 끝없는 그리고 생산성 없는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존댓말로 이뤄지는 모든 비아냥은 다 나타나구요.


NBA 시즌이 끝나자마자 소위 '조릅논쟁'은 매일 매일 다수의 게시물로 올라와서 최다조회, 최다댓글란을 점령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로 눈팅을 하는 회원들은 피곤함을 느끼고 토로합니다. 조릅논쟁은 르브론이 세번째 우승을 달성한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된 토론(혹은 소모성 논쟁) 주제였고 어지간한 느바팬들은 해당 주제가 피곤할 뿐입니다. 매일 도돌이표 같은 게시물이 이어지는게 벌써 10년 가까운 일이니까요. 잠정적 결론(다수의 팬이 인정하는 최고 선수는 조던이다)이 있음에도 이런 논쟁이 매년 오프시즌에 발생하니 평범한 유저는 피로함을 느끼고 커뮤니티를 떠나게 됩니다. 이런 점을 어그로들이 노리는 겁니다.


결론이 이미 나있는 주제로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마치 커뮤니티의 여론이 해당 주제만 떠드는 인상을 남기는 게 그들의 목적입니다. 이런게 며칠만 지속돼도 유저들이 점점 떠나고 찾지 않게 되는데 해당 사건이 매년 동일시기에 발생한다면 그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빡빡했던 처벌규정과 징계수준이 느슨해지니 어그로들은 더욱 신나서 날뛰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어그로들은 평범한 유저들의 피로감을 유도하는게 목적이고 최종적으로 커뮤니티를 황폐화시키는 게 최종 미션입니다. 제가 보기에 해당 사이트에서 어그로들은 1차 목적을 차근차근 달성해 가고 있습니다.


몇 명의 어그로만으로도 커뮤니티가 무너지고 황폐화되는 건 정말 순식간입니다. 어그로들은 커뮤니티의 주제와 문화에 대해 매우 빠삭하며 이용규정을 외우다시피 합니다. 교묘하게 처벌조항을 피하는 선에서 사람들의 피로감을 유도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반응했던 일반 유저들은 징계를 맞거나 사이트에 질려서 떠납니다. 눈팅 회원들은 변해버린 사이트 분위기에 피로해져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한 사이트는 어그로의 놀이터가 되고 일반 유저가 떠난 커뮤니티는 결국 아무도 찾지 않게 됩니다. 최종 목적(커뮤니티 황폐화 및 파괴)을 달성한 어그로들은 다음 목표를 찾아 떠납니다. 이 수준까지 가면 정말 사이트 폐쇄로 이어져도 이상할 게 없게 되죠.


이것이 커뮤니티의 어그로들을 감시하고 그들이 준동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 세 명 혹은 다섯 명 정도의 어그로만으로도 사이트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X먹금, (정당한) 박제, 메모같은 무기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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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잡문가(雜文家)

한량 잡문가(雜文家)

댓글 18 / 1 페이지

호락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호락 (61.♡.115.108)
작성일 06.23 22:40
의미심장한게.... 룰을 가지고 노는 어그로를 처단할 방법은 독재가 가장 쉽죠.
그래서 클량이......................(먼산) 의 결과는 또. (시발점 되신 분이 어그로란 이야긴 아닙니다)

어차피 누군가의 것인 커뮤이니 그 누군가의 적절한 독재로 룰 가지고 노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으면....

운영자가 중립인것이 중요하다 말은 하지만 사실 세상에 중립은 없다란 반증이기도 하고....

클량도 이곳도 말씀하신 '감시하는' 사람들의 힘이 커지면 운영자조차 또 어찌 못하니 서로 갈등이 생기고~~~해서 최고는 운영자와 그 적극적인 자정활동하는 분들의 간극이 적은 것이 최고인데......

바르게 가는 방법은 품이 너무 들고 빠르게 가는 방법은 오해를 사기도 잘못된 길로 가기도 너무 쉽고.... 이래저래 쉬운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3 22:45
@호락님에게 답글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저도 과거에는 소규모 사이트 관리자로 2년 정도 있어봤는데, 워낙 작은 사이트여서 이상적인(?) 철인왕 같은 관리가 가능했었습니다. 사이트 회원끼리 친목질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소규모였고 뉴비도 가끔 들어오니 금세 친해질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대규모 사이트에서는 운영진이 운영의 묘를 잘 부려야 합니다. 때로는 독단적이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때로는 민주적 시스템으로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겁니다. 근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죠. 커뮤니티를 지키는 게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러다보니 최대한 다수의 참여가 보장되고 합리적 기준으로 돌아가야 납득할 만한 커뮤니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파란하늘님의 댓글

작성자 파란하늘 (121.♡.219.77)
작성일 06.23 22:42
그래서 집단 지성이 필요하죠 ^^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3 23:03
@파란하늘님에게 답글 집단지성과 현명한 운영진이 필수입니다

은비령님의 댓글

작성자 은비령 (218.♡.202.177)
작성일 06.23 22:46
클리앙에서는 일 안하는 운영자 덕분에 어그로들하고 싸우느라 제 자신이 황폐해져갔었죠.
여기는 그런대로 관리자님이 처리를 해주시니 마음 편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3 23:04
@은비령님에게 답글 맞습니다. 저도 박제글이 몇 번 지워지니 내가 왜 이래야 하나 싶은 기분이 팍팍 들었습니다.

클스님의 댓글

작성자 클스 (14.♡.95.32)
작성일 06.23 22:47
뭐든 적당히 즐기면서 해야지 너무 몰두해서 그런가봅니다...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3 23:04
@클스님에게 답글 과몰입을 유도하는게 어그로들의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세이투미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세이투미 (223.♡.122.130)
작성일 06.23 22:51
방화범의 심리중에는,
자신이 일으킨 작은 불이 커져 나가는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감정이 있다고 하죠
어그로나 분란종자들도 같은 심리라고 봅니다
그냥 빈댓글이 제일 좋은 대응 입니다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3 23:04
@세이투미님에게 답글 방화범과 어그로의 심리는 거의 동일할 겁니다. 빈댓글 혹은 병먹금이 필수입니다.

크리안님의 댓글

작성자 크리안 (58.♡.210.48)
작성일 06.23 22:58
빈댓글로 방어하면 될텐데 말입니다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3 23:05
@크리안님에게 답글 그렇게 대응하면 아마 여기가 ㅋㄹㅇ이냐고 난리칠 일베성향 유저가 꽤 있습니다. 해당사이트에서 가면쓰고 활동 중일 뿐입니다.

Life2Buff님의 댓글

작성자 Life2Buff (59.♡.207.48)
작성일 06.23 23:15
***매니아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근데 정치글 허용은 그렇다 쳐도 징계 수위 완화와 대사면은 이해가 안 가긴 하네요.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3 23:17
@Life2Buff님에게 답글 아주 예전에 정치게시판이 따로 있었으니 정치글은 이해하는데 후자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달려라하니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달려라하니 (180.♡.47.9)
작성일 06.23 23:18
롤판도 페이커 쵸비로 끊임없이 어그로끌죠
실시간채팅이건 포털이건 인벤이건
죄다 페이커 쵸비글에만 어그로 끌려서 싸움만해요
다른 이용자들은 보다 지쳐 떨어져나가고 그 판은.망하게되는거죠

수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수필 (218.♡.227.59)
작성일 06.24 00:27
@달려라하니님에게 답글 역겨운 "물로켓 프레임"의 시작도 페이커를 향한 거였죠. 어그로는 어디나 있습니다.

오가는게있어야유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오가는게있어야유 (1.♡.136.211)
작성일 06.24 01:51
그렇죠! 오늘만 사는 유머러스한 곳이나 클린하다 못해 스스로 클린해진 곳에서 딱 저런걸 겪어보니까 기분이 참... ㅎㅎ

프로그피쉬님의 댓글

작성자 프로그피쉬 (112.♡.76.76)
작성일 06.24 04:07
내용을 읽어보니 참 어려운 문제네요. 정의하신 어그로의 ‘목적‘이 그 것이 맞는가는 의문이 듭니다만, 단지 그들 습성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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